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어두운 집 안으로 한 발짝 주저하며 내 딛었 을 때,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던 아빠의 숨소리.
그녀를 맞아 준건 ‘휴업중’이라는 팻말을 걸어놓은 까만 그랜드 피아노.
아빠의 ‘엄지척’ 만 평생 받고 자라온 구라라 에게 아버지는 인생의 전부였다.
아빠와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갈 때 그녀는 주저하며 첫 음을 지그시 눌러본다.
지긋지긋한 연습이 싫어서 학교 졸업 후 ‘휴업중’ 이라는 팻말을 속 시원하게 걸어버렸던 까만 피아노. 어느새 휴업 중인 까만 피아노는 그리움으로, 위로로, 또 아빠의 웃음과 엄지척 으로 그녀에게 다가왔고, 아빠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라라의 마음에서 아빠를 떠나보내게 된다.
흔히 알려진 스타인웨이(Steinway&sons) 사의 피아노는 전 세계 유명 연주회장에서 사용되는 피아노로 유명하다. 하지만 뵈젠도르퍼 (Bösendorfer)는 깊고 풍부한 소리의 매력 때문에 특별히 이 악기만을 고집하는 음악가들이 많다. 1828년도 창립된 피아노이니 만큼 프란츠 리스트 시대에 그가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연주했고 그의 화려하고 강한 피아노 테크닉을 견뎌낸 유일한 악기라고 하니, 이쯤 되면 1853년 창립된 스타인웨이 보다도 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만하다. 스타인웨이는 미국 뉴욕과 독일 함부르크에 기반을 두고 생산하고 있고, 뵈젠도르퍼 피아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창립되어 생산되어 왔지만, 아쉽게도 재정문제로 야마하에 매각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야마하악기와는 분리시켜서 오스트리아 장인들에 의해 생산이 되어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도입부의 느린 템포와 음색이 라라의 애타는 깊은 슬픔의 표현이라면, 나지막이 흐르는 반주는
마치 아빠가 홀로 남겨진 딸을 위로하듯 오른손 멜로디 선율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클라이맥스로 점점 치닫아 오르고 담벼락 넘어서까지 느껴지는 탄식 어린 음악에 도망자 신세의 남자주인공 ‘준’의 감정이 더해진다.
무겁게, 마치 마지막 절규인 듯 부르짖은 후
‘아빠 안 녕 ’
으로 조용히 끝을 맺는다.
오늘, ‘엄지척 아빠’가 떠오르며 누군가에게도 그런 사람으로 다가가 기억되어 지기를 바래 본다.
이곡의 원곡은요
R.Schumann / F.Liszt Op.25 ‘Widmung’
슈만/리스트 ‘헌정’
나이도 많고 능력도 없었던 음악학도 슈만은 자신의 스승의 어린 딸 클라라와 사랑에 빠졌고, 클라라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의 투쟁 끝에 결국 둘은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된다. 그리고 결혼식 전날, 슈만은 기쁨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작곡한 가곡집을 신부가 될 클라라에게 바친다.
이 가곡집이 바로 전 26곡으로 쓰인 ‘미르테의 꽃’이고 그중 ‘뤼케르트’의 아름다운 시에 작곡된 1번이 바로 ‘헌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