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는 유니콘

사랑이 만든 괴물

by 선하게



우리 신랑의 별명은 유니콘이다.

이 세상에 없는 남자.

가정적이고, 다정하고,

무엇보다 애처가다.

애처가라는 말,

단순히 아내를 챙겨주는 남편이라는 뜻이 아니다.

아내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가족의 하루를 자기 하루보다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내 신랑은 그런 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을 아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는 남자”라며

그를 유니콘이라 불렀다.

그 덕에 남자들은 신랑에게 야유를 던지고,

엄마들은 환호한다.

그런데 이 유니콘은,

마음이 여유로워서 유니콘이 된 걸까?

우리 집 유니콘은,

결핍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삼 남매 중 쌍둥이 막내로 태어났고,

태어날 때부터 불운한 기운을 안고 있었다고 말한다.

병원에서도 쌍둥이인지 몰랐고,

형은 자연분만으로 먼저 태어났고,

신랑은 40분 뒤,

뱃속에 남아 있는 줄도 모른 채

제왕절개로 간신히 세상에 나왔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태로웠고,

간신히 목숨을 붙잡고 살아내셨다고 한다.

그렇게 기적처럼 살아난 엄마는

몸이 늘 아프셨고,

그럼에도 옥이야 금이야

세 아이를 잘 키워냈다고 자부하셨다.

하지만,

몸이 아픈 엄마를 보며 자란 아이 셋은

늘 눈치를 보며 자라야 했다.

그중에서도 말썽 많았던 형 덕분에

신랑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말을 늘 들어야 했다.

“너는 그러지 마라.착하게 살아야지.

너까지 그러면 엄마는 정말 못 산다.”

기력이 없던 엄마는

매번 그렇게, 신세 한탄을 늘어놓으며

첫째 딸과 신랑을 붙잡고

둘째 아들 걱정을 쏟아냈다.

그 말 앞에서

신랑은 착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의 유니콘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다정하지만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

남들 좋은 일만 도맡아 하는 사람.

유니콘은 유니콘인데,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하는 유니콘.

우린 1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나는 이혼 가정 출신이라 열등감이 깊었고,

잔잔한 목소리에 친절한 신랑은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완벽한 가정의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제 기간이 길어질수록 알게 되었다.

내 결핍은 결핍도 아니란 걸.

부모님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그의 이야기는

나에겐 동경이자,

넘볼 수 없는 사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완벽해 보이는 집에도

보이지 않는 상처는 있었다.

신랑은 쌍둥이였고,

늘 비교당하며 자랐다.

“형이 더 잘생겼네.”

“형이 더 남자답다.”

매일같이 듣는 말들 속에서

신랑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나는 그런 속도 모르고

“너희 집이 너무 부럽다”라고 했었다.

내겐 그저 솔직한 감탄이었을 뿐

그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지금은 안다.

우리가 6년 사귀었을 무렵,

어머님은 나를 따로 불러

교제를 반대하셨다.

이혼 가정과 혼인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일이라며

냉정한 일침을 주셨다.

그리고 그 앞에서

착하게만 자라온 신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그 말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

아마도, 사랑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존재하는가 보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결혼은 했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시작이었다.

그 시작엔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이 붙어 있었다.

“우리 가족에게

너의 가족사는 말하지 마라.”

어머님의 당부였다.

나는 두 번의 상처를 받았다.

부모가 나를 버린 상처,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나를 창피해하는 시부모가 생긴 것이다.

부당한 대우 앞에서도

참을 힘만 길러졌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 게 이기는 거라 배워왔다.

그래서 지금도,

억울해도, 답답해도 결국 참는다.

어머님은 여전히 말한다.

“착한 우리 아들.”

그 말이 씌운 틀 안에서,

아들은 여전히 착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수 있으니까.

우리 집 유니콘은

날개를 달지 못한 채

위로만 올라가야 한다는 착각 속에서

오늘도 버티고 있다.

반면에,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자유롭게 자란 쌍둥이 형은

두려움도, 한계도 없어 보였다.

누구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고,

그 결과,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때론

자기밖에 모르는 오만함으로 변했다.

그걸 보면,

정말이지, ‘자유’도

양날의 칼일 수 있겠구나 싶다.

착한 아들.

착하길 바라며 만든 프레임 속에서

아들은 오늘도, 여전히 착하다.

그리고 그 착함은,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또 누군가에게

‘착한 사람’으로 길들여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씁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당신의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로 찾아갑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