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약을 했다. 먹고 있던 정신과 약 4알을 단번에 끊었다. 가장 큰 이유는 살을 빼기 위해서이다. 우울증 약을 3년동안 먹으며 20키로가 넘게 쪄버렸다. 두 번째 이유는 나에게는 약효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을 다니며 다양한 약을 오랫동안 써봤지만 내가 가진 우울은 약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약보다는 상담이 오래 필요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약이 최악의 상황이 되는 건 막아줄 수 있다고도 하셨다. 약을 끊었다고 하자 부작용보다는 살아있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럼에도, 약을 끊었다.
이건 포기일 지도 모른다. 치료에 대한 포기, 나아가서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한 포기.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애써왔기 때문에 더이상 노력할 에너지가 없다. 나는 확실히 죽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 삶은 자살로 끝날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 지난한 치료를 버텨온 건 희망과 죄책감, 이 두 가지였다. 내가 삶을 떠나면 남아있을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언젠간 나아질 거라는 희망. 이제는 이 두 가지 모두 사라졌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싶지 않다.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싶다. 나만 생각한다면, 죽어야 한다. 희망은 없다. 우울증은 조금 나아진 것 같다가도 다시 바닥을 친다. 숨쉬고 존재하는 것조차 버거워서 울며 밤을 지새운다.
웃기 싫다. 괜찮은 척도 하기 싫다. 사라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