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개발 1편
자고 일어나면 장래희망이 바뀌어 있었다던 호적메이트와 달리, 어릴 적 나의 장래희망은 중학생 때까지 한의사, 고등학생 때는 생명공학도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풀어낼 것이다.) 공대를 진학해서 신입생으로 1년 공부를 하는 동안 생물학은 지루하게 느껴지고 일반물리학에서 배운 역학 부분이 너무 재밌었다. 취업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도 들리다 보니 2학년이 되어 전공을 정하는 순간에 기계공학을 선택했고, 자연스레 졸업할 때는 제조업에 취직했다.
수학 문제를 풀고 나서 성취감 때문에 수학을 좋아했고, 생활 속에서 응용되는 과학 이론 때문에 과학을 좋아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니 대한민국에서 부모님은 물론 선생님이나 모든 어른들이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이지, '커서 뭐 해서 먹고살래?'와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도, 스스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쩌면 계속 공부를 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밌게 공부를 했고,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시작한 사회생활은, 평탄했다. 바뀌어 가는 사회 추세를 반영하려 하는 회사와 상사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배려를 많이 해주었고, 매달 월급은 풍족하게 생활하고도 모일만큼 들어왔다. 다만, 내가 입사하기 전에 부서에서만 3~4명이 퇴사를 하는 바람에 (이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정말.) 가장 연차가 적은 선배와는 6~7년이라는 차이가 있었고, 우리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소 꺼림칙할 뿐이었다.
R&D라고 하면 모두 연구실에서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것을 구현해 내는 방법을 연구하는 일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연구'만 해당되었고, '개발'은 당장 내년에 양산해야 할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디스플레이를 예로 들어, 5년 후 투명하거나 접거나 늘어나는 등 어떤 모습의 디스플레이가 세상에 등장할지 예상하고 필요한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연구'라면, '개발'은 내년에 삼성 혹은 애플에서 어떠한 스펙이 반영된 신제품이 나오는데 그것을 구현하는 일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뉜다.
1. 처음엔 기획을 하고
2.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3. 계획을 실행해서 만들어내고
4. 시장에 내놓기 전에 테스트와 피드백을 한다.
1. 기획
제품을 개발하는 것도 비슷하다. 전자제품을 만들었던 나의 경험을 예로 들면, 가장 먼저 컴퓨터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3D 제품을 설계한다.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정리했지만, 이는 엄청 복잡한 과정이다. 수백 개의 3D 부품을 합쳐 하나의 3D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앞으로 대세인 가볍고 얇은 전자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찾고, 지난 모델에서 문제가 발생한 부분을 개선하고, 현재 상태에서 겹치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도 필요하다. 사이즈뿐만이 아니라 재질도 선택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업팀, 구매팀, 개발팀 등 유관 부서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2. 계획
3D 모델의 윤곽은 잡혔으나, 이것은 컴퓨터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제품이다. 손에 잡히는 물건으로 만들어내려면 우선 어떻게 조립할지 계획해야 한다. 1번부터 100번까지 순서대로 조립할 수도 있고,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조립한 다음에 한꺼번에 합칠 수도 있다. 부품끼리 고정을 할 때는 나사를 사용할 수도 있고, 테이프를 사용할 수도 있다. 어떤 순서로, 무엇을 사용하여, 어떻게 합칠 것인가, 컨베이어 벨트의 위치와 작업자의 위치까지도 계획하고 나면 협력사에 자재와 부품, 그리고 조립을 할 수 있는 기구나 기계를 설계하고 주문한다.
3. 실행 (현장)
어떻게 만들지 계획이 세워지면 그에 따라 실행을 한다. 기계를 세팅하거나 작업자가 투입되는 과정이 있다면 작업자를 교육할 자료를 만들고 조립 방법을 가르친다.
처음부터 대량을 조립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량이 매우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단계 별로 수량을 달리해서 조립한다. 처음에는 수십 개 단위로 조립을 한 다음, 설계한 대로 제품이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있다. 이슈가 없으면 불안할 만큼 이슈는 불가피하다. 해결 방안을 찾고 개선이 되면 다음 단계엔 조금 더 많은 수량을 조립한다. 단계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재질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열과 압력을 더하는 등 새로운 과정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또 이슈가 생긴다. 단순히 계획된 대로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끝도 없이 계획은 변경되고, 끝도 없이 이슈가 생기고, 끝도 없이 해결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4. 불량 분석과 해결 방안
제조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를 꼽으라면, '수율'을 선택하겠다. 제조업의 기본은 '똑같은 제품을 다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정확한 이론에 맞춰 라인을 설계하더라도 조립을 하다 보면 기계는 틀어진다. 하물며 기계도 그러한데 사람이 조립을 하면 세상에서 '똑같은 제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자제품마다 다르지만 마이크로미터, 더 작게는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를 벗어나는 일이 부지기수다. 고객이 정해준 (이후 열심히 싸워서? 오차를 늘리는 경우도 있다.) 오차에서 벗어나면 해당 제품은 불량이다. 불량 제품은 판매할 수가 없어 만들어낼수록 손해이므로 수율은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어 매우 중요하다.
샘플 제품에서 측정을 통해 수많은 데이터를 정리하고 오차에 벗어나는 것은 없는지, 불량에 발생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불량 분석을 한다.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파고드는 것도, 흥미로웠던 업무이지만 너무나 많은 일을 짧은 시간에 해결해야 하고, 개선하기 힘든 부분이 끊임없이 반복되면 정말 스트레스다.
번외. 신뢰성 테스트
만들어내는 것이 끝이 아니다. 제품이 생산되는 공장과 구매할 고객이 있는 곳은 다르니 운송도 고려를 해야 한다. 운송할 때의 진동으로 인해 전자제품이 상하지는 않을지 시뮬레이션 기계에서 테스트한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더운 나라나 시베리아처럼 추운 나라에서도 사용을 해야 하니 다양한 온도에 노출시켜 테스트를 하고, 동남아시아처럼 습한 곳도 있으니 습한 환경도 테스트한다. 멀쩡하던 전자제품도 극한 환경이나 극한 자극에 노출이 되면 불량이 된다. 해당 불량도 분석을 하고, 어느 정도의 온도/습도 범위까지 작동을 보장할 수 있는지, 안전하게 운송을 하려면 어떻게 포장을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는다.
은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