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래랑 Feb 27. 2024

(1) 잃어버린 예전으로, 다시 올라가다

 정말 오랜만에 악보를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스 브레이킹이라고 당시 썼던 악보들을 펼쳐 몸을 풀었는데,

가만 보니, 피아노를 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손가락과 지금은 여전히 차이가 나지 않는 듯 합니다.

몇 개월만에 춤추는 손가락들이 아직은 낮선지 돌처럼 딱딱하게 굳기만 해서, 평화롭고 잔잔한 곡으로 며칠 간 손가락을 풀어주는 재활운동을 하고 나서야 예전의 모습을 반이라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했던 루틴대로 하농과 체르니를 20번이 넘게 연습하니 그제서야 뭉개졌던 음들이 제 소리를 찾더라고요.

몇 달만 더 미루었어도, 아마 손이 돌덩이가 되어 몇주간이 아닌 반년 넘게는 재활을 해야 했을 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초기에 대처를(?) 잘 하여 잃어버린 저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막상 혼자 발걸음을 나가려니 떼기가 어렵더라고요.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그때 가장 깊숙히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리스트의 난해한 곡으로 독학을 시작한다면 질리는 것은 시간 문제였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다른 짧고 강렬한 곡들로 기초를 단단히 다져서 기운은 쏙 빠지지 않게나마 대처했습니다.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준비해야하나, 싶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면 하단의 악보를 봐주세요…(ㅠㅠ)


<마제파> 중 6번째 페이지

제가 언젠가 쳐야하는 악보의 일부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처음 독학을 시작하는 저에게는 너무나도 크고 어려운 발걸음입니다.

애초에 왜 이런 곡을 선택해서 고생하느냐 하면,

저도 솔직히는 드릴 말씀이 없으나…

이런 어려운 곡들을 쳐 보아야, 나중에 어떤 곡이라도 쉽게 보이는 마법(!)을 경험하게 되거든요.

역시, 손꾸락 킬러 프란츠 갓스트님은 변함 없는 듯 합니다.

(제가 그래서 한창 미쳐있을 당시에 갓스트를 위한 몽댕이 한개를 들고 다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_^)

그래도 이런 난해한 곡들 사이에서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 저는 아직 실감나지 않는 듯 합니다.

그래서 클래식은 저에게 언제나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 중 하나죠.

또한 제가 난이도가 높고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의 곡을 도전하는 이유의 한 부분이고요.


.

.

.



제가 첫 시작 때 연습해야 하는 분량입니다.

빌드업 부분인데, 처음부터 상당히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첫 번째 페이지 중 첫 3마디


첫 시작은 매우 날카롭게 기습합니다.

또한 아르페지오로 음도 뭉개지길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죠.

아마 pp 피아니시모여도 어려웠을텐데…

안타깝게도 ff 포르테시모군요.

이 부분은 마치 산에서 잠복하던 굶은 호랑이 한마리가 사슴을 보고 훅 덮친 모습과 먹잇감을 잡고 크게 포효하는 모습을 상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몸짓도 자연스러워 질 것 같네요.

이 부분은 엄청난 반복 연습으로 나 자신이 외우는 게 아니라 손가락이 외운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알레그로(Allegro)로 생각할 겨를이 조금도 없거든요.

또한 한번 손이 길들여지면 나중에 고치기 어려우니까, 연습할때 헷갈리지 않도록 합시다.


첫 번째 페이지 중 Cadenza ad libitum 부분.

겨우겨우 첫 번째에서 세 번째 마디를 연습하면, 끝났다고 좋아할 게 아닙니다.

아직 이 곡을 위한 빌드업은 남아있죠.(첫 번째 페이지 모두 빌드업입니다.)

Cadenza ad libitum 부터는 급하게 달려주어야 합니다.

마치 누가 쫒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같이 받을 수 있죠.

빨라서 또한 음이 뭉개질 위험이 큰 부분이라 충분한 스타카토 연습이 필요했습니다.

상행하는 부분에는 차례차례 올라가듯 커지는 느낌을 주어야 하죠.

처음에 페달도 있어서 음이 더욱 뭉개지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네요.


.

.

.


이 빌드업 되는 부분에선 오랜 클래식에 지쳐 조는 사람을 모조리 깨워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처음이 매우 중요하죠.

처음에서 느낌을 제대로 주지 못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치고 올라가도 사람들이 많이 지루해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센스있게 처음에 고난이도 아르페지오와 엄청난 스케일을 넣어준 리스트에게 박수를…

솔직히, 이 모든 과정을 일주일 안으로 다 밀어 붙일 수는 없어서 이 책을 계획하기 두 달 전부터 이미 연습해오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빨리 복귀된다고?”라고 하신다면… 네, 절대 아닙니다.

잃어버린 손을 도로 되찾는 것은 시간이 몇 달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지요.

피아노에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것은 예체능에서나 공부에서나 모두 포함되는 부분일 것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