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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자훈 Jun 26. 2024

조그마한 아가에

예쁜 딸이 임신을 하였다

아가야, 조그마한 아기야, 우주 어딘가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기운이 뭉쳐서, 드디어 인간세계로 넘어오는 아이야, 내게로 오는 아기야, 귀하디 귀한 아이야!

내 품에 안겨 부드러운 젖 냄새를 풍겨다오. 생명의 환희를 보여다오. 인간의 실존적 가치를 일깨워다오     

너의 엄마가 임신하였단다. 배 속에서 너를 키우고 있는 거지. 나는 할아버지가 되는 거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엄마와 할아버지가 있니? 누구나 될 수 있는 자리. 그래서 평범한 일상 같은 자리. 그런데 그래서 더욱 높은 자리야. 왜냐하면 생명을, 인간을 키우는 자리이거든. 내가 그런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해준 고마운 아가야.     

지구 나이 46억 년, 육지에 식물이 등장하여 흙이 만들어지길 5억 년, 공룡이 살던 1억 5천만 년, 그리고 영장류가 나타난 1만 년, 그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시간들. 지금쯤 아가는 그 아득한 진화의 시간을 쉴 새 없이 지나고 있겠지. 우주는 대부분 원시의 암흑으로 가득 차 있을 거고, 간혹 빛이 내려오고, 물이 출렁대면서 작은 풀들이 생겨나고, 풀이 육지로 올라와 흙을 만들고, 식물들이 자라고, 그러면서 지구는 푸르게 아름다운 별로 변하는 격변의 시간을 너는 몸으로 겪고 , 너와 하나인 네 엄마는 입덧으로 겪는거지. 바람을 타고 공룡 머리 위를 지나다가 공룡의 울음소리에 놀라서 엄마의 배를 찼니?     


 기쁜 마음을 다 보이지는 못하고 오늘 아침에 너의 엄마에게 보낼 선물을 주문했단다. 너의 할머니는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꽃을 보내기로 했어. 돔형의 유리 속에 넣어서 말린 꽃인데 오래도록 변하지도 않고 혹시 너의 엄마에게 안 좋을 수도 있는 꽃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만든 거래. 너의 엄마가 이것을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럼, 아가도 즐겁겠지.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난봄에 주말농장 한쪽에 심었던 메리골드와 키 작은 해바라기가 얼마나 예뻤는지, 꽃들 사이로 날아다니던 흰 나비는 얼마나 우아한지 같이 보러 다니자. 아가야, 맨발로 흙을 밟을 때의 시원한 느낌도 느껴보자. 사람이 지구와 접속하는 한 가지 방법이야. 지금 네가 우주 멀리서 바라보는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와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거지. 내 꿈이 얼마나 많은 지도 보여줄게. 너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도 말해줄게. 부디 건강하게 오너라. 아가야


나는 네가 도시에서 엄마, 아빠와 살지만, 흙을 만지며 나무와 꽃을 심고 매미와 같이 놀고, 땀을 오송송 흘리면서 들판을 뛰어다니길 바라. 꽃잎 날리는 날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꿈을 꾸길 바라. 그래서 시골에 집을 하나 마련할 거야. 그곳에 아가의 유년 추억이 쌓이고 뼈가 굵어지고, 가슴에 하늘이 가득하도록, 밝고 즐거운 기운이 너의 살이 되도록 하여 주고 싶어. 함께 하늘에 별도 가득 채우자. 그러니 아가야, 부디 건강하게 오너라. 건강하게 오너라. 건강하게 오너라.

2023.12.12.  아가에게 보내는 첫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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