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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덩민작가 Aug 19. 2023

나는 혼자 살기로 했다.

②그녀는 누구였던가.

2003년 1월 어느날쯤이었다.

2002년에서 2003년을 지나오는 겨울께에 엄청난 폭설과 함께 굉장한 추위를 알리는 뉴스로 떠들썩했던 

그런 날들중에 어느날이었다. 

앳되보이는 소녀가 긴 머리를 질끈 묶고(그렇지만 잔머리가 이리저리 삐져나와있는)

엉성해보이는 포대기로 이제 고작 한두달정도밖에 안 되보이는 아기를 업고 읍사무소에 들어섰다.

삼선슬리퍼를 맨발로 직직 그시며- 들어선 소녀는,

"주민등록증 발급하라고 우편물이 와서요,"라며 우편물을 내밀며 수줍게 이야기 한다.

읍사무소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 소녀에게 몰린것 같아서

소녀는 굉장히 부끄럽고, 시선들이 따갑게 느껴졌다.


"아이고~ 애기엄마인지, 이모인지, 고모인지, 이추운날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오면 어떻해~ 양말을 신고 다녀야지"  

"......"

"애기 춥겠다~ 뭐좀 덮어서 나오지."

"....."

그안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이 한분한분 소녀의 곁으로 모이고,

결국 그 소녀는 주민등록증 발급 신청을 마치는 동안 내내 

안면식도 없는 아주머니들로 빙 둘러쌓여 구경꺼리가 되었다.


읍사무소를 나서는 소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집으로 걸어가는길.

엊그제까지 내린 눈이 아직 인도에 새하얗게 남았는길을 걸어간다.

사실 그때 소녀는 어리기 때문이었던걸까, 강철멘탈 이었던걸까. 

춥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등뒤에 업혀 심장의 두근거림을 함께하는 이 아기는,

그 소녀의 둘도 없는 친구였고, 보물이었고, 보석이었고, 또 그녀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생물(?)이었다.

아기가 세상에 나왔던 순간을 소녀는 기억해본다.

이렇게 예쁜아기는 세상에서 처음봤을만큼, 너무나 하얗고, 동그란눈에, 앵두같은 입술.

아! 백설공주가 정말 있다면, 백설공주의 아기적 얼굴은 이렇게 생겼지않을까? 





소녀는 아기가 태어난지 3개월정도 뒤에 주민등록증을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녀의 나이 이제,

열여덟이었다.




아이아빠는 그녀와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그역시도 군대를 제대한지 얼마안된 사회초년생이었기 때문에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시아버지는 허구헌날 나와 아기를 찾아와 집을 때려부쉬고 경찰을 불러야 돌아가곤 했다. 그런날들은 생각보다 계속 이어졌고, 마음도 괴로웠었지만, 아기 분유 살 돈마저 없어, 굶길순 없어서 소매를 걷어부치고 알바를 시작했다. 낮에는 아기랑 놀아주고,집안 일을 하고, 아이아빠가 퇴근한 시간부터는 야간 설겆이 알바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24시간 감자탕집이었는데, 소녀가 퇴근하는 아침 7시에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뼈가 온전히 고와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맛있게 잘 고와진 뼈와 씨래기를 얻어와 아이아빠의 아침을 차려주곤 하며,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던 알바였다. 

그때가 아기가 9개월쯤이였는데, 안그래도 잠순이였던 아기 엄마는 아기가 분유를 먹었는지 안먹었는지 생각이 안날정도로 잠에 취해 감당이 어려워져서 감자탕집 알바를 그만두고,  횟집 알바를 시작하게 됐다. 

횟집 알바는 소녀의 적성에 딱 맞았고, 돈벌이도 좋았다. 

그때 좀 돈을 모아서 빚을 잘 갚게 되었던 것 같다.

결혼전 아이아빠가 가지고 있던 빚이며,

아이와 우리 가족 생활비며,

내몸이 부숴져라 일하며 갚아 갔고, 세월도 어느새 흐르고 흘러

소녀가 그렇게 되고싶었던 어른이,

어느새 되어있었다.


소녀는 매일매일 어른이 되고싶었다.

빨리 나이를 먹고싶었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 정말 어른이 되어야지.

창피한 어른이 되지말아야지..

항상 되내었었다.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을 지켜줘야지.

긍정적인 어른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기운을 줘야지.

나는..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다짐했었다.




그 시절에는 주5일제가 아니었지만, 놀이방에 토요일까지 보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당시 갓 돌지난 어린아기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출근하는 엄마들은 아마도 공무원,혹은 회사원 쪽이 많았었던듯 했다=나처럼 식당일을 하며 놀이방에 보내는 젊은 엄마는 그당시 본적이 없었다.)

휴일이나, 토요일 같은경우에는 아기를 업고 횟집에 출근했다.

그러면 이모님들이 너도나도 할거없이, 아이키우느라,식당일하랴. 힘든 나를 위해서 

번갈아가며 아이를 봐주시고, 업어주시고 그렇게 키움을 동냥했다고 할수있을만큼 도움을 많이 받았다. 


손님이 없는 요즘은 브레이크타임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시간이 자유시간처럼 쓰였다. 잠이 모자란 사람은 쪽잠을 자고, 십자수를 하는 이모님도 계셨고, 은행일을 보고 오시는 이모님도 계셨다. 간혹 화장품 방판하시는 영업사원분들도 오셔서 

재밌는 구경거리를 제공해주곤 했다.(쇼핑은 항상 옳다!)

나는 그시간에 아무도 모르게 쪽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문제집을 펼쳤다.

손님없는 시간을 틈타 몰래 몰래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중고로 얻은 검정고시 문제집을 보며, 누군가 칠해놓은 별표를 유심히 몇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나는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나와 동갑인 친구들과 같은해에 졸업장을 따냈다.





에필로그


횟집에서 일할때는 소녀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시기였다.

나는 그때의 추억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았고, 행복했던 일들이 많았다.

아픔도 많았지만, 내가 선택한 삶에서 후회는 없었다.

누군가는 말한다.

네가 젊어서 체력적으로 힘든걸 몰랐을 꺼라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내 아이의 얼굴이 보약이고, 비타민이었다.

내 모든 존재의 이유는 몽땅 너였다,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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