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진 Sep 29. 2023

처음 본 너는 내 눈밖에 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해 2

그날은 나의 20대가 시작되기 전날인 12월 31일이었다.

이날은 밤 12시가 되면 카톡이 한동안 마비 될 정도로 모두에게 뜻깊은 날이지만, 오늘이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들은 19살의 청춘들이다.

그들에게 연말이란 12시에 술집에 들어가며, 성인이 된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일생의 단 한 번뿐인 날’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며칠 전부터 함께 할 친구들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의리 없는 친구 놈들은 모두 약속이 있다고 했고, 집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점점 초조해졌다.


'진짜 이렇게 지나간다고? 내 20살 1월 1일이?’


현실을 부정하며 카톡 목록을 수차례 훑어보던 그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얌전히 집 잘 지키고 있냐?"


약 올리는 친구의 익살스러운 말투에도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서 대답했다.


"그럼 잘 있지, 이따 12시에 종 치면 혀 깨물고 죽으려고."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병신'이라는 말과 함께 연신 웃기만 했다. 기분이 상한 내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친구는,


“야, 기다려봐, 내가 너 불러도 되냐고 물어볼게”


라며 구제의 손길을 건네줬다. 나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될까 고민(하는 척)했지만, 그 자리에 10명도 넘게 와서 괜찮다는 말에 집을 나서기로 했다. 계획에 없던 외출에 날도 날인지라 나는 꽤 들떠있었고, 옷걸이에서 패딩을 반쯤 꺼내다가 졸업식날 입기 위해 사놓은 코트가 생각나 다시 걸어 두었다. 이제 나도 곧 성인인데 멋 좀 부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난 이런 작은 행동에도 벌써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들뜬 내 마음과 다르게 하늘은 잿빛이었다.


“눈이 오려나?"




“이따 눈 온다는데 코트 입고 안 춥냐?”


이게 처음 본 그녀가 내게 건넨 첫마디였다.


“... 네?”

“코트 입고 안 춥냐고”

“밖에서 술 마실 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다음부턴 패딩 입고 다녀”


그러고선 앞으로 휙 지나가버린 그녀를 보고,


“저 누나 누구야?”  


라고 물어보자 친구는 키득거렸다.


“여기 동갑밖에 없는데?”


그때 난 다짐했다. 오늘 쟤가 말 걸면 대꾸도 안 하겠다고.

너는 내 눈밖에 났다.




우리가 술집 앞에 줄을 서며 12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친구는 일행들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던 중,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아, 저는 친구 소개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내가 너무도 당연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았지만, 네가 나보다 한발 더 빨랐다.


“아니 그건 당연한 거고, 여기 왜 왔냐고”


너는 나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히죽거리며 말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조금은 슬픈 말을 뱉어 버렸기 때문이다.


“만날 사람이 없어서요...”


그렇게, 너와 내 사이는 더욱 어색해진 채,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갔다.




어색해진 분위기도 잠시, 새해가 몇 초 남지 않자 거리는 사람들의 환호로 가득 해졌고, 나도 그제야 흥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가 술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을 때, 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새해 복 많이 받고 여기 와줘서 고마워!!”


너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살짝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술집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네가 코트를 입고 온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좀 입고 다녀'라고 한 것을 알게 된 나는 ‘괜히 자기만 빼고 멋 부려서 심술 났구나’라고 멋대로 해석을 했다.


그렇게 우리의 1월 1일이 시작됐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