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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일핑크 Oct 19. 2023

희망찬 업무 배정

결국엔 마음가짐의 문제

나는 꽤 희망적인 편이다. 일을 할 때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잘될 수 있을 거라고 무작정 믿고 시작하는 편이다. 상사는 신규서비스가 올 때 나에게 제안하곤 했다.


"해본 적은 없는데 한번 해보죠 뭐. "


대답은 보통 이런 식이다. 그러다 보니 유독 신규 서비스에 많이 투입되었다.  성향에 맞춘 또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인원에게 적절한 업무를 분배하는 것이 '장'을 단 사람들의 덕목 중 하나다. 상사는 나의 이런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래전, 상사와 함께 팀원의 업무 배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 업무를 A에게 맡기고 싶은데 과연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운을 띄웠다.


나는 그동안 A가 특별히 일을 못한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 주어진 일에 대해 일정을 맞추지 못하거나 큰 트러블을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 못할 것 같다고 하는지, 혹여 편견이 섞인 생각이 아닐까? 의심했다.  특별히 큰 성과를 내진 않아도 무난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연차도 높은 편이라 경험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좋은 프로젝트를 만나지 못해서 좋은 결과물을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나처럼 신규 프로젝트의 기회가 없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말했다.

"한번 더 기회를 줘보면 어떨까요? 또 다를 수 있잖아요. 아직 시도해 보지 않았는데 못한다고만 판단하기는 이른 것 같아요. "

나의 의견은 무시해도 그만이었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는 내게 도전장을 걸 듯,

"그래? 좀 불안하지만 일단 시켜볼까? 시켜보고 다시 판단해 보지 뭐, "


하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A에게 새로운 업무가 배정되었다.



실은 내가 그리 잘하지 못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그랬다. 이 팀으로 옮기기 전, 나는 언제나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신이 없었다. 올라가는 연차나 정기 승진이 부담스러워 직급이 바뀌는 것이 과면 맞을까란 생각도 종종 했었다. 이내 곧 적응이 되어 올라간 연차만큼 책임감이 커진 채로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하곤 했지만 매번 그려지지 않는 다음일이 아득하게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맞는 분야가 아니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은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같은 연차나 직급이 낮은 옆 동료보다도 일을 잘 못한다는 생각이 지배했다. 그리도 어찌어찌 팀에 도움이 되어야 하기에 할 수 있는 일 한 해서는 임신 중에도 야근을 불사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팀이 해체하는 시기가 될 무렵. 다른 팀으로 이동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팀이 해체되는 경우 보통 다른 팀과 면접을 하고 옮기거나 대기팀에서 기다릴 수 있다.


나는 같은 일을 하는 다른 팀이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부서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이 말뜻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버리고 새로운 전환을 의미했다. 여전히 그 부서도 '기획'이라는 팀명을 갖고 있었지만 하는 업무는 현저히 달랐다.

옮기려는 팀과 면접 같은 면담을 진행하고 우여곡절 끝에 부서를 옮길 수 있었다. 여전히 업무 적응은 필요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이곳에 더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기획자였고 분야는 바뀌었지만 더 안정감을 찾고 있었다. 자연스레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프로젝트에도 도전했다.

A도 어쩌면 나처럼 프로젝트를 잘 못 만나서 그렇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니까.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A가 맡은 프로젝트는 나름 규모가 있었고, 완수만 잘 해내면 좋은 성과도 받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시작하기 전부터 잘해서 좋은 성과를 받자며 파이팅이 들어간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프로젝트에서 제3 자라 무언가 도움을 직접적으로 줄 수는 없었다. 다만 괜찮은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게 뒤에서 일심양면 도왔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으므로 내심 A가 잘하기를 응원했다.


나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달라고욧!



가끔 팀장님의 한숨소리가 들리곤 했지만 프로젝트는 굴러갔다. 일정을 미루거나 극악하게 나쁜 결과물을 내던 A는 아니었기에 완성도가 아주 높지는 않아도 완료는 되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종료 후 나는 팀장님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기대치에 다소 못 미치는 결과는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태도에 대한 부분에서 실망을 하고야 말았다.


정말 열심히 해도 결과물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A가 정말 열심히 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하다가 막히면 해결해야 할 시도에 도전적이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기 일 쑤였다. 그러곤 이 정도면 됐다라며 마무리하는 행동은 더 좋은 결과물을 내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A는 일이 많아 힘이 든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부서와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요구사항도 제각각이니 그걸 하나로 만드는 게 여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고, 정말 힘드시겠어요."


라고 응해주면서 어쩔 수 없지만 헤쳐나가야지요. 하는 말은 뒤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라는 것은 곧 어려움이 몇 가지씩은 내포되어 있다는 것쯤은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성과를 받을 수 있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왔다고요!라는 말은 감히 꺼낼 수 없었다. 이렇게 힘든 일을 제안한 나를 원망할 것만 같았다.

A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하고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팀장님이 종종 말하던, 그리고 믿지 싶지 않던,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는 말이 자꾸 확신의 플러스를 더해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내가 틀린 걸까? 정말 변하기는 어려운 걸까?



다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말 일 것이다. 나처럼 일개 경험 없는 일원이 함부로 업무 배정 제안을 하다니 너무 섣불렀나 싶기도 했지만, 팀장은 내 말이 맞지? 직접 보라고! 하며 몸소 알려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결국 변할 수 있는 시작점에는 태도라는 선을 넘어야 한다. 태도는 마음에서 나타나는 것이니 내가 이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에 따라 행동도 말투도 결과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뒤떨어진 역량은 공부를 하면 되지만 태도는 누가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체득하고 연마해야 비로소 발현될 수 있는 것 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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