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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건 Nov 06. 2024

#6_공간

방 한구석에 앉아 텅 빈 공간을 바라보니

넓어진 방 안의 공허함이 마음에 스며든다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기며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니

원초적 외로움이 새로운 벽들과 충돌하며

생각과 감정의 격렬한 파도를 형성한다


재구성된 공간은 마음의 풍경을 변화시키고

감정의 팔레트를 다채롭게 물들인다


이 낯선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시작의 씨앗을 발견하고

공간의 여백 속에서 마음의 새로운 길을 그려본다




대학 시절에는 제 작은 원룸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좁지만 그 안에 나만의 세계를 꽉꽉 눌러 담으며, 오히려 공간의 제약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방의 크기는 작았지만, 그만큼의 여백이 제 마음을 둘러싸고 있어 그 공간이 주는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방의 크기는 조금씩 커졌습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늘고 가구도 하나둘씩 채워 넣으면서 제 생활은 점차 넓은 공간에 적응해 갔지요.


그러나 넓어진 공간만큼 마음 속 공허함도 커져 갔습니다. 낯선 크기의 방에 혼자 서 있으면, 누군가의 말처럼 “방에서 나를 뺀 만큼의 크기만큼 외로움이 밀려오는” 감각이 불쑥 고개를 듭니다. 그럴 때면 저는 방 안의 텅 빈 공간을 가만히 응시하며, 이 공간의 여백이 마음 속에서 무언가를 비워내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공허함은 단지 물리적 공간 때문이 아닙니다. 생활이 정돈될수록 제 자신이 점점 더 그 틈에 놓여 있음을 느낍니다.


때로는 그 공허함을 견디기 위해 작은 변화라도 주고 싶어지곤 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의 한 구석에 서서 전경을 둘러보며 마음속에 작게 결심을 합니다. '조금 인테리어를 바꿔 볼까?' 새 커튼을 달고, 벽에 소품을 걸어 두며 그 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 보려 애씁니다. 그렇게 물리적 환경에 변화를 주고 나면,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새로운 느낌이 피어납니다. 바뀐 건 아주 사소한 것들이지만, 그 변화를 통해 제 생각이 잠시 머물고 감정이 쉬어가던 장소들이 새로워지면서 묘한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간의 여백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허전함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문제를 넘어,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원초적 외로움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여백을 채우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적응해 나가려고 합니다. 공간은 그 자체로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안에서 삶을 다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윤태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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