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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삭 Dec 24. 2023

영화 말고 뮤직비디오 하시죠

「발레리나 (2023)」, ★★☆☆☆


*「발레리나」, 「아저씨」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발레리나」, 2023

・ 이충현 감독 / 전종서, 김지훈 주연



지독하고 간절하게 쫓아 지켜내야 합니다



  많은 호평을 받았던 단편 「몸값」과 젊은 나이에 창작해 낸 상업 영화 두 편으로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이충현 감독의 작품 「발레리나」입니다.


  그의 연인이자 독특한 마스크와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며 연기력 있는 배우로 이름을 알린 전종서 배우, 또 섹시 빌런으로써 새로운 변신을 한 김지훈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요.


  자연스럽게 배치된 오브제들과 과감함에도 실수 없는 롱테이크, 그리고 언제나 시선을 뺏는 영상미는 이충현 감독의 이번작에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공허한 표정으로 사력을 다하는 전종서 배우의 연기와 프로듀서 그레이의 음악까지. 시각적 / 청각적 즐거움 하나만큼은 그리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고 느껴졌는데요.


작 중 최종 빌런인 최프로

  다만 「발레리나」의 유일한 오점이자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 각본의 부실함이 발목을 잡습니다. 초반 20분에 몰아치던 영상미와 연출들, 음악은 거의 제 기대감을 원격 폭발시켜 버렸습니다만,


  후반으로 갈수록 극심하게 빈약해지는 플롯, 짧은 러닝타임과 간결한 선형적 서사임에도 떨어지는 설득력 등 결론적으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라는 감상이 남습니다.


 결국 크레딧이 올라가며 든 생각은 "아, 이건 그냥 그레이 음악의 뮤직비디오였으면 죽여줬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아마도 처음으로 아쉬움을 토로하는 논조로 포스팅하게 될 것만 같죠? 이만 작품 「발레리나」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며 구출물의 플롯, 그리고 한국 누아르 하드보일드 명작 「발레리나」를 함께 예시로 들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I

줄거리


영상미는 정말 넋 놓고 보게 됩니다

  고요한 집에서 고요하게 살아가는 여자가 있습니다. 옥주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자는 맨주먹부터 총기까지 못 다루는 게 없는 전투병기나 다름이 없는데요.


  용병인지 정보기관 소속인지는 명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만 가족도, 연인도 없이 평범한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살아온 그녀에게는 소중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친구의 이름은 민희입니다. 옥주는 케이크 샵에서 학교 동창 민희를 우연히 마주쳐 우정을 다시 시작했는데요. 작 중 발레리나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한 민희와 가까워진 옥주는 마음을 나눌 친구,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따뜻함이나 평화, 정서적 안정을 찾게 됩니다.


  어느새 '얘 없으면 별 의미 없는 나'가 되어버린 옥주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져 버린 민희, 범죄조직의 간부이자 변태성욕자인 최프로의 만행,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친구의 불행과 같은 불행에 빠져있던 또 다른 여고생을 구하기 위해 추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II

그들은 무엇을 구출하는가?

영웅 서사의 구조


  「발레리나」의 기승전결은 2010년 원빈 주연으로 개봉한 「아저씨」와 꽤나 닮아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두 영화 모두 '영웅이 여정을 떠나 성배를 찾고 균형 세계로 돌아온다'는 영웅 서사의 고전적인 부분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서사는 영웅이 살고 있는, 어쩌면 아직 영웅으로 거듭나지 못한 주인공의 균형 세계에서 시작됩니다.

곧이어 내 • 외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주인공은 자의 • 타의적으로 자신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종막에 이르러 고전 작품에 등장하는 성배나 절세미녀, 혹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여정의 징표를 획득하곤 다시 균형세계로 돌아오는 서사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저씨」의 차태식과 「발레리나」의 옥주 두 캐릭터 모두에겐 균형 세계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일상 세계'라고도 하는데요.


  차태식에게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머지않아 태어날 자신의 아이가 있었고, 옥주에게는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였던 민희가 있었죠.


  두 사람의 양陽은 두 사람 모두 평범한 사람들과 동떨어져 그림자 속에 살아간다는 음陰과 균형을 이룹니다. 동시에 양을 놓칠 수 없는 주인공들의 행위 동기를 납득시키면서요.


  한 마디로 그들에겐 평범한 게 평범하지 않다는 말인데요.
균형을 되찾기 위해 뛰어드는 영웅들

  그러한 균형은 자신이 몸 담그던 음의 세계로 인해 파괴됩니다. 차태식의 아내와 아이는 다른 조직의 원한으로 그의 눈앞에서 즉사하고, 옥주의 친구 민희는 범죄조직에게 성적인 학대와 가스라이팅을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어떻게 보면 두 캐릭터는 누군가를 구해내는 것에 이미 한 번 실패한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고, 작품은 그들이 구해야 할 대상을 새로 등장시킴으로써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셈인데요.


  차태식에겐 소미라는 여자아이가 그러하고, 옥주에게는 최프로의 또 다른 피해자인 여고생이 두 번째 기회입니다.


  결과적으로 두 인물에게 주어진 방향성은 첫 번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여정과 그에 걸맞은 엔딩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주는 서사로 이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아저씨」와 그 뒤를 이으려던 수많은 한국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들의 격차가 두드러지는데요. 「발레리나」의 플롯은 명확하게 '구출'을 담고 있지만 의미적으로 누가 누굴 구하는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써 구원을 받는지 크게 설득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고생을 구함으로써 옥주가 얻는 것은 무엇인지, 옥주가 목숨을 걸고 여고생을 구출하는 것에 있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의 옥주의 삶은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에 대해 숲을 그려내지 못하고 화려한 액션만이 남은,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듯한 아쉬움이 큽니다.


구출물이지만 구원을 이뤄내는 <아저씨>

  먼저 차태식과 소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봤을 때, '차태식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미를 구출한다'는 서사가 큰 감동을 주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작품은 전반부 차태식이 소미를 구하러 움직이는 동기에 대해 은연중에 두 인물을 동일시하기 때문인데요.


차태식 = 소미


  두 사람은 모두 버려지고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입니다. 마약중독자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며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나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소미와 자신이 하던 일에 회의를 느끼고 가족들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태식.


  심지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눈앞에서 가족이 고통받거나 죽어가고 있으며,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기까지 한데요.


  결국 차태식은 스스로의 과거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소미를 범죄 조직으로부터 꺼내는 것이 아니라,


  엔딩 장면에서 소미가 갖고 싶어 했던 문방구의 물건들을 잔뜩 사주고 학교에 갈 준비를 도와주는 등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닦는 것까지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감옥에 가야 하는 차태식


비록 자신이 그 앞날에 존재하지 않더라도요.


  마침내 태식은 소미를 구해냄으로써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첫 번째 실패를 극복해 냅니다. 소미와 자신의 실패를, 과거를, 나아가 스스로를 구출에 그치지 않고 구원해 내는 서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서사적 감상이 액션 누아르라는 장르적 재미를 만나 잘 융합된 것이죠.


보는 재미는 쏠쏠합니다만

  「발레리나」는 이 장르적인 재미만큼은 충분히 보장하는 작품입니다.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장면 연출로 절제된 액션의 정수인 「아저씨」와는 또 다른 개성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OST에서도 느낄 수 있듯 어둡지만 어딘가 스타일리시함을 추구한 듯한 짜임새, 「다크나이트」가 생각나는 매력적인 이공간 배경 등


  시각적, 음악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고 그냥 옥주가 도예가에 빙의하여 악당들의 뚝배기를 다시 부숴 빚어주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추천드릴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년 카리스마를 선보인 두 대배우

  또 짧은 시퀀스지만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 무기 거래 장면도 언급 안 할 수 없습니다.


  액션물이나 스파이물, 누아르물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무기상' 캐릭터(대부분 깔끔하고 젠틀하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클리셰)를 장년의 친근한 배우분들인 주현 배우와 장윤주 배우가 분한 덕에 짧은 장면임에도 서부극을 한국식으로 표현한 듯한 신선함을 느끼기도 했죠.


범죄 조직을 단신으로 박살 내는 옥주

  다만 앞서 말했듯 「발레리나」의 최대 단점은 각본입니다. 우선 전체적인 개연성에 관한 빈약한 설득력, 단편적인 캐릭터성과 서사의 의미적 깊이가 발목을 잡는데요. 제목에도 쓰인 "BALLERINA" 의미부터 작은 서사적 장치들에 대해 영화를 다 보고도 의구심이 듭니다.


옥주의 발레리나를 향한 여정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빈약했던 주제의식이 여운을 흐려버린 것이죠.


  의도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너무 짧게, 축약되어 지나간 옥주와 민희의 유대관계 형성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옥주의 감정에 충분히 이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옥주가 민희를 구해야만 하는, 이성과 논리 너머 몸이 먼저 움직이는 감정의 영역을 관객에게 설득시킬 수 없었으며 역시 옥주가 구출해 내는 여고생의 의미까지 모호해져 버리는데요.


  여고생이 다시 납치당한 옥주의 실책 역시 ‘그냥 그날따라 방심해서’라는 이유로밖에 설명이 안됩니다.




「발레리나」는 말 그대로, '그럼에도 남는 게 없다' 싶은 작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옥주 역시 두 번째 기회인 여고생을 성공적으로 구출하고, 최종 빌런을 화형 시키며 고통스럽게 처단했음에도 어딘가 빈 느낌입니다.


  차태식이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정말 당겨버린 엔딩을 본 느낌이랄까요. 옥주가 균형세계로 돌아가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이죠.


  균형 세계는 깨지기 전과 동일한 세계를 뜻하는 게 아니기에


영웅의 여정 끝에 얻은 것이 무엇인가? = 옥주가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대게 「킬 빌」의 죽은 줄 알았던 딸 비비, 「괴물」의 박강두가 거둔 소년인 세주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본 작품은 그러한 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영웅 서사의 고전성은 불문율의 법칙은 아닙니다만 구출물, 액션이라는 장르에서 관객에게 가장 효과적인 감상을 줄 수 있는 장치이기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각본의 아쉬움을 드러냈다고 보는 게 맞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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