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한 May 18. 2024

나는 절망이 되었어


괜찮다고 말해봐도 전혀 괜찮아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어. 세상은 내 편이 아니고 나를 떠밀 뿐이야. 이 세상에서 이제 그만 나가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하는 것도 같았어.


나는 절망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어. 불행을 짊어지고 우울을 끌어안고서는 그것만이 전부인 듯 모든 것을 버리고 말이야.


계속 뒤돌아 봤어.


"나도 거기에 계속 머물면 안 될까?"


그렇게 미련 가득한 말을 중얼거리며 버려지듯 쫓겨나듯 그 세상에서 나왔어. 그렇게 절망의 세상의 입구에 섰어. 문이 활짝 열려있더라. 너는 이 세상에 어울린다는 듯이 너라면 환영해 주겠다는 듯이.


"나는 여기 싫어."


그렇게 말을 해도 문은 닫히지 않았어. 나는 뒤돌아 가려고 했어. 분명히 그랬어. 노력했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어. 그 세상은 나를 떠밀고 절망의 이 세상은 나를 끌어당겼거든.


결국 한숨을 내쉬며 절망의 세상으로 나아갔어. 문을 넘어 들어섰어. 짊어진 불행이, 끌어안은 우울이 몸집을 키웠어. 무게에 짓눌려 나는 점점 작아져 갔어.


절망의 시간은 느리게도 흘렀어. 작아진 나는 불행과 우울에 파묻혀 눈물만을 쏟아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었어.


불행이 나를 한입 베어 물고 우울이 나를 두 입 베어 물고 나는 점점 먹혀가며 나를 놓고서 우는 것조차 멈췄어. 무기력이 다가와 나를 세입쯤 먹어치우니 내가 흐릿해졌어. 불안이 내 앞에 서서 말했어.


"남은 너를 내가 다 먹어 치워 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어. 흐릿한 나라도 붙잡고 있고 싶었으니까. 내 의지로 내 뜻대로 살아가고 싶었으니까. 비록 여기가 불행의 세상이더라도.


"왜?"


불안이 물었어.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의 너는 나를 지긋이 바라봤어. 그 찰나가 영겁처럼 느껴졌어. 숨이 막혀왔어. 숨을 쉬고 싶었어.


"불안. 너는... 너만은 나를 놓아줄래? 나를 모르는 척해줄래?"


나는 묻듯이 너에게 부탁했어.


"미안해."


너는 그렇게 말했어. 그리고는 성큼 다가와 남은 나를 먹어치우기 시작했어. 고통에 발버둥 치다 지쳐버렸지. 나는 하나도 남지 않았어. 불행이 우울이 무기력이 불안이 나를 다 먹어치워 버려서.



나는 그저 있었어. 절망의 세상에서 그저 멍하니 있었어. 눈물도 메말라 울 수도 없었고 사라져 버린 나를 되찾을 수도 없었거든. 나는 절망의 세상에 갇힌 채로 내가 떠나온 곳만을 바라봤어. 멍한 시선에 맺힌 그곳은 아름답기만 했어.


'역시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모든 의지를 꺾었어. 내가 있을 곳은 이곳이었다고 절망의 세상에 동화되어 절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어. 그렇게 나는 절망이 되었어.


매거진의 이전글 [ 매거진 출판 관련 공지 3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