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과 리더, 공통점과 차이점
공통점과 차이점 시리즈가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도둑과 리더’가 아닐까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훔친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무엇을’에 있다. 도둑이 훔치는 게 물건이라면 리더가 훔치는 건 마음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훔칠 수 있을까. 마음을 훔칠 수만 있다면 물건이 대수이겠는가.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1 이순신 장군은 전략과 전술이 뛰어났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두려움에 떨던 수군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면 과연 열두 척의 낡은 배로 133척의 왜적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이 함경도에서 근무할 때 고향이 전라도인 병사가 부모상을 당한 일이 있었다. 병사의 심정은 어땠을까. ‘마음은 굴뚝’이지만 천리 길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으리라. 이순신은 병사의 마음을 헤아렸다. 공감한 거다. 자신이 타는 말을 기꺼이 내주었다. 장군의 말을 타고 달리면서 병사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목숨 바쳐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을까. 이순신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 이순신은 공감 능력자, 마음 훔치기의 달인이었던 셈이다.
#2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는 한민족의 주권을 빼앗은 일본의 대륙침공 선봉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하얼빈역에서 사살했다. 여순 감옥에 투옥 중이던 안 의사의 간수 역할을 총독부 육군 헌병이었던 치바 도시치(당시 25세) 씨가 맡게 됐다. 옥중에서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는 안 의사의 언행과 평화를 염원하는 고매한 이념은 치바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음속 깊이 존경심을 품게 된 치바 씨는 안 의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정성을 다했다. 안 의사도 치바 씨의 인간미 넘치는 대우에 감사한 마음이었다. 안 의사는 사형대로 가기 직전 군인의 면모를 가진 그에게 붓글씨 하나를 선물로 건넸다.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의미다. 치바 씨는 귀향 후 안 의사의 초상과 유묵을 집에 모셔놓고 아내와 함께 매일같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그의 후손 역시 안 의사의 유묵을 70년간 소중하게 보관하다 안 의사 숭모관에 유묵을 바쳤다.
마음을 훔쳐 ‘역사’를 이룬 사례들을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인류의 역사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로잡은 사람들이 써 내려온 기록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훔친 자가 제국을 만들었고, 마음을 흔든 자가 권력을 잡았다. 열광하는 팬을 만드는 것도 마음을 사로잡아야 가능한 일이다. 회사 경영이 기술력만으로 될까. 영업도 스킬만으로 가능할까. 마음을 훔친다는 것은 그 사람 전체를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프랑스 소설가 겸 시인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1862)은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발장》으로도 소개되었다. 소설은 주인공 장 발장을 통해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 조각의 빵을 훔치다가 체포된 장 발장. 몇 번이나 탈옥을 시도했으나 결국 19년 간 감옥 생활을 하고 출옥한다. 하룻밤을 지낸 주교관에서 은식기를 훔쳤지만 밀리에르 주교의 자애에 감동해 회개하고, 사랑과 헌신의 생활을 하게 된다. 이름을 미들렌으로 바꾼 그는 공장 경영에 성공하고 많은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끝내 시장이 된다. 그러나 그가 전과자라는 것을 눈치챈 자베르 형사의 끈질긴 추적을 받는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 억울하게 체포된 것을 알고 자수함으로써 모든 일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탈옥한 그는 불행한 창녀 판틴이 죽고 남긴 딸 코제트를 찾아내 훌륭하게 키운다. 코제트가 공화주의자 마리우스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 장 발장은 시가전에서 부상당한 마리우스를 왕당파의 추적에서 구한다. 형사 자베르의 목숨도 살려준다.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인간애를 깨달은 자베르는 자살하고 만다. 코제트와 결혼한 마리우스는 장 발장의 전과 사실을 알고 자신의 아내를 장 발장에게서 떼어놓으려 한다. 하지만 그가 살아왔던 헌신적인 일생을 알고는 임종 때 달려와서 잘못을 빈다.
장 발장은 결국 형사 자베르와 마리우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정한 인간애와 헌신적인 삶을 통해서다. 그렇다.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 훔친다는 것은 상대의 마음속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채워 넣는 것이고 심어 놓을 때 가능한 일이다.
씨앗이 자라 묘목이 되고 거목이 되듯이 마음에 심어진 가치관과 대의와 신념의 씨앗이 자라면 마음 밭을 뒤덮게 된다. 마음에 다른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질 때, 마음속에 뿌리내렸던 기존 것들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가치가 사라질 때, 씨앗은 ‘동기부여’가 되고 ‘행동’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그 행동이 흔들림 없이 오랜 세월 지속될 때 ‘거인’이 되고 ‘전설’이 된다.
마음을 훔친다는 건 결국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통하는 것이다. 하나가 되는 것, 통하는 것은 진심(眞心)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간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도, 이순신 장군이 부하에게 자신이 타던 말을 흔쾌히 내어준 것도 진심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예전 며느리 찾는 치매 시어머니를 웃으며 받아주는 지금 며느리의 마음을 진심 아닌 다른 말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남들 다 쓰는 이메일 대신 직접 손으로 정성껏 쓴 사연을 담은 손 편지는 진심이 아니면 또 무엇이랴.
만남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만남이 아니라 ‘당신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이 담긴 만남이어야 한다.
진심 어린 격려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진심 어린 칭찬은 사람을 춤추게 만든다. 영혼 없는 칭찬은 개도 알아챈다고 하지 않는가. 또 진심이 담긴 충고는 사람을 살린다. 진정성이 담긴 사과는 큰 용기로 받아들여지고 감동으로 전해진다. 이렇듯 진심에는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그러니 매사에 진심을 담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