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스트레스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미치는 영향
봄학기에 내 회계수업을 듣고 졸업한 재무 전공 학생에게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졸업 후 몇 달 동안 구직활동을 했는데 아직 좋은 결과를 맺지 못했다. 부모님이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 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셔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서 연락했다. 시험을 보려면 회계학 석사 과정을 들어야 하는지, 어떤 교재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등이 궁금하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답변은,
OO아, 이건 너의 길이 아니다.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22살의 학생들에게 나는 정말 어지간하면 '다시 생각해 봐라'라는 소리를 안 한다. 도전해 보고 실패해도 또 다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는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이 경우는 다르다.
첫째, 아무리 수업에 열심히 오고 노력을 했어도, 이 학생은 내 수업에서 간신히 낙제를 면했다. 과거에 들었던 회계 과목들의 성적도 비슷했다는 것을 안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능력이 안된다.
둘째, 자기는 회계라는 분야에 도통 흥미가 안 생긴다고 내 오피스 아워 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열정이 없다.
셋째, 인터넷에 'AICPA 시험을 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만 검색해도 정보가 수두룩한데, 눈치껏 찾아보지도 않고 나에게 연락했다.
차승원 배우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처럼,
능력도 안되고, 열정도 없고, 눈치도 없으면 이건 정말 너의 길이 아니다.
이 셋 중 하나라도 있어야 내가 응원해 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학생이 나에게 연락했을지 알기에, 차마 이 말을 손끝으로 내뱉지는 못한다.
이메일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학생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회계랑은 담을 쌓고 있다는 것을 정말 몰라서 회계사란 직업을 권유한 걸까?
대학교 4년 성적표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학생과 비슷한 나이의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을 보고 나니,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불안'이 모든 것의 원흉이다.
학생은 취직이 안 돼서 불안하고, 취직이 안 되는 자식을 보는 입장의 부모도 불안한 것이다.
모두가 불안하니, 이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한 안전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미국에서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직이 수월하니, 재무를 전공한 학생에게 그나마 '안전한 길'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공 필수 과목으로 몇 개의 회계 과목을 이수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불안이란 파도에 학생과 학부모가 둘 다 휩쓸리면, 배가 산으로 간다.
회계를 싫어하는 학생이 회계사를 생각할 만큼 불안의 파괴력은 크다.
국가불문 인종불문 남녀불문하고 그렇다.
관찰자로 있는 내 입장에서 답변을 해줬다. 자격증 준비를 하게 되면 생기는 기회비용이 얼마인지. 그리고 미국 회사는 보통 가을 학기에 신규 채용을 많이 하니, 동문으로 학교 커리어 센터에도 연락해 보고 조금 더 레쥬메를 넣어 보라고.
말은 언제나 쉽다.
워낙 오피스 아워에 자주 왔던 학생이라, 이 학생이 장기적으로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알기에, 나한테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물어보는 모습이 못내 안타깝다.
부디 학생과 학부모의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불안의 파도가 잠잠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