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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의 Jun 07. 2024

'영끌MZ'의 내 집 마련, 그 이후

27살, 집이 가지고 싶어서 사버린 사람의 심경고백

 스무 살에 첫 자취를 시작한 이래로 줄곧 어딘가 내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헤맸다. 체리 몰딩과 노란 장판에 MDF 옷장과 책상이 갖춰져 있는 전형적인 대학가 원룸부터, 1층같은 반지하라던 구옥 다가구 주택까지 다양한 집들을 경험했다. 그렇게 수많은 집들을 전전했다. 악덕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못 받을 뻔하기도 했고, 보일러가 노후돼 겨울에도 찬물로 샤워하며 떨었고, 진짜 너무 큰 바퀴벌레들한테 집을 뺏기고 도망쳐 친구네 집에서 잔 적도 있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부족한 예산으로 방을 찾으려니 살 만한 방을 찾지 못해서 하루 종일 부동산을 돌다가 지친 발걸음으로 밤 거리를 걸으며 “세상에 저렇게 집이 많은데 왜 내 집은 없지?” 하며 실소를 하던 때, ‘진짜 내 집’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 집 마련을 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우선 청약이라는 것이 있다고 해서,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 정보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미혼이자 20대 중반에 불과한 나에게 청약의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행복주택이니 청년주택이니 하는 정책도 있어서 이것저것 다 넣어 봤지만 다 떨어졌다. 

미혼에게는 사실상 청약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부아가 나서 한 번은 친한 게이 친구에게 이런 제의를 하기도 했다.

“오빠, 우리 위장결혼해서 신혼부부 특공으로 청약 받을래? 차익실현하면 반으로 나누고, 연애는 밖에 나가서 알아서 하고 와. 괜찮지 않아?”

“좋은데! 언제 할래, 여보? 아니면 자기?”

“앗, 진도가 너무 빠른데? 우리가 10년 후에 먹고 살 길이 막막하면 차차 생각해 보자.”

(*오해 금지. 농담이었습니다! 위장결혼 안 했습니다.)





 2020년 초,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니 접어 두었던 내집 마련의 꿈이 슬슬 피어올랐다. 퇴근을 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각종 부동산 정보들을 탐독하며 서울과 그 인근 지역들을 조사했다. ‘집을 산다’와 ‘사지 않는다’ 사이에서의 선택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큰 돈을 모아둔 것도 아니고 이제서야 돈을 벌기 시작한 대책 없는 사회초년생 나부랭이지만, 집을 산다는 큰 결정을 하는 데에는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래를 생각해 보면 높은 확률로 내 인생을 혼자 헤쳐나가며 살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든 자식이든 누가 날 부양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국민연금도 내가 받을 수 있게 되기 전에 고갈된다니 기반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고 했는데, 지금은 그 책을 읽은 지 하도 오래 돼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여자가 뭔가를 해 보려고 한다면 경제적 기반과 자기 공간이 필요하다는 핵심 주제만큼은 뼈에 새겨 놓은 상태였다.



 과거 추이를 봐도 호황과 불황을 오갔던 경제 사이클에도 불구하고 서울 집값은 꾸준히 우상향했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돈이 없으니 전세를 끼고서라도 사서 더 오를 경우를 대비해 일단 ‘찜’해 놓기로 했다. 마침 코로나 초기 기록적으로 낮아진 금리로 인해 대출을 끌어오는 것에 대한 부담이 덜했던 시기였고, 크고 좋은 집을 원했던 건 아니었으니 돈은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큰 의사결정을 좀 안일하게 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 불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계약 당일, 야근을 하던 중 회사를 잠시 빠져나와 부동산에 도착했다. 매도자는 50대 아저씨였다. 혹시나 매도자의 계좌번호에 오타가 날까봐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눌렀다. ‘송금 완료’.

“어, 이거 이상한데요?” 

“네? 무슨.. 문제가 있나요?”

“0을 하나 덜 보내셨네요.”

아차, 이런 초보자같은 실수를 하다니. 이렇게 큰 금액을 거래해 본 건 처음이라 초보자가 맞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을 때에는 내가 드디어 집을 가지게 된다는 기대감에 손이 떨렸다. 그리고 대출금과 이자를 생각하니 다시금 손이 떨렸다. 하지만 설렘과 기대가 더 컸다. 계약을 마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왠지 조금 더 의기양양하고 당당했다. 그렇게 난 유주택자가 됐다.






집을 사고 난 이후의 소회를 풀어 보자면, 사실 나는 아직 온전한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다. 내 명의의 집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실거주를 할 돈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월셋집에 실거주를 하고 있고, 내가 소유한 집에는 지금 어떤 신혼 부부가 전세로 살고 있다. 언제쯤 들어가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진짜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해 열심히 대출금을 갚고 있다. 말이 대출금이지, 개인적인 체감 상으로는 소유권을 미리 확보해 두고 조금 더 비싼 저축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유주택자라고 하면 왠지 돈이 많을 것 같지만 여전히 무주택자 시절과 비슷한 삶을 산다.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 집을 구해서 하우스메이트와 월세를 나누어 내고, 얼마 전에는 살고 있던 집의 집주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이사도 하게 됐다. 소유하고 있는 다른 집이 있든 없든 어쨌거나 나는 세입자다.



집을 사기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 집이 한 채 있다는 건 꽤 많은 것을 의미한다. 나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추구하며 안정성보다는 모험을 바라는 부류에 가깝다. 하지만 집을 사고 나니 약간은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를테면, 나는 회사를 대책 없이 쉽게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월에 내야 하는 nnn만원의 월세와 이자를 생각하면 지속적인 현금 흐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집을 산 이후 퇴사를 아예 안 했던 건 아니지만, 수입이 없는 기간에 불안함과 쪼들림이 더 빠르게 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것들은 미루거나 포기하게 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나는 외국에서 최소 6개월 이상, 오랜 기간동안 살아보고 싶은 막연한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한국에 남겨놓게 될 빚이 눈에 밟힌다. 초기 정착 단계에서는 수입이 없을 테니, 엄청나게 조급해할 내 자신의 모습이 이미 그려진다. 차마 버킷 리스트에서 아예 지워버리지는 못했고, 한 3년 이후로 미뤘다. 



예전에는 ‘그저 안정적인 대기업이 최고야.’ ‘교대에 가는 게 어떻겠니?’ 하던 어른들이 답답했었다. 이제는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는 집 하나만 샀는데도 사람이 조금이나마 안정추구형으로 바뀌었는데, 하물며 집도 있고 배우자도 있고 애도 있는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그들이 보기엔 나는 아직도 한참 철없을 거겠지만 말이다. 




반면 집을 산 이후로 좋은 점이 있다면, 심정적인 든든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말 작디작은 공간이지만 내 소유의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정한 자립의 발판이자 어느 정도 안전망을 갖추게 됐다는 느낌을 주었다.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나는 지하철 9호선을 타면 왠지 마음이 풍족하고 뿌듯해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9호선은 극악의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지옥철이라고 욕을 많이 먹는 대표적인 노선이다. 심지어 나도 8년 전쯤 사람이 너무 많은 9호선 급행에서 산소가 부족해 쓰러진 적이 있다. 그런데 부동산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날부터, 9호선을 타면 나도 모르게 은은한 미소가 지어진다. 단순히 9호선 라인에 내 집이 있다는 이유다. 

가끔 버스를 타고 올림픽대로를 지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버스 안에서 창 밖의 어딘가 한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혼자 흡족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나일 것이다. 저 멀리 내 집이 별 탈 없이 우뚝 잘 서있는 걸 보면 왠지 마음이 든든하다.




경제 뉴스나 부동산 관련 소식을 관심있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집을 사기 전에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용어들은 알아들을 수 있었지만, 내가 실제 투자의 주체로 참여하게 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미국 국채 금리가, 원자재 가격이, 환율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예측해보게 됐다. 

얼마 전에는 내가 산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 추진 위원회 단체 카카오톡 방에도 들어갔더니 지역 주변의 다양한 호재들, 그리고 그 지역과 관련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가장 빠른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또 가끔 회사나 모임에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은둔의 부동산 고수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의 대화에 낄 수 있게 된 것도 색다른 묘미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눔받을 수 있고, 나도 내가 공부한 것들을 최대한 공유하며 새로운 것들을 또 배워 나간다.  








집값이 한참 올랐던 2022년 초반에는 내가 산 가격보다 3억 정도 가격이 치솟기도 했다. 그러다가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자 가격이 훅 빠지기도 했다. 어차피 안 팔고 계속 들고 있을 거니까 떨어진다고 해도 별로 불안하지도 않았다. 후회도 없었다.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뉴스 경제면을 장식하는 ‘영끌MZ’, 그게 바로 나다. 가계부채 상승의 주범이자, 무분별한 투자로 패가망신하는 것으로 그려지며 여러 미디어와 댓글창에서 두드려 맞고 있는 중이다. 가끔은 역으로 미디어에서 ‘주거 공간이 없어서 내몰리는 청년들’로 프레이밍되어 동정표를 받기도 한다. 사회의 시선이야 어떻든, 나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자 더 혼란할 미래에 대한 준비의 일환으로 이러한 선택을 했을 뿐이다. 그 결과 다행히 패가망신은 안 했고 대출 원금과 이자를 착실하게 잘 갚아 나가고 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나의 안온한 공간을 꿈꾸며.









배경이미지 출처: T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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