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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Jun 19. 2024

육아 1년, 아빠가 마음이 부러졌다.

너무 잘하려 무리하지 말자

    내가 무너졌다. 잘하고 있다고, 이만큼 하는 사람이 없다고, 최고의 아빠라고 자찬을 하면서 위로하기에는 너무나 지쳤고 그 지침이 한도를 초과하였다. 나는 너무 힘냈다. 너무 열심히 했고 나에게 너무 무심했다. 지쳐 넘어져버렸고 일어날 힘이 없어 그대로 엎드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나의 작은 그릇을 인지하지 못하고 몽땅 담으려고 했던 것이 결국에는 넘쳤고 눈물이 되어 흘렀다.




    출산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무서워한 것은 '산후우울증'이라는 정신 질환이다. 아기에 대해 죄책감이 느껴지거나 양육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등의 증상으로 심하게는 자신도 해칠 수 있다는 중병이다. 초산의 경우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고 한다. 실제 내 주변에서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질환을 원천적으로 막고 싶었다. 아예 그럴 틈을 주지 않기로 했다. 주양육자인 아내는 물론, 우리의 어여쁜 딸까지 그러한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자 아빠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정시 퇴근은 기본이다. 집에 도착하면 하루 종일 육아에 지친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딸아이와 짧게 인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아내는 식사를 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놓은 이야기 꾸러미를 하나씩 풀어 내 밥 위에 얹는다. 나는 밥과 함께 이야기를 들으며 소화해 낸다. 중간중간 질문도 넣어야 하고 반응도 해야 한다. 남편의 관심이 필수다.

    아기를 씻기는 것은 아빠의 일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아기를 달래 가며 빠르고 정확하게 목욕을 마친다. 로션과 오일 바르고 옷을 입혀 재울 준비를 한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아내가 딸아이를 재우기 시작한다. 아내가 아이를 재울 동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을 정리하고 장난감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으며 거실을 내가 출근했던 때의 모습으로 돌려놓는다. 그 후에 설거지를 한다. 밥의 잔량을 확인하고 냉장고의 재료를 파악하여 내일 아내가 먹을 점심식사를 구성해 본다. 아내에게 육아 이외의 부담을 최대한 줄인다. 즉, 눈앞에 있는 가사는 다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벽에 아이가 자주 깬다. 100일의 기적은 크게 효과가 없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나를 위해서 새벽에 아내가 아이를 달래러 간다. 때문에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아내보다 조금 일찍 눈을 뜨는 나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침을 먹이고 출근 준비를 한다. 시간이 조금 남으면 책을 읽어준다. 집에서 가사 이외 의 시간은 육아를 한다.

    아내는 하루 종일 육아를 한다. 심적 신체적 여유를 가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휴일에는 아이와 단 둘이 외출을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딸아이와 같이 둘이서 놀이터 산책을 간다. 유아차를 끌면서 대답을 바라지 않는 대화시도도 해보고 아침으로 먹을 빵도 구입한다. 놀이터 가서 아장아장 걸어보고 아직 오늘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시장 골목을 천천히 거닌다. 그 시간 동안 아내는 조금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아이가 1년이 되었을 때, 좀 더 나은 급여를 위하여 처음 접하는 직종으로 이직을 했다. 더 높은 급여는 나에게 더 높은 수치를 원했고,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요구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밀려드는 업무를 쳐내는데 오롯이 나의 정신이 소모되었다. 대표는 주말과 휴일 상관없이 연락을 했고 각종 메신저창에는 시간에 관계없이 업무 관련 글이 새겨지고 있었다. 월급여 40만 원을 높인 대가는 내 예상보다 매웠다.


    어느 새벽. 잠에서 깬 나는 무심히 작은 방에 갔다. 곰팡이가 너무 많아서 방습 페인트를 잔뜩 바른 벽지가 눈에 잡혀 속상하다. 모기장 안에 고이 잠든 딸아이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작게 벌어진 입 사이에 치아가 보인다. 작은 눈은 날 닮았지만 속눈썹은 날 닮지 않았는지 굉장히 길다. 불룩한 양볼을 손가락으로 콕 찔러보고 싶지만 깨우고 싶지 않아 그저 지켜만 본다. 새액 새액 숨소리를 지켜보며 나 자신에게 얘기하듯 숨죽여 얘기한다. 

    '아빠가 열심히 살게'

    이때 내가 무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너지기 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여느 날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그날이라고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두부 부침 양념을 하기 위해서 밥그릇에 각종 재료를 넣어서 섞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다. 왼손에 힘이 빠졌는지 밥그릇을 놓쳤고 그대로 주방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눅눅한 붉은색 양념은 깨진 그릇 사이로 삐져나와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 순간 나의 마음이 부러졌다.


    "아아아" 무겁고 낮은, 그러나 거실의 아내가 듣기에 충분한 음량의 비명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야?" 아내가 다가온다. 나는 황급히 양손으로 내 얼굴을 가리며 천장을 향한다. 지금 내 얼굴을 나 자신이 볼 수는 없지만, 절대 아내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눈물이 흐른다. 어서 감정을  돌려놔야 한다. 다행히 아내는 깨진 그릇을 정리하느라 나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있다. 나라는 사람은 꽤 전환이 빠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양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봤을까? 별 말없이 아내는 깨진 그릇과 양념을 정리하고 다시 아이에게 갔다.

   그 순간의 감정은 자책감에 가까웠다. 이렇게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데 비해서 출력물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대표에게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서는 나의 무능력함에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다. 곰팡이가 가득한 집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 차가 없어 매번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도 미안하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줄 수 없을 것 같아서 답답하다. 매달 돈 걱정을 해야 하는 현실이 한심하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막막하다.

    그때의 나는 그렇게 어두운 생각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밥그릇을 깬 것은 분명 작은 일이었다. 그렇게 감정이 치솟고 눈물이 날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우울의 저 밑을 헤매고 있었다.


    문제는 확실하다. 이대로 지내면 나는 무너져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을 해내려고 했던 나의 욕심이 나 자신을 망치고 있었다. 가족의 정신 건강을 돌보느라 내 정신 건강을 해치고 있었다. 내가 무너지면 소중한 가족이 무너진다. 해결 방법도 확실하다. 이틀간 고민한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나 회사 그만두고 싶어." 

    그러자 내가 예상한 가장 무서운 대답이 돌아왔다.

    "돈은?"

    결국 참을 수 없어 아내 앞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꾹꾹 눌러왔던 감정이 머리 꼭대기부터 내려가는 느낌이다.

    "내가 최대한 빨리 취직할게. 여보...... 나 너무 힘들어."


    아내는 울지 말라며 나를 안아주었다. 그날 우리는 앞으로 어떡할 것인지 의논을 했고 나는 담담히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알려주었다. 진작에 이렇게 말을 했어야 한다고 느꼈다. 말을 하면서 나 자신이 살아남을 느꼈고 가슴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조금은 덜어진 기분이었다.


    그 일이 있고 1개월 뒤에 나는 퇴사를 하였고 운 좋게 지인의 소개로 바로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급여는 한참 낮춰서 들어갔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더욱 빠듯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여유를 찾았다. 더욱 건강한 마음으로 내 가족을 대할 수 있다. 나는 하나의 룰을 세웠다. 내가 심적으로 힘들어질 때는 아내에게 이야기하고 협조를 구한다. 내가 선택한 배우자는 나를 아끼는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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