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데 얼마가 필요할까?
얼마가 있으면 일주일 동안 먹고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우선 몇 주간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 냉동실, 팬트리에 있는 모든 재료를 최대한 소진했다. 그러고 나니 냉장고 안에는 양념만 남고, 팬트리에는 토마토와 버섯 통조림 한 캔, 건미역 반봉지, 호두 반봉지, 말린 크랜베리, 밀가루, 렌틸콩 한주먹, 쌀이 남았다. 이제 내 질문에 내가 답을 해볼 차례다.
미국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소량의 물건을 살 수 있는 최적의 마트는 알디 (Aldi)다. 딱 일주일치 먹을 장만 보기 위해 동네 알디에 갔다.
목표는 50달러 미만으로 장을 보는 거였는데, 다 사고 나니 $42.25, 한화로 58,000원이 나왔다. 이때 양배추를 까먹고 못 사서 나중에 집 근처 마트에서 양배추를 $3.22에 구매했다. 그래서 총 $45.47, 한화로 62,000원을 지출해서 20가지 아이템을 샀다.
우유 1 갤론 (3.8L): $2.91
오트 (귀리) 1.2kg: $3.95
뼈 없는 돼지고기 등심 1lb (454g): $5.04
닭다리 정육 5lb (2.3kg): $5.95
간장: $1.55
파스타 면 한팩: $0.98
파 한 단: $0.95
카넬리니 빈 통조림: $0.81
레드 키드니 빈 통조림: $0.91
샤프 체다 치즈: $1.75
다진 마늘: $2.29
당근 2lb (1kg): $1.39
바나나 6개: $1.33
캔탈롭 멜론 한 통: $2.49
양파 한 망: $1.99
파스타 소스 한병: $1.99
시금치 한 팩: $1.49
계란 12개: $1.79
고구마 1kg: $2.79
양배추 한 통: $3.22
한 가지 식비를 아끼는 포인트를 꼽자면, 포장돼 있고 가공된 음식을 가급적 사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식비를 줄이려고 라면을 사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이지 않다.
마트에서 신라면 한 봉지는 $1.50 정도 된다. 라면 두 봉지로는 성인 둘이 한 끼밖에 해결하지 못하는데, 3달러이면 귀리 1.2kg를 산다. 오트밀 30인분을 만들 수 있는 양이다. 3달러로 렌틸콩 한 봉지와 쌀 한 봉지도 살 수 있는데, 성인 한 명이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이제 장본 재료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우리 부부의 삼시 세끼를 해결해 본다.
저녁: 장을 본 날 저녁, 사가지고 온 닭 반 팩, 고구마, 당근, 시금치로 닭갈비와 시금치 된장국을 만들었다. 육수를 낼 재료가 없어서 그냥 된장, 고추장, 마늘만으로 맛을 냈는데 괜찮다. 고춧가루가 없어서 파프리카가루를 넣고 닭갈비를 했는데 이건 비추다. 이때 양배추를 사지 않은 것을 알고 저녁을 먹고 양배추를 사러 갔다.
아침: 수제 그래놀라. 전날밤 귀리, 호두, 말린 크랜베리, 꿀, 올리브 오일을 섞어 오븐에 구워 수제 그래놀라를 만들었다. 그래놀라에 우유를 부어 먹으면 시리얼이 된다.
점심: 미네스트로네 수프와 아이리쉬 소다 브래드. 미네스트로네 수프는 양파, 당근, 콩 통조림, 토마토 통조림, 파스타 소스, 파스타를 사용해서 만든다 (레시피 링크). 수프는 한 번에 많이 만들어서 며칠 먹는다. 아이리쉬 소다 브래드는 밀가루, 버터밀크 (우유에 식초나 레몬즙을 넣어 만들면 된다), 베이킹 소다, 소금을 넣고 반죽하여 오븐에 굽는다. 먹고 남은 빵으로 수프에 곁들일 크루통을 만들었다.
저녁: 닭갈비 볶음밥, 양배추 장아찌, 미역국. 전날 먹고 남은 닭갈비에 밥을 넣어 볶음밥을 만들었다. 양배추 1/3통을 썰어 장아찌로 만들었다. 일주일 동안 밥반찬으로 먹을 예정이다. 소고기가 없기 때문에 미역국은 미역만 넣고 만들었다.
아침: 수제 그래놀라 시리얼
점심: 미네스트로네 수프
저녁: 태국식 돼지고기 시금치 덮밥. 마트에서 산 돼지고기 등심을 집에서 닌자 차퍼로 갈아서 다진 돼지고기로 활용했다.
아침: 수제 그래놀라 시리얼
점심: 미네스트로네 수프
저녁: 안동찜닭과 양배추쌈. 남은 닭다리로 안동찜닭을 만들었다. 계란, 당근, 고구마도 간장에 함께 조렸다.
아침: 바나나
점심: 전날 먹고 남은 안동찜닭과 양배추쌈
저녁: 고구마 당근 체다 수프와 렌틸콩을 곁들인 파스타. 고구마, 당근, 체다 치즈, 양파로 수프를 만들었다 (레시피 클릭). 토마토소스에 렌틸콩을 삶아 파스타 소스를 만들어서 단백질을 보충한다.
아침: 수제 그래놀라 시리얼
점심: 고구마 당근 체다 수프와 렌틸콩을 곁들인 파스타
저녁: 야채 오트 볶음밥과 시금치 된장국. 파, 양파, 계란, 양배추, 당근을 볶고 마지막에 귀리와 쌀밥을 5:5로 넣어서 볶음밥을 만들었다.
아침: 수제 그래놀라 시리얼
점심: 로제 오트 리조또. 간 돼지고기를 볶고, 파스타 소스, 우유, 체다 치즈를 넣어 소스를 만든 뒤 마지막에 귀리와 쌀밥을 5:5로 넣어서 리조또를 만든다.
저녁: 비빔밥과 미역국. 다진 양파, 귀리, 밥을 볶아서 비빔밥의 밥을 만들었다. 비빔밥 고명으로 양배추, 시금치, 당근, 돼지고기, 계란을 썼다.
아점: 고구마 오트밀. 주말에 늦게 일어나서 아점으로 고구마 오트밀을 먹었다. 오트밀을 만들고 마지막에 으깬 구운 고구마와 꿀을 섞어준다. 위에 과일도 얹어준다.
간식
캔탈롭 멜론
오트 떡꼬치: 집에 떡이 없어서 귀리를 갈아가지고 귀리떡을 만들어서 떡꼬치를 만들었다. 식감이 떡만큼 쫀쫀하지는 않아 아쉽다.
바나나 오트 쿠키: 오트밀, 바나나, 꿀, 시나몬 가루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쿠키다. 맛도 있고 만들기가 쉬워서 강추!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오트, 간장, 간 마늘을 제외하고 모든 재료를 소진했다. 솔직히 평소에는 이렇게 예산을 정해놓고 장을 보지는 않는다. 빵도 그냥 사 먹지 굳이 내가 밀가루 반죽해서 굽지 않는다. 외식도 한다.
하지만 일주일 7만 원 미만으로도 두 사람이 먹고살 수 있다는 깨달음 자체가 나에게 뭔가 모를 자신감을 준다. 한 달이면 28만 원, 넉넉잡아 40만 원만 있으면 우리 부부는 힘들지 않게 먹고살 수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둘이서 40만 원을 벌 수 있는 노동력을 유지할 자신은 있다.
브런치에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필요한 돈을 계산하는 법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경제적 독립이란 근로 소득 없이도 현재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경제적 자유라고도 말한다. 나의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필요한 돈을 계산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쓰면 된다.
경제적 독립을 위해 필요한 돈 = 1년 치 생활비 x 25
한 달 식비가 40만 원이면 일 년이면 480만 원이다. 위의 공식을 활용하면 우리 부부의 '식비 자유'를 위해 필요한 돈은 1억 2000만 원이다. 일인당 6,000만 원이 있으면 근로소득이 없어도 식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 달 식비로 100만 원을 쓰면 '식비 자유'를 위해 필요한 돈은 3억 원이 된다. 한 달에 200만 원을 쓰면 6억 원이 필요하다.
노후 준비와 자산 관리는 내가 생활을 유지하는데 얼마가 필요한 지 정확히 아는데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남이 아닌 나를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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