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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a Jun 09. 2024

나는 매일 국경을 건너며 출근한다

리오 그란데의 눈물


탕. 탕. 탕! 새벽녘의 선명한 총소리는 처음엔 잠을 설쳤지만 몇 달 지난 후엔 그러려니 짐작만 했다. 

한밤중까지 샌드백을 치며 거칠게 운동하는 소리가 잠을 방해해도 

이웃 어느 누구도 불평을 하지 않는 옆집 사람은 마피아 단원이라는 소문만 들었다. 


한 달 전쯤엔 출근길 새벽 차량 행렬이 2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리오 그란데 강에서 표류하다 가라앉는 6세~13세 어린이 8명을 미국 해안경비대가 구조하던 날이었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구조된 아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부모님이 평생 이루지 못한 꿈! 

그들의 자식은 드디어! 미국땅에 발을 딛게 된 것이다. 

국제난민법상 구조된 어린아이들은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지 않고 보호된다고 한다. 

비가 오거나 악천후의 날 부모는 자식에게 목숨을 건 도강을 감행시키고 

미국 측 해안경비대에 발견되도록 기회를 보다가 자식들이 탄 고무보트를 훼손해 바람을 뺀다. 

그리고는 비정한 아버지는 오던 강을 헤엄쳐 멕시코로 되돌아간다지만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다.


어린 자식들의 삶은 불법체류자로 낙인 되고 고통과 희망은 시작된다. 

그들은 난민자 혜택으로 공부하고 성장하고, 법을 어기는 꼬리표가 붙지 않도록 좋은 시민이 되어야 한다. 

미국이 주는 합법적 자격을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라야 손꼽아 기다리던 부모형제를 초청하게 될 테고 조상 대대로 꿈꾸던 단 하나의 희망, 아메리칸드림을 시작하게 된다. 


내가 살던 '레이노사'와 옆 도시 '마타모로스'는 멕시코 지도보다 더 아래 중남미로부터 북으로 북으로 밀려 올라온 제3세계 출신자들까지 밀입국 희망자들의 최종 집결지다. 

그들이 수년 또는 수십 년을 걸쳐 도착한 후에도 건너야 하는 마지막 희망과 죽음의 관문이 있다.


거대한 미국 땅 콜로라도 캔비 마운틴 고원을 시작으로 장장 3,051km를 쉼 없이 달려온 리오 그란데 강은, 식인상어와 해안경비대와 최종 목숨을 건 밀입국자들의 추격전이 년 중 무휴로 벌어지는 곳이다. 


먹을 게 없어서, 희망이 없어서, 모국을 떠나 신대륙을 찾아 목숨을 건 위험이 너무나 친숙한 장면이 되어가는 곳, 매일 새벽과 저녁 긴긴 줄을 서는 자동차들, 걸어서 2시간 거리 양국을 오가며 일하는 합법적인 일일 노동자들의 치열한 삶과 이름 없는 목숨들이 강물 속에 묻히는 막연한 죽음을 동시에 마주하는 곳. 


처음 내 눈에 박힌 잊지 못할 진풍경은 온갖 종류의 비닐봉지가 철조망에 걸려 깃발로 나부끼며 가는 곳곳마다 나를 반기고 있었다는 것, 이곳은 매일 40도를 오르내리는 뜨거운 햇볕에 풀이 타들어 가는 초록이 없는 목마른 도시다.


내가 한국을 떠나 처음에 거주한 이곳 '레이노사'는 멕시코 북동부 타마울리파스 주와 미국 텍사스주 최남단과의 초 접경 국경지역, 그야말로 이쪽 끝과 저쪽의 끝이다.


선진국이 된 우수한 한국 젊은이들이 흔쾌히 도전을 결정하지 않는 곳, 

나는 '레이노사' 국경에 있는 마킬라도라(Maquiladora)의 한국투자업체에 취직을 하고 HR, 인사, 자금 총괄 관리팀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마킬라도라는 1965년 맺어진 미국과 멕시코의 무관세지역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의해 미국보다 저렴한 인건비의 멕시코 노동 활용의 최대규모 공장지대다. 마산수출자유지역 같은 한국 역사 사진 속 50년대 구로공단 비슷한 분위기라고 할까?


움푹움푹 파인 물웅덩이 도로, 번호판이 아예 없는 여기저기 찌그러진 자동차, 폐차장에 가야 할 시내버스에 미어터지는 사람들. 아무 데나 드러눕는 휴식시간, 목표도 꿈도 계획도 기업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직원들이다. 급해도 뛰지 않고, 파티는 즐기되 술에 취하지 않고, 불평을 절대 드러내지 않아 다툼이 없는 나라. 무엇이나 견디는 무사안일 태평함은 지배받은 역사로 인한 그들의 슬픈 천성, 가난하고 힘들어도 어차피 인생, 심각할 거 없다는 게 이들의 자랑이다. 


작은 공 2개로 어설픈 묘기를 부리던 어린 소녀가 운전석으로 다가온다. 

깡마른 얼굴로 새까만 손을 내민다. 

신호등이 고장 난 마킬라도라 삼거리, 그녀는 늘 맨발이다. 

업고 있는 아기의 우물 같은 맑은 눈이 나를 본다. 

모아둔 페소 동전 한 움큼을 건네며 말해 준다. 

“Te amo 당신을 사랑해요”! 


미국 비자를 받아 든 2년여 후 나는 국경 건너 미국 땅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총을 든 군인들의 짐 검색과 나를 보장하는 오직 한 가지 위대한 도구 '대한민국 여권'을 스캔하는 신분확인 절차가 지나서도, 냄새에 예민한 감시견이 자동차를 한 바퀴 돌아야 무사통과! 휴~~~!


외국인인 나에게도 나를 보는 이에게도 '마음대로 건널 수 없는 경계'는 어디에서나 있다.

내가 건널 수 없는 선, 내가 건너지 말아야 하는 선, 나의 존재와 생명이 허락되는 선,..              

내 나라에서의 나와 달리, 지구촌의 모든 국경에는 보이지 않는 철조망이 쳐져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 것은, 여권과 비자만이 나의 실체이고 보증이며, 이곳에선 내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것을 소스라치게 깨닫고 난 뒤이다.


예순에 당도한 후 방황과 우울에 빠진 예순 앓이에 깨끗이 안녕을 고한 나는 지금, 

고국의 지구 반대편 '안 잘 두아스 Anzalduas border' 국경심사대 근처에서 매일 살아있음이 위치 추적된다.


삶과 죽음의 강 리오 그란데의 눈물을 따라, 나는 매일 국경을 건너며 출근을 한다.   





나는 매일 국경을 건너며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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