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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금희 Aug 14. 2023

나는 오늘도 퇴사를 고민한다.

고민만 한다. 고민만.

사람이 많은 회사를 다녔기에 아이 키우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들과 나누는 짧은 수다는 하루라도 회사를 더 다닐 수 있게 해 주는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나이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돈을 벌며 아이를 양육한다'라는 공통된 목적이 모두를 끈끈하게 이어주었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일도 잘하고 있지만, 아이도 잘 키우고 있다는 말 듣는 걸 좋아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대단하다며 인정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고, 더욱 힘을 내서 일과 육아 모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일과 육아 모두 최선을 다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출퇴근으로 4시간 가까이를 길바닥에 버렸고, 야근이 반복되면서도 일을 놓치는 게 무서워 아등바등 버텼다. 이런 나를 대신해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주셨고, 건강악화로 돌봐주시기 어려워지자 나의 멘털은 점점 부서졌다.


내 업무 특성상 한 달에 일정기간 반복되어야 하는 야근은 나를 지치게 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아와 일을 양립하기에 힘든 상황에 놓였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일을 처리하며, 다음날 해야 할 일까지 생각해야 했는데 늘어난 육아까지 신경 쓰려니 정말 고되었다.


우선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하기 위해 화장실 가는 시간도 줄였고, 저녁도 먹지 않았다. 일은 끝나지 않고 늦어만 가는 시간에 마음은 초조해졌다. 평상시라면 어머니가 계셔서 전화 한 통이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내가 퇴근하기까지만 기다렸던 우리 엄마,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아." 말하며 일하는 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어머니는 생계를 위한 본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때문에 퇴근 후 아이의 양육과 남편과 나의 저녁까지 대신해 주셨다. 진정한 워킹맘은 우리 엄마였다. 


어머니는 5년간 병행하셨으니, 병이 날 수밖에..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을 없이 아이를 양육할 계획을 세워야 했고, 우리는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나에게 1순위가 회사, 2순위가 양육이었는데 이 두 가지의 순위를 바꿔야만 했다. 나에게 아이가 우선이 되다 보니, 회사에 연차나 반차 쓰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순위가 회사였을 때는 조금 느꼈던 눈치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회사에 죄인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매일매일이 죄송하다 말해야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내 몫보다 늘 더 많이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바쁜 기간 발생하는 야근은 남편과 상의하여 빠지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일을 했다. 


내가 회사에 쏟은 에너지가 200% 300%였다면, 이제는 150%만 쓰고 남은 에너지는 저장해 두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100%를 쓴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150%를 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회사에서 나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다. 

200% 300% 하던 사람이 150%로 회사에 대한 에너지가 그만큼 줄어들었으니 인사고과 하락. 

50%, 70% 일하던 사람이 100%로 회사에 대한 에너지가 늘어났으니 인사고과 상승.



몸 바쳐 일해온 나에게는 진짜 말도 안 되는 평가였지만 회사는 냉정했다. 


그 해 진급 발표 날, 나는 진급 대상이었으나 그렇게 누락되었다. 

아무리 회사에 쏟은 에너지가 줄었다고 해도, 나는 남들보다 월등히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인사고과가 정당하지 못하다 생각했고, 불쾌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도 당연했다. 나는 자녀가 생겼고, 육아가 1순위가 되었으니  회사에 쏟는 에너지가 당연히 떨어졌다. 그러니 전과 같은 고과를 줄 수 없었으리라.


그런 말 듣기 싫어서 나름 열심히 했지만, 역시나 하는 결과에 참아왔던 분이 났다.  


허탈하고 허무했다.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너무 힘들었고, 탓할 대상이 필요했다. 아이가 있음으로 인해 회사에 눈치볼일이 생겼던 수백 번의 퇴사 욕구도 잘 참아냈었다. 


그런데 그렇게 참은 5년이 고작 진급 누락 발표 한 순간에 무너졌다. 한 3년 정도 하위고과를 받았는데, 그걸로도 부족해서 앞으로의 내 평가도 하위고과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제가 왜 이번에도 진급 누락이 된 건가요?"


우리 팀을 담당하는 이사님께 용기 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나를 실망시켰다.


"첫 해는 출산휴가로 인한 누락, 둘째 해는 육아휴직으로 인한 누락, 셋째 해는 업무 능력 부족으로 판단되었다."


"아이 어린이집 때문에 육아휴직 쓴 거 3개월 말씀하시는 건가요? 

3월 복직 이후부터 내내 야근했는데도요? 

하물며 출산 전날까지 꽉 채워 일하다 다음날 출산했는데도요?"


임산부 단축근무? 그런 건 쓸 수 없었다. 결국 하혈이 심해졌고 유산 위기에 놓여 회사에 2주간 무급 휴직을 신청했다. 그게 다였다. 몸이 회복되어 복귀한 뒤에도 잔업으로 인해 추가근무가 발생한다면 절대 빠지지 않았다. 임산부라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우리 팀에서 나만 받는다고 얘기 나오는 게 더 싫었다. 


출산 전날까지 진통을 참으며 인수인계를 끝냈고, 인수인계 다음날 나는 출산을 했다. 그런데 1월부터 9월까지 그렇게 일한 건 출산휴가로 무시되고, 복직하고 돌아와 열심히 했던 것조차 3개월 육아휴직 사용으로 무시되었다니. 이렇게 열심히 일했어도 나의 인사고과 누락 사유가 고작 출산과 임신이었다니.


그동안 쌓였던 설움이 흘러넘쳤고, 그제야 내 눈에 주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집, 회사사, 집, 회사 반복되는 삶 속에서 어느새 내 아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진급이 누락된 날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며 문득 본 손톱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아이의 손톱은 뾰족하고 모양이 다 제각각으로  삐뚤빼뚤했다. 


아이에게 손톱 뜯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전혀 몰랐다. 내 아이가 손톱을 뜯는 버릇이 있는지, 손톱 모양이 이렇게 삐뚤빼뚤했는지 말이다.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아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잘 먹는지 요즘 보는 만화는 무엇인지, 좋아하는 캐릭터는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게 온 관심을 회사에 쏟았는데 나에게 이렇게 대우해 주는 회사에 다시 한번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나의 가족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며 잠이 들었다. 회사에서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잠들지 않은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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