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주식을 사라'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철학
주의: 이 글은 특정 회사의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저의 다른 글을 읽어 본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저는 주식투자는 지수 투자(index investing)를 하라고 추천합니다 (글 링크). 왜냐하면 원금의 2배, 3배, 4배의 수익을 주는 소위 '대박 나는 개별 주식 (winning stock)'을 찾는 것은 매우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기간에 대박을 꿈꾸며 과도한 리스크를 감수하다 잘못되는 경우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의 대가들은 누누이 '당신이 아는 주식을 사라 (buy what you know)'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1970 - 1990년대에 활동했던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가 피터 린치 (Peter Lynch)의 유명한 철학인데, 좀 더 길게 말하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잘 알고, 왜 그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지 알아라 (know what you own, and know why you own it)'입니다. 이 투자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던킨도너츠 투자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던킨도너츠에서 돈을 벌었어요. 그걸 이해할 수 있었죠. 경기 침체기가 와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거기에 가면 사람들이 여전히 있었고, 저렴한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 말은, 그냥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웃으시죠? 던킨도너츠에서 투자한 돈이 10배에서 15배로 불어났어요. 저에게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주식이었습니다 --피터 린치.
이해하기 쉬운 말입니다. 문제는 이 철학을 실생활에서 적용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불닭볶음면'만 봐도 말이죠.
불닭볶음면을 만드는 회사는 우리가 잘 아는 삼양식품입니다. 2024년 6월 25일 기준, 한 주당 654,000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주당 57,600원에 거래되었으니, 약 11배가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주식은 1.7배 올랐습니다.
2023년 12월 31일 제야의 종이 울렸을 때 삼양식품 주식을 샀어도 지금 3배 이상의 이익을 남겼을 것입니다. 과거를 다 아는 현재에서 보니, 삼양식품이 소위 '대박 주식'이었습니다! AI, 전기차, 바이오테크, 배터리, 재생에너지도 아닌, 우리가 항상 마트에서 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미래를 주도하는'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식품회사가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반 전, 유재석과 조세호가 진행하는 '유퀴즈 온 더 블록'에 불닭볶음면 개발자가 게스트로 나왔습니다. 이때 삼양식품 주가는 7만 원 대 후반이었습니다. TVN같이 큰 방송사가 부를 정도면 성공은 검증된 것이겠지요. 유튜브에 올라온 인터뷰 조회수가 오늘 기준 470만 회를 넘었습니다.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었고, 영상이 짤로도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아래 주요 재무정보를 보면 지난 몇 년간 삼양식품 실적은 빠르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2021년에서 2023년까지 두 배가 올랐습니다. 이 기간 동안 주가는 큰 변함이 없었지만요. 사람들은 저평가된 주식을 찾습니다. 순이익은 매년 4-50프로씩 오르는데, 주가는 너무나도 천천히 오르는 이런 삼양식품 주식이 "저평가된 주식" 중 하나였을까요? 과거를 돌아보니 그런 거 같긴 한데, 미래를 몰랐던 과거에는 어떤 답변을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피터 린치의 철학을 적용해 봅시다. 매운 것을 잘 먹는 사람도, 못 먹는 사람도 불닭볶음면과 삼양식품이 뭔지 잘 압니다. 회사 실적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까다로운 방송가 사람들도 삼양식품 직원을 게스트로 부르고, 불닭볶음면 먹방 콘텐츠 조회수도 잘 나옵니다. 2024년 1월에는 삼양식품 CEO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런 뉴스와 콘텐츠들을 보면서 '삼양식품 주식을 좀 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나요?
삼양식품 주가가 천천히 오르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회사의 재무제표를 찾아봤다면, 그리고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주식을 샀다면, 당신은 '아는 주식을 사라'는 철학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저는 과연 불닭볶음면 먹방으로 조회수 올린 유튜버들이, 방송가 사람들이 삼양식품 주식을 샀을지 궁금합니다. 나의 일터인 유튜브에서 불닭볶음면이 조회수가 잘 나오는 효자 음식이었다면, 그 감으로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주식까지 투자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요. 지나고 보면 쉬운 일이지만 그 당시엔 쉽지 않았을 겁니다.
또 상상해 봅니다.
어쩌다 보니 2021년 초에 삼양식품 주식을 주당 10만 원, 총 1천만 원어치를 샀습니다. 2023년 여름이 되었는데도 주가가 아직도 10만 원입니다. 그 와중에 AI주식들이 핫합니다. 오르지 않는 삼양식품 주식 1천만 원을 끝까지 들고 갈 자신이 있으신가요?
지금 삼양식품 주식가격을 알고 과거로 돌아가면 당연히 주식을 안 팔고 가지고 있겠지만, 미래를 모르는 상황에서 수익이 안나는 개별주식을 대량으로 오랫동안 장기투자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아직 손실은 안 났으니 빨리 팔고 다른 AI주식을 사야겠다'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겠지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저는 제 자신이 개별주식투자를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미국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체인 레스토랑 중 하나인 치폴레(Chipotle)때문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대학생 시절, 서부식 멕시코 요리를 판매하는 치폴레에 제 용돈을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 감도 안 잡힙니다. 주머니 사정 어려운 대학생들이 '우리 뭐 먹을까?'를 고민할 때 무조건 후보로 나오는 싸고 맛있고 양 많은 식당이었으니까요. 졸업 후 회사를 다닐 때도 동료들과 일주일에 한 번은 간 거 같고, 지금도 몇 달에 한 번은 갑니다. 십수 년 동안 치폴레에 줄이 없는 것을 못 봤습니다. '잘 아는 주식을 사라'란 철학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러니 이 정도면 한 번쯤은 치폴레 주식을 살 생각을 해봤어야 하는데, 최근 몇 년간 아래 차트에서 보이듯이 회사 주가가 급상승하며 미디어의 관심을 받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1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확실하게 저의 한계를 알았지만요.
대박칠 주식을 찾아내는 능력은 없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치폴레가 자라는 동안 저도 대학 졸업 후 퇴직연금펀드를 통해 꾸준히 지수 투자를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주식 시장을 추종하는 펀드(ETF)를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치폴레는 언제나 제 포트폴리오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