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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붕어빵 Mar 13. 2024

외출 시 조우하는 육아 오지랖

아기와 외출하면 오지라퍼가 그렇게 많다

    딸이 태어난 것이 8월. 9월 중순에 첫 산책을 시작했다. 유아차에 딸을 살포시 태우고, 근처에 있는 우장산 공원을 향했다. 동산이라도 산은 산이다. 언덕 위까지 유아차를 열심히 밀면서 올라가 산책로에 다다라서는 늦여름 동산 풍경도 보면서 딸에게 말도 걸고 첫 산책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 어느 아주머니께서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아기가 너무 이쁘네, 신생아 인가봐?" 자식이 이쁘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 좋지 않을 수 없지. 그런데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그런데 유모차는 아빠가 밀어야 하는데"


    응? 뭐지? 싶었다. 언덕까지는 내가 밀었다. 평지와 내리막에 와서 아내에게 양보했다. 그래도 첫 산책인데, 엄마도 유아차를 밀어봐야 하잖아. 그렇게 아내가 유아차를 계속 밀면서 그 아주머니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가니, 굳이 따라와서는

    "유모차는 아빠가 밀어야 한다고!"라고 일갈을 날리곤 휙 하고 가버리셨다.

    마치 내가 크게 잘못한 것마냥 한소리 들은 모양새가 되어 버렸다. 내가 모르는 우장산 공원 산책로의 규칙인가? 내가 잘못한 건가? 싶어서 다른 유아차를 밀고 있는 아빠를 찾아봤지만 허사. 애초에 유아차를 밀면서 산책로를 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찜찜한 기분으로 다시 유아차의 핸들을 내가 잡았다.


    유아차를 밀고 있는 누군가에게 오지랖을 날리는 것은 뭔가 약속된 플레이 같았다. 외출 시에는 꼭 한 마디씩 들었고,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지하철, 버스, 공원, 마트,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은 곳은 항상 오지라퍼를 최소 1명 이상 조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시니어들이시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날씨 관련이다.


    "아기가 춥겠네, 코 빨개진 것 봐."

    "아기가 덥겠다. 옷 좀 얇게 입히지."

    "오늘 미세먼지 심한데."

    "아기가 햇빛에 타겠네."


    물론 아기가 귀엽고 귀한 탓에 한마디 붙이고 싶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춥고 덥고 햇볕 따가운데 아기를 데리고 나온 몰지각한 부모를 탓할 생각은 없으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자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어떻게 방비하고 가도 꼭 한 마디씩 듣는다. '아, 뭐 어쩌라고.' 하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아, 네.' 하고 간결히 대답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아주머니, 할머니께서는 혼잣말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저씨, 할아버지께서는 행동으로 들이미는 경우도 있다. 딸의 볼을 만지는 분도 있었고, 가까이 보겠다고 유아차에 얼굴을 묻을 듯이 들이대는 분도 있었다. 나는 다가오는 시니어분의 손을 잡은 적도 있다. 지하철 우대석에 앉으라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건 나라가 허락한 권리야. 근데 왜 안 앉아?" 그 권리 포기할게요.


    이건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다. 오지랖의 빈도수와 깊이는 세가지 상황에 따라 크게 변한다.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있을 때. 엄마만 있을 때. 아빠만 있을 때.


    엄마와 아빠가 같이 있을 때, 혼잣말의 형태를 띠거나 아기에게 말을 거는 포지션을 취한다.

    눈이 말똥 말똥 하면, "궁금해? 뭐가 그렇게 궁금해?"

    식당에서 엄마 아빠가 밥 먹고 있으면, "왜 너네들만 맛있는 거 먹냐? 나도 좀 주라~ 하는 거야?"

    웃고 있으면, "뭐가 그렇게 재밌어?"


    엄마만 있을 때, 엄마에게 직접 말을 거는 비율이 높아진다.

    "몇 개월이에요?" "아들? 딸?" 이런 질문 뒤에는 춥겠다, 덥겠다 등 한 마디씩 덧붙이는 것이 그들만의 암묵적 규칙이다. 아기를 만지려 하거나, 유아차를 흔들거나, 얼굴을 들이미는 빈도수도 확연히 늘어난다. 아기 손에 과자를 쥐어 주려는 분도 꽤 있다. 공원에 앉아 있으면 아예 옆에 앉아서 세상 사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전부 아내에게 전해 들은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인 지인은 아파트 놀이터를 갈 때마다 할머니 한분이 둘째를 가져야한다고 매번 얘기하는 통에 그 시간에 그 놀이터에는 더이상 가지 않는다고 한다.


    아빠만 있을 때, 상황은 크게 반전한다. 오지랖을 찾기 어렵다. 그저 눈빛만 보낸다. 웃음만 보내고, 손짓만 한다. 나는 아내 없이 혼자 딸을 데리고 공원이나 백화점, 마트를 많이 가봤다. 그때 알았지. 아빠가 있으면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구나. 나에게 직접 말 거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나는 그냥 하릴없이 생각해 봤다. 아기가 귀엽고 예쁘면 보통은 눈인사, 손흔들기, 웃어주기. 이 정도에 그친다. 그러면 나의 입장에서도 모른척하거나 아기의 손을 잡고 흔들어 주거나 하면서 간단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시니어분들은 왜 그렇게 한마디 붙이고, 한걸음 다가오시려는 걸까? 이러면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난감하다. 어느 책에서 이런 글을 본적이 있다.

    "인간이란 언제나 자기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생명이 약해지면 '삶'을 동경하는 것이겠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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