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2021
사각예술은 각종 영화, 만화, 음악 등을 리뷰하고 해석하며 덧붙이는 매거진입니다. 업로드 주기는 비정기적이며 현재 네이버 블로그, 인스타그램 운영 중에 있습니다 :)
모든 작품은 스포일러를 동반할 수 있으며 들러주신 노고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2021년 넷플릭스로 공개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당당히 알린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곧 시즌 2 공개를 앞두고 있는 만큼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관객들은 기대감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요.
시즌 1은 데스 게임이라는, 대중에겐 다소 매니악한 장르를 가져오며 '깐부', '기발 씨훈이형!' 등 수많은 밈 탄생과 함께 세계적으로는 한국만의 추억의 놀이를 전파하며 큰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무려 약 4년 간의 공백 끝에 제작된 시즌 2가 공개 전부터 골든 글로브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등 '오징어 게임 시리즈'가 단지 K-유행으로 지나지 않을 프랜차이즈가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필자는 '오징어 게임 시즌 1은 명작이었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깊은 서사성보다 연출력과 소재의 신선함, 독특함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서구권에서는 큰 호평을 받았지만 서사와 캐릭터 빌딩에 의한 몰입감을 더 중요시하는 듯한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꽤나 갈리기도 했는데요.
4년 만의 뒷북이자 리뷰인 이번 글은 한국의 대표 격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 시즌 1」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사각예술은 모든 성향의 해석과 감상을 존중하며, 본 글도 필자의 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담겨있음을 알립니다. 또한 「오징어 게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의 주된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인물들이 상금 456억을 대가로
'오징어 게임'이라는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해 서로 죽고 죽이게 된다
자본의, 자본을 위한, 자본에 의한 게임 속에서 추억의 놀이들을 하는 인물들을 통해 작품은 인간의 선악, '돈'의 무의미함, 자본의 윤리성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동전을 차곡차곡 모으던 저금통으로 상금을 표현하거나 학창 시절 체육복처럼 디자인된 의상, 수학여행처럼 다 같이 합숙하는 세트장과 추억의 놀이로 구성된 게임 등
어쩌면 가장 천진난만하며 '돈'이라는 것으로부터 멀었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접목해 나이를 먹고 자아가 단단해질수록 더 스스로를 돈에 옭아맨다는 모순을 담론으로 엮어 오는데요.
또 역설적으로 상금, 내기 따위가 없이도 승부욕에 불타 놀이를 했던 어린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학교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벌어지는 고등학생들의 서바이벌 게임,「신이 말하는 대로」와도 유사성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미성숙함과 연결 짓는 주제의식이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는 게임에 강제로 투입되었다는 점, 후자는 '돈'에 강제로 얽매이는 현대인의 삶을 투영하며 강요되지 않은 게임으로서 엔딩에서 드러나는 오일남의 반전과 오징어 게임의 진실에 더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죠.
https://brunch.co.kr/@94b623d39172424/43
이전에 「파묘」에 대한 글에서 다룬 바 있듯이, 서사의 몰입감을 책임지는 요소는 크게 개연성과 핍진성으로 나뉩니다.
개연성은 그럴 법한 것
핍진성은 그럴 듯한 것
서사의 현실성을 담당하는 핍진성과 인물의 합리성을 담당하는 개연성은 서로가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주며 한쪽이 부족할 경우 다른 한쪽이 촘촘해야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데요.
예를 들어 '오징어 게임'의 전체적인 세계관과 설정 구조는 판타지에 가까운 수준이기 때문에 핍진성은 떨어지지만, '목숨이 걸려있다'라는, 쉽게 감정적 동요를 살 수 있는 동기가 인물의 개연성으로서 부여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름 아닌 주인공 '성기훈'의 캐릭터 빌딩이 몰입감을 크게 방해합니다. 시즌 1이 스타덤에 오를 당시 필자를 포함한 많은 관객들이 주인공인 성기훈보다 대립자인 조상우에게 더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요.
이는 단순히 '자본을 위해선 악이라도 택한다는 대중들의 습성'이라고 정리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기훈의 빈약한 캐릭터 빌딩이 문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에 참가하기 전 그는 한 마디로 한심한 인간이었습니다. 막대한 빚이 있음에도 어머니의 돈을 훔쳐 경마에 돈을 쓰는, 우리의 주변인이었다면 기피할 것만 같은 사람이죠.
과거 파업에 동참했다던가 길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등 어딘가 불의에 맞서고 선한 캐릭터라는 장치를 조금씩 넣어주었지만 엔딩까지 그가 끌고 가는 '인간의 선함'에 대해선 꽤나 빈약한 근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성기훈의 캐릭터성과 주제를 연결 짓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간의 선한 마음은 자본이나 물질적인 것으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아니면
성기훈 역시 조상우처럼 자본에 복종하는 '악인'으로 만들어 악 대 악의 구도로 끌고 감과 동시에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라는 방향으로 정립할 수 있었겠죠.
오징어 게임에 대한 불호의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성기훈의 캐릭터 빌딩이 완벽하게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주제로 쌓아 올리는 것들이 너무 높습니다.
'깐부' 에피소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일남을 속이고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징검다리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사람을 밀친 조상우에게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며 다그치는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입니다.
물론 타인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앗아갔다는 같은 상황에서 성기훈은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조상우는 죄책감보다는 이판사판이라는 태도에서 차이점이 있으나
형 인생이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한심한 소리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상우의 대사가 그냥 관객이 성기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는 느낌이 들죠.
심지어 60억에 달하는 빚을 떠안기보다 차라리 죽길 선택했던 상우의 자살 역시 기훈보다 훨씬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캐릭터 설정을 뒷받침하는, 앞서 설명한 인물의 합리성을 충족하는 부분입니다.
빚이 60억인 데다가 이젠 사람도 죽인 꼴이 됐는데, 살아 나가는 게 의미가 있나? 나라도 저러겠다
'그럴 듯한' 상우의 감정선과 서사와 다르게 얼핏 인간의 선함을 보여주며 살아남는 성기훈은 '그럴 법한 척' 하지만 결국 상황에 맞지 않는 한심한 소리를 하고 있음은, 그럴듯하지 않은 모습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엔딩에 이르러 자신이 경험했던, 비인간적이며 극단적인 물질만능주의의 산물인 '오징어 게임'을 박살 내기 위해 게임에 다시 참가하는 그의 모습은
앞서 직관성, 일관성 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그의 캐릭터로 인해 영웅 또는 구세주 대신 망가진 삶에 대해 복수하려는 듯한 왜곡된 감상을 남기죠.
데스 게임 장르를 보는 관객의 성향에 따라 「오징어 게임」의 게임들은 큰 불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본디 게임이라는 것은 공통된 규칙 아래서 서로가 서로의 전략으로 승패가 갈리는 요소인데요.
그러나 '오징어 게임' 속 목숨을 걸고 진행되는 대부분의 게임들은 머리싸움, 전략이라는 것이 부족합니다. 예시를 들자면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납득시키기 위해 '포커'나 '블랙 잭' 등의 고도화된 수싸움 대신 가위바위보를 택한 느낌입니다.
하다 못해 윷놀이도 윷을 던진다는 랜덤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주어진 수로 말을 어떻게 움직이느냐부터는 머리싸움이거든요. 가위바위보도 어쨌든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세 가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는 합의된 규칙이 있고요.
다만 설계 실수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치열한 머리싸움보다는 '가위바위보를 이겨야만 하는' 인물들의 동기에 더 힘을 실어주며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끌어올린 점이 있기에 「오징어 게임」의 데스 게임들은 그 방향성이 시작부터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맞지 않는다면 불호를 표할 수도 있고, 인물들의 드라마에 더 집중한다면 좋은 감정적 울림을 전달할 수 있겠죠.
불호에 가까운 필자의 관점에서 작품의 게임들은 자신이 소속된 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정해진 순서 등 그 시작부터 불공평을 안고 간다는 점이 게임의 몰입도를 방해합니다.
어딘가 인물들에게 절망을 주려는 듯한 의도는 보이지만 '게임에서 우승하면 상금을 차지한다'는 오징어 게임의 핵심 키워드가 부정당하죠.
백 명이 참가한 포커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조건이 아닌 백 명이 모두 슬롯머신을 돌려 잭팟을 따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되니 서바이벌 게임이자 '경쟁'이라는 의미가 퇴색되게 느껴진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오징어 게임」의 불호 요소는 캐릭터들의 빈약함, 곧 주제의식의 흔들림 / 데스 게임에 대한 몰입 방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작과 수작 사이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서론에서 언급했듯「오징어 게임」의 명성과 후속작에 걸린 기대는 결코 유행에 지나지 않는 파장을 갖고 있습니다. 필자조차도 불호를 표했지만 시즌 2가 기대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12월 26일에 공개 예정인 「오징어 게임 시즌 2」. 아직 밝혀지지 않은 무수한 떡밥들과 변수들, 더 새로워진 게임들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부디 좋은 작품이 탄생해 더 큰 영향을 불러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다시 한번 사각예술은 모든 해석과 감상을 오롯이 그 자체로 존중하며, 본 글도 필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담겨있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