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초반에 선생님은 종종 나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다. 하루는 내가 꾼 악몽에 대해 그려보라 하셨고,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내 모습과 그런 나를 쫒아오는 누군가를 그렸다. 그림 속의 나는 엘리베이터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그림에 대해 설명해보라 하셨다.
“엘리베이터 안의 전등은 꺼져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 구석에 있어요”
“그 모습이 어때요?”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대답했다.
“외로워 보이네요”
“외로움을 드러내고 싶지 않으시거나 엄청나게 숨기고 싶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매사에 밝게 행동하시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시 말을 꺼내셨다.
“근데 이 아이가 갇혀 있잖아요. 내 마음에 갇혀 있고, 삶에 갇혀 있어.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그냥 내버려둬도 될 것 같아요. 어디로 갈지 모르잖아요“
”어디로 갈지 몰라서 계속 갇혀 있으라고 할까요? 방임이신 것 같은데. 내가 나를 방임하는 것“
”저 자신이잖아요. 셀프 방임은 죄가 아니죠“
나는 웃으며 내가 나를 방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했다. 반쯤은 농담으로 말한 것이었지만 선생님의 표정은 진지했다.
”넌 그냥 거기 있어. 넌 벌받고 있어. 넌 그래야 마땅해. 이렇게 들리기도 해서“
”뭐 어쩌겠어요“
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마술을 보여준다 하시고선 펜을 들어 그림 속 엘리베이터의 벽 한 면을 없애버리셨다.
”벽이 없어졌네요. 이제 어디로 갈까요?“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벽이 사라져도 내가 갈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안 가면 안 돼요? 밖에도 어두워서..“
밖의 어둠 속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가기를 거부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내가 원한다면 그 안에 있어도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차라리 나를 방임하기로 택한 것은 내 생존 방법이었다. 나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쓸모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구석에 혼자 웅크리고 있자.
나도 언젠가는 나를 믿고 이 공간에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