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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Jul 22. 2024

10. I am, 엄마입니다

- 메리 커샛의 <아이의 목욕>


“엄마, 목욕 다하면 탱커터미 줄 거예요?”

“이 밤에 무슨 캐러멜, 내일 줄게. 어서 씻고 코오 해야지.”

서울에 있는 동생이 소포로 캐러멜 한 박스를 보내왔다. 세원이가 좋아하는 ‘새콤달콤’ 캐러멜. 세 살 세원이에게는 ‘새콤달콤’이라는 이름이 너무 어려웠나보다. 귀엽게도 이 단것을 ‘탱커터미’라고 부르곤 했다.

아이는 매일 밤 몸을 씻을 때마다 턱없이 ‘탱커터미’를 달라고 졸라댔다. 목욕을 하면 자야했기에 씻기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목욕 후, 단 한번도 캐러멜을 준 적이 없다. 하지만 제 딴엔 억지로 하는 일이다 보니 보상을 바라곤 했다.

아이를 씻기고 재우면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탱커터미’ 캐러멜과 아이

스물네 살 어린 나이에 유학생과 결혼을 했고, 식을 올린 지 일주일도 채 안되어 미국의 사막(아리조나) 한가운데 신혼집을 꾸렸다.

주위에서는 달달한 신혼에 미국에서 오롯이 둘만 살게 되었다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남편은 새벽 2시쯤에나 귀가할 수 있었다. 남편은 새로운 환경에서 학업에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귀가 시간이 늦었다. 난 늘 혼자였다. 낯선 곳에서 사는 것도 어려웠고, 적응하지 못하는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을 벗도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나는 외로워서인지 향수병인지 모를 이유로 시달렸다. 밤마다 배앓이를 해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다.

결혼 후, 1년 반만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학업을 마쳐야 한다는 남편의 절박한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도움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광야와 같은 사막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던 나에게 아이는 빛이었다. 밤마다 아이의 울음이 끊이지 않았고, 거기에 젖몸살까지 겪으면서 잠조차 푹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 덕분에 엔도르핀이 솟았다. 덜 외로울 것이라는 기대와 엄마가 되었다는 뿌듯함에 잠시나마 행복했다.

확실히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외로움은 내가 누릴 수 있었던 사치였다. 그 사실을 남편이 귀가할 때까지 세수조차 할 수 없게 되서야 알았다.     



 

메리 커샛, <아이의 목욕>, 1893, 캔버스에 유채, 100.3×66.1cm



독박육아와 화가

미국의 인상파 화가인 메리 커샛(1844~1926)이 그린 <아이의 목욕>(1893)을 볼 때면, 행복해 보이는 정경에 매료되곤 한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 비슷한 미안함이 비눗방울처럼 부푼다.

예쁜 가구와 포근한 카펫이 깔린 방이다. 줄무늬 드레스를 차려입은 엄마의 무릎에 옷을 벗은 여자아이가 앉아있다. 아이는 세 살 정도 됐을까? 몸에 수건이 둘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얼굴과 몸은 다 씻은 듯하다. 엄마는 지금 아이를 꼬옥 껴안은 채, 통통한 발을 정성스럽게 씻기는 중이다. 엄마와 아이가 눈으로 발을 어루만진다. 아이의 우윳빛 살 내음이 뽀얗게 피어난다.

엄마의 무릎에 앉아 제 발을 쳐다보는 아이는 목욕할 때마다 ‘탱커터미’를 찾던 세원이를 참 많이 닮았다. 내게는 숙제와도 같은 일이었지만 그림 속 모녀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독박 육아’의 고단함을 세원이도 느끼고 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목욕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행복할 수도 있었던 목욕시간을 내가 빼앗은 것은 아닐까? 미안함에 가슴 한켠이 쓰려온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가 없어지는 고된 일이었다. 정체성은 고사하고 그동안 쉽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내 마음 대로도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바닥체험'이었다. 예쁘게 잠든 아이 옆에서 마냥 행복하지 못해서, 또 미안해서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그 미안함은 아침마다  해맑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 같이 사라져버리곤 했다.

다시 그림을 살펴본다. 그림 어디에도 육아의 고단함은 보이지 않는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 그림은 나에겐 곡조 없이 울리는 꽹과리 소리 같았다. 그림과 결혼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붓만 들었다는 화가는 자신의 이상향을 그림으로 그렸을 것이라고 섣부르게 단정 지었다.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얄팍한 마음에서였다. 이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예단은 ‘메리 카사트’를 검색하고 나서 곧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미국 출신으로 금융업으로 부를 키웠던 부모님 덕택에 여유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들 교육에 여행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미국을 떠나 여러 나라에서 살게 했다. 메리 카사트는 인상파 화가들이 모여 있는 파리에서 그림을 익혔다. 특히 발레리나 그림으로 유명한 에드가 드가(1834~1917)의 영향을 받아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당시 파리의 화단은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감성적이며 섬세한 묘사력은 냉담하기만 했던 살롱의 높은 벽을 뛰어 넘게 했다. 그녀는 화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평생 해산의 고통과 육아의 고단함을 그녀는 평생 작품에 쏟아 붇고 아름답게 키워냈다. 


    

엄마가 될 딸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선사해준 딸 세원이는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던 그때보다 더 나이를 먹었다.

마치 혼자 자라온 것처럼, 기고만장해진 딸은 작년에 엄마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만난 첫사랑인 ‘교회 동생’과 가정을 꾸렸다.

제 엄마를 닮아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지나치게 감성적이어서 어떨 때는 맞장구쳐주기가 부담스럽지만, 속은 여물어 이제는 자상한 동네 언니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언젠가 딸이 엄마라는 훈장을 수여받는다면, 숙련된 조교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엄마라는 숙명에서 부서지고 깨어져도 자기 자신을 잊지 말라고….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자신과 마주하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에 두려워하지 말고 귀 기울이라고.     

그러려면 할머니가 된 내가 시간을 내어 그 자리를 지켜주어야 하는구나. 에휴, 엄마는 바위 굴리는 시지프, 육아는 평생 ‘네버엔딩 스토리’다. 나는 할머니가 손녀를 보듯 따스한 눈빛으로 그림 속 아이를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자꾸 입 꼬리가 올라간다. 마음까지 편안해지니 참 별꼴이 반쪽이다.






<함께 듣는 곡>

Clair de lune 달빛 - C.Debussy


결혼과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잠시나마 나에게 '쉼'을 허락한 안락의자가 되어준 곡입니다.

아이를 재우고  크고 포근한 그 '안락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아봅니다.  은은한 멜로디는 하얀달이 두둥실 떠있는 평화로운 호수로 나를 이끕니다.

달빛은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타고 아름답게 반짝입니다. 신비한 빛으로 기운을 받은 호수는 살아서 일렁일렁 숨을 쉽니다 .

드뷔시가 선사한 '안락의자'에서 온몸의 힘을 빼고 누웠던  나의 심장도 어느새 파닥파닥 뛰어줍니다.



https://youtu.be/y0Iyws-M8pg?si=4TTmQUCRoOLLHg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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