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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May 18. 2024

아이에게

끝의 끝까지 내려가 나를 온전히 직시했다. 불안에 떨며 울고 있는 한 아이가 보였다. 


"죽고 싶어."


"왜?"


"이런 삶은 의미가 없거든."


아이는 무표정이었다.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만 사라진다면 언제든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생을 이어잡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는 한참동안 아이를 바라보다 함께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아이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우리는 또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렸다.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숨이 턱 막혀왔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아이와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숨죽여 울었다. 폭우가 내렸다. 울음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있잖아. 나도 노력했어. 너를 돕기 위해서. 매일 밤 약을 삼키고, 자주 상담을 가고 병원을 다녀. 그런데 요즘에는 그 모든 게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곳에 내려오면 너는 항상 울고 있고, 나는 다시 무기력해지거든. 우리가 괜찮아지는 날이 올까?"


아이는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안 괜찮아질 거야. 네가 무슨 노력을 해도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아이의 표정은 모든 걸 포기한 듯 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 옆에 앉아 그녀를 지켜봐주는 것 뿐이었다. 


날이 밝고 해가 떴다. 비가 그쳤다. 옅은 햇빛이 우리를 비췄다. 그 때 그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힘들 때면 언제든 연락을 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알려주는 거 알지?"


내가 들었던 수많은 목소리들이 화음처럼 귓가를 울렸다. 내가 온 힘을 다해 밀어냈지만, 그럼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무언가를 다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있잖아, 우리 이 어둠 속을 나온다면 말이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항상 함께니까, 같이 세상으로 빠져들어보자.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거, 너도 알잖아. 세상은 무서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보자. 한걸음 한걸음 우리를 믿고 죽음에서 벗어나보자. 쉽지 않을 걸 알아. 그래도, 그랬으면 좋겠어. 우리를 지켜봐주는 사람들을 믿고, 우리도 우리의 삶의 의지를 믿어보자."


아이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당신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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