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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영 Aug 19. 2024

독자의 자살 사건

*자살에 대한 직접적 묘사가 있습니다. 트리거가 되시는 분들은 읽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우울증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이다. 책 출간 후 독자 몇몇을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하려 했다. 네이버 폼으로 신청서를 받은 후 6분을 선정해 문자를 보내드렸다. 사건은 어두운 그림자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ㅇㅇ님, 저 북토크 못 갈 것 같아요. 이 문자를 보시면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죠. 죄송합니다.”


이 문자를 처음 확인한 건 새벽 3시 즈음이었다. 그 때는 비몽사몽한 상태라 앞 문장만 읽고 다시 잠들었다. 문자와 함께 온 번개탄 사진을 확인한 건 아침에 눈을 뜨고 나서이다. 벼락을 맞은 것처럼 몸이 떨렸다. 황급히 112에 문자를 보내 신고했다. 경찰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고, 직장에서 일하던 중 전화를 받았다.


“ㅇㅇ님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겨우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 내 북토크에 오기로 한 독자가 나에게 번개탄 사진을 보내고 자살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마자 선생님은 나에게 표정이 안 좋아보인다고 말하셨다. 나는 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이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다.


“어떻게 보면 제가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저한테 그런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면서 자기는 이제 죽을 거라고 한 심정이.. 저는 솔직히 좀 이해가 갔어요.“


“어떤 마음이라고 보셨나요?”


“반반이었을 것 같아요. 진짜로 이제 끝이구나 이런 마음도 있었겠지만.. 도움을 요청했던 게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ㅇㅇ씨의 마음이 불편하시지 않을까 싶고 걱정이 많이 되네요.“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잘못한 건 없는데 잘못한 느낌이 자꾸 들어요. 친구들도 너가 잘못한 건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래도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문자를 처음부터 제대로 봤더라면 그 분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나에게 부고문자를 보낸 그 분의 유가족들.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번개탄을 피우면 확실히 죽을 수 있구나. 자살 방법을 찾은 느낌. 되게 나쁜 생각이죠.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너무 어이없어요.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왜 자살 방법이나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스며든 나쁜 생각들. 나도 환자인데 나에게 너무 큰 짐을 주고 세상을 떠나신 것 같았다. 살아남은 자는 몇 배나 더 괴로운 법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독자의 죽음은 내 일상생활을 앗아갔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질문하셨다.


“그냥 마냥 슬퍼해야 할 것 같아요. 근데 슬픔보다는.. 죄책감이었어요. 연락을 그때 바로 보지 못한.“


“그 새벽에 사실은 가족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거예요. 돌아가신 분에게는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죠. 머리로는 이해가 가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을 거야. 근데 마음은 그게 안 되니까.. 좀.. 죽는 게 쉽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망설이며 말했다.


“사실 저는 제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인지가 잘 안 돼요. 그냥 되게 힘든데 왜 힘든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겪은 일을 자연재해에 비유하셨다.


“누군가가 이렇게, 특히 나한테 연락을 준 상황에서 돌아가시는 게 사실 좀 너무 큰 일이기는 해서요. 자연재해를 겪는것 만큼이나. 또 ㅇㅇ씨는 비슷한 어려움이 있기도 하셨잖아요. 자꾸만 좀 맴돌거나 떠오르는 어떤 장면, 원치 않는데 떨쳐지지 않거나 자꾸만 드는 생각, 이미지 이런 것들이 있나요?”


나는 말하기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치료 시간이 마무리될 즈음 선생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꼭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트라우마에 준하는 일을 겪으신 거라서 갑자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반드시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개인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다양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거니까. 그럴 때는 병원으로 연락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악몽을 꾸기도 했고, 글 쓰는 걸 포기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함부로 선의를 베풀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세상은 무섭다는 것도,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내려면 나만의 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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