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학도가 간호사가 된 이야기
나는 매우 내향적인, 수학과 과학을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숫자와 기호로 이루어진 세상은 항상 답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탐구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즐겼다. 지금에 와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중학생 때 온갖 수학 경시대회를 휩쓸고, 고등학생 때는 과학 영재로 발탁이 되어서, 포스텍에서 한 달에 한번 정도 과학 영재 수업을 들을 정도였다. 나의 꿈은 순수한 학문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주변의 사람들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되리라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모험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었다. 어쩌면 지루하다고 할수도 있는, 그저 나와 나의 연구만이 있는 작은 나만의 공간에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던 나는,
지금 호주의 가장 큰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한없이 낯선 환경에서, 매일 수많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어쩌다 보니, 호주 간호사
나는 이 낯선 땅에서 종종 내가 왜 여기로 흘러들어왔을지를 생각해 보았다. 어떤 순간은 누군가에게 등을 떠밀려서, 또 어떤 순간은 온전한 나의 의지로 했던. 그런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이 파도처럼 모여, 나는 한국에서 호주까지 천천히 떠밀려 온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은 시작은 뜬금없게도 2005년의 황우석 사태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잊혔다가, 요즘 넷플릭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다시금 사람들에게 알려진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은, 당시 과학도를 지망하던 학생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한국 과학의 위상을 흔드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가 계속 과학을 사랑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었겠냐만은, 주변의 상황은 의외로 그렇지가 않았다. 지금 많은 학생들이 유투버나 인플루언서를 장래희망으로 삼는 새로운 시대가 왔듯이, 학생들의 장래희망 1순위가 과학자이던 시절이 빠르게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지원할 때는 한국의 경제가 그렇게 좋지 않았고, 취업을 현실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순수과학에서 한발 물러나 공대를 지원했는데, 첫 번째 파도가 밀려왔다. 간호사가 취업이 잘된다는데 한 지망은 간호대를 지원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나는 이미 다른 두 지망의 대학에 갈 거라고 마음먹었었기 때문에, 그냥 밑져야 본전인 셈으로 간호대에 지원을 했다.
하지만 세 곳에 모두 합격하고 나자 주변의 파도는 쉼 없이 몰려왔다. 대부분은 여자가 공대를 나와서 회사생활을 하면 얼마나 하겠느냐. 취업하기가 쉽겠느냐는 이야기였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의 사명과 직업의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생의 가장 큰 첫 번째 선택이라는 대학 앞에서, 파도는 폭풍 속의 그것처럼 몰아쳤다.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있지 않은가.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폭풍에 쉽쓸리다가 난파되고, 주인공이 눈을 떴을 때 무인도에 떨어진 자신을 알게 되는 그런 흔한 장면 말이다.
파도에 휩쓸려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정신을 차리니 나는 그렇게 간호대학에 입학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