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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Jun 25. 2024

미국 시골 마트를 점령한 불닭볶음면

미국에서 덴마크로 불닭면 좀 보내주고 싶네. 

최근 덴마크 정부가 일부 불닭볶음면 제품들을 판매 금지시켰다는 뉴스가 화제다. 판매 금지의 이유는 "너무 매워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뉴스 덕에 구글에서 '불닭볶음면' 검색량이 역대최고를 달성했다고 한다. 역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지.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제법 규모 있는 아시안 마켓이 문을 열었다. 전체 인구 14만 명 중에 아시안 인구는 5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동네에서 이게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웬걸, 갈 때마다 비아시안 고객들이 아시안 고객보다 더 많이 보인다. 누가 봐도 동양인 피 한 방울 안 섞인 젊은 커플이 비영어권 나라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괜스레 궁금해져서 카트를 하나 끌고 무심하게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본다. '이거 유튜브 (넷플릭스) OO에서 OO가 먹던 거잖아'라는 말을 들을 때면, '콘텐츠의 힘이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등 온갖 아시안 식재료를 파는 이 마켓에서 단일 제품으로 제일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닭볶음면'이다. 내가 아는 불닭볶음면은 일반, 까르보나라, 핵불닭볶음면이 전부인데, 세상에 이렇게 많은 종류의 불닭볶음면이 있는지 중국사람이 주인인 마트에서 처음 알았다. 

호치가 불을 내뿜고 있는 일반 불닭볶음면과 핵불닭볶음면

진열되어 있는 각종 불닭볶음면들을 보고 있으면 회사가 모든 인종의 입맛을 겨냥하려는 듯하다.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미국이다 보니, 이들을 겨냥한 제품이 두 종류나 있다. 불닭면 캐릭터인 호치부터 멕시칸 모자를 쓰고 있지 않는가! 판매되는 제품은 옥수수가 들어간 거랑 하바네로 라임맛이 나는 불닭면이다. 

히스패닉, 너희들을 위해 준비했어

불닭에 김치를 섞어 한국패치x2를 한듯한 김치불닭면도 있고, '나는 안 매워요'라고 어필을 하려는 듯 평화로운 얼굴의 호치가 그려져 있는 토마토파스타 불닭면도 있다. 

토마토파스타 불닭면은 정말 안매울까...?

내가 아는 까르보나라 불닭면과는 다른 포장인 크림 까르보나라 불닭면, 까르보나라와는 또 다른 노선인 듯한 치즈 불닭면도 있다. 이 글을 쓰려고 처음으로 자세히 불닭면 포장지들을 보았는데, 내 짐작이지만 호치의 표정을 보고 맵기를 짐작하면 되는 거 같다. 호치가 불을 뿜지 않는 제품들이 그나마 맵찔이들에게는 후환이 덜 할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까르보나라와 치즈는 무엇이 다른가

세계 인구 1위를 차지하는 인도를 빼먹으면 섭섭하니 터번을 쓴 호치가 그려져 있는 카레맛 불닭면도 있다. 짜장면의 원조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외치는 듯, 짜장 불닭면의 호치는 태극문양이 들어간 연지곤지를 찍고 있다.

카레, 짜장 불닭볶음면

덴마크에서 너무 매워 판매가 금지된 불닭볶음탕면도 판매되고 있다. 먹지 말라니 맵찔이인 나도 괜히 먹어 보고 싶은데, 딱 한 봉지만 팔면 주저 없이 사서 먹어볼 텐데, 모든 불닭면 제품이 5개 묶음으로 팔리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살까 말까 살까 말까 그렇게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엔 안 샀는데, 생각해 보니 나중에 한번 묶음으로 사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10대 자녀들의 부모인 지인들한테 나눠줘야겠다. 왠지 그 아이들은 '너 매워서 못 먹는다'라고 말하면 무조건 먹어 볼 거 같단 말이지.

덴마크에서는 이제 레어템.

아시안 마켓에만 불닭볶음면을 파는 것이 아니다. 코스트코에도 상자를 쌓아놓고 팔고 월마트에도 불닭볶음면이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 삼양식품 주식 가격이 지난 5년간 11배가 오른 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닭면을 종류별로 먹는 한국인은 내 주위에 없는데, 도대체 저 많은 불닭면은 누가 다 사 먹는 걸까? 마트에 갈 때마다 제품 종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분명 비아시안의 수요가 많아야 할 터인데 말이다. 

코스트코. 육개장 옆에 불닭면

미국의 주류 고객을 타깃한 마트에서 한국 식품이 점점 더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 내가 만든 물건도 아닌데 그렇게 신기하고 뿌듯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3가지 요소 중에 하나가 음식이라서 그런지, 한 나라의 음식이 인기가 많아지면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입지도 더 안정되는 것 같다. 


별것 아닌듯한 라면 한 봉지이지만, 몇십 년 전 미국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이다. 


미국에서 계속해서 더 많은 한국 식품 기업들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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