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올해 마지막 밤의 비행, 스코페로 떠나자

세상의 주인 되기

by Jay Kang

이번이 올해 마지막 여행이다.
내가 향하는 곳은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북마케도니아.

이전에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 발칸 특유의 분위기가 아주 낯설지는 않겠지만,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이후 그다지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라 솔직히 조금 걱정도 되었다.


여느 유럽연합 국가들과 달리, 이곳은 EU 소속이 아니기에 핸드폰 유심이나 환전처럼 미리 준비할 것들이 제법 많았다. 다른 유럽 여행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던 것들까지 하나하나 확인해야 했다.

어느덧 몰타에서의 영어 연수도 끝나가고, 틈틈이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많은 걸 보고 느껴왔지만, 이번 여행은 뭔가 다른 감정이 스며든다.

정말 올해의 마지막, 유럽에서의 마지막 여정이기 때문일까.


비행기는 저녁 7시 30분 출발이라, 전날 짐을 싸지 않고 아침에 천천히 준비했다. 오후에도 시간이 넉넉해서 여유롭게 하나씩 챙겼더니 이번만큼은 빠뜨린 것이 하나도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보통은 저렴한 호스텔을 이용했지만, 북마케도니아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저렴해 이번에는 부담 없이 호텔을 예약했다. 덕분에 호스텔을 이용할때 만큼 준비물이 많지도 않았다.

오후가 되어 마지막으로 짐을 점검한 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여행 첫날의 부푼 마음에 조금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내 비행기는 몰타 현지 시각으로 저녁 7시 30분 출발,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에는 밤 9시 20분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도상 거리로 보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비행이었다.

몰타공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은 섬나라에 공항이 있다는 점이 늘 놀랍다. 인구 55만의 작은 나라에 매일같이 북적이는 공항이라니,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몰타 사람일리는 없고, 겨울철인 데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있다 해도 몰타가 대표적인 겨울 관광지는 아닌데도 정말 항상 붐볐다.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와 산맥들


공항의 출국장엔 면세점이 있어 시간을 보내기엔 괜찮았지만, 막상 살 만한 물건은 없었다. 공항 규모가 작다 보니 다양한 물품이 구비되어 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며 쇼핑하는 것은 아무래도 피하고 싶었다.

간단한 간식거리를 편의점에서 사서 시간을 보내던 중, Wizz Air 북마케도니아행 비행기가 35분 연착되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미 비행 출발 기준 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여기에 35분이 추가되면 거의 4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더 걱정된 건 스코페 공항 도착 시간이 늦어진다는 점이었다. 그곳은 다른 유럽 대도시들처럼 대중교통이 잘 연결되어 있지 않을거라는 예상이 들었다. 특히 밤 10시 이후엔 공항버스가 끊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게 되면 도착해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예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밤 11시에 도착했던 일이 떠올랐다. 시내 중앙역에 밤 12시에 도착했지만, 낯선 거리에서 숙소를 찾아 헤매느라 한참을 헤맸던 기억이 눈앞에 떠올랐다.


몰타공항엔 공용 텔레비전도 없어서 시간 보내기가 더 어려웠고 설사 있다라도 현지어로 방송이 나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항 와이파이로 시간을 보내보려 했지만,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흥미를 잃었다.
슬슬 지쳐갈 무렵, 출국 수속 안내가 나와 출국장으로 향했다.

북마케도니아가 비 EU 국가라 그런지 출국 전부터 여권 검사를 받아야 했고, 몰타 비자가 있더라도 면제되는 건 없었다. 심사관은 늘 그렇듯 굳은 얼굴로 내 여권을 검사했고, 검사를 마친 후엔 마치 물건을 던지듯 툭 던지 듯이 내게 주었다. 순간 기분이 언짢았지만, 별다르게 대응할 방법도 없어 그저 속으로만 분을 삼켰다.


나는 불법 체류를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고, 교육비와 생활비, 렌트비 등 경제적 기여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 이런 대우를 받을 때면 억울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온다.

기분이 가라앉은 채로 탑승 줄에 서 있던 중, 저가항공 특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짐 무게 제한에 걸린 듯한 할머니 승객 한 분이 가방 검사를 받고 있었는데, 규정보다 크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야 한다는 통보를 받자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해 보였다.

그분은 자신의 짐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 보이며 규정 범위 내라고 항의했지만, 항공사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러던 중 옆에 서 있던 체격이 큰 아저씨가 나서서 그 노인의 짐을 다시 정리해 주고, 짐을 허용 한도 내로 억지로라도 밀어 넣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자, 직원도 더 이상 강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런던이나 파리 같은 대도시였다면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 여행지는 인구 200만 남짓의 작은 나라. 아직은 타인을 도와주는 마음이 남아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탑승을 마치고, 내 백팩을 기내 수납함에 넣은 뒤 자리에 앉았다. 밤하늘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활주로 위의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문득 숨을 죽이고 생각했다.

과연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어떤 새로운 경험과, 또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번이 유럽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행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실감 났다.

비행기는 점점 속도를 올리며 어둠을 가르고, 나는 조용히 하늘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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