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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그리기(5)

연꽃의 한살이에 얽힌 시간을 보다

by 구자훈



연밥에서 눈을 떼어 사진 속의 꽃잎을 자주 본다.

조금씩 칠하고 지우고, 좀 더 칠하고 조금 덜 지우고.


연꽃의 중심에 있는,

곧 연밥이 될 노란 수술과 암술을 가득 달고 있는 연밥 자리는 붉은 노란색으로,

꽃잎은 얇은 연필 외곽선 안으로 연한 노란색을 바탕으로 회색을 칠한다.


넓은 잎사귀를 채색한다.

큰 연잎의 특성상 숏피치의 색연필을 수없이 채워야 한다.

넓은 표면의 음영을 잘 채색해야 입체감이 살아나는데 역시 만만하지 않다.

더구나 잎에는 이슬이 내려앉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섞여 있다.


이슬의 흰색이 청색의 잎 표면을 덮어 흰청색처럼 보이는데,

우선 흰회색으로 바탕을 칠한다.

그 위에 청색을 옅게, 부드럽게 덮자 흰청색이 나타난다. 브라보!

그즈음에 '일빠친'에게 그림을 전송했다.

누구보다 먼저 내 창작물을 접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이다.

“샘 그림이 훠얼씬 멋지고 예쁘고 좋아요. 사진은 밋밋~~”

대놓고 들어 올린다고 민망해하였지만, 이런 반응은 기분을 좋게 한다. 숙명적으로 보여주고 인정 받기 원하는 예술가들의 기질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지루하다.

연잎 한 장에 며칠이 지나간다.

그사이 꽃잎이 또 눈에 거슬린다.

일빠친에게 보낸 사진을 사무실에서 확대해 보는데

너무나 탁해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시 터널의 끝이 저만치 멀어져 간다.

또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였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저 은은한 흰노랑의 꽃잎.


작게 잘라놓은 지우개를 집어 들었다.

꽃잎 위의 노랑과 흰회색을 그리고 입체감을 위해 칠한 짙은 회색을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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