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만든 괴물
그날은 시아버지 생신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
나는 늘 다짐한다.
"오늘도 조용히, 잘 넘기자.'
언제나 그렇듯 겉보기엔 다정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아이들은 놀고, 어른들은 웃었고, 나도 그랬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가는 길.
딸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엄마, 나 코뼈 부러진 것 같아.”
“왜?”
“맞았어.”
그러더니 이어지는 말.
“동생한테 뺨 맞았어.
놀란 나는 "근데 왜 말 안 했니?"
"동생을 혼냈어야지.."
그러더니 딸이 말했다.
"큰 엄마가 무섭기도 하고 어이없어서..."
말 문이 막혔다고 했다.
순간 나는 머리를 망치에 맞은 거처럼 멍했다.
작년엔 아들이 학교에서 뺨을 맞았고,
올해는 딸이 시댁에서 뺨을 맞았다.
잊고 싶었던 끔찍했던 그날의 일이
가족 안에서 또 일어났다.
하지만 두 아이 모두, 그때나 지금이나
뺨을 맞고도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온 거였다.
이번에 딸을 때린 건
딸보다 세 살 어린 시조카였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습관처럼 내 딸을 깨물고,
머리채 잡는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 아인 외동딸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랐고
물질적으로도, 교육적으로도
늘 최고로 대우받는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유치원은 기본이고,
다니는 학원은 열 개가 넘으며
벌써부터 예중-예고-이대-영국 유학
코스를 계획하고 있는
야망 넘치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언니를 만나면 언제나 입버릇처럼
“언니, 이거 알아? 모르지?”
“몰라? 왜 몰라?”
묻던 말투는 엄마의 복사판이었고,
그 엄마는 내게도 자기의 딸처럼
늘 '쓸데없이 똑똑한 척'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는 조심스럽게 시어머니께
그날의 일을 말씀드렸다.
"그날 딸아이가 맞았대요. 동생한테,
코뼈가 부러진 것처럼 아프다고….”
하지만 시어머니로부터 들은 대답은
딸아이의 안부보다
그 집 아이를 두둔하기에 바빴다.
“장난이겠지. 살살 그랬을 거야."
"애들이 놀다가 그런 거지 뭐.”
"걔가 아직 어리잖니"
역시나 이번에도
늘 그 집 아이 편에 서 계셨다.
그 집은 언제나 위태로운 부부였다.
성격이 불같은 두 사람은
한 치 양보도 없이 자주 싸웠고,
그걸 보고 자라는 아이가 늘 측은했는지
어머님은 잘못된 손녀라도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였다.
통화 중 급하게 말씀하시길
“나중에 내 눈앞에서 또 그러면 혼낼게.”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릴 하셨다.
통화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님의 호통소리.
"형제들 싸움시키지 말고 덮어라"
그 말은 결국,
우리 딸은 또 맞아도 된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런데 그다음 날,
화가 난 신랑이 자신의 형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 딸이 맞았다고, 그게 장난이든 뭐든
아이의 마음이 무너졌으니 사과했으면 한다고.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엉뚱한 말이었다
“나도 피해봤어.”
"우리 딸도 너네 아들에게 괴롭힘 당했어"
“너희 아들이 내 딸 놀리고 괴롭혔는데도 나는 참았어.
근데 너는 왜 말하냐."
되려 신랑을 속 좁은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날 밤,
딸에게 형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스피커를 통해 들린 내용은
"큰아빠가 미안하고, 집에 가서 딸에게
사과 인사 시킬게"
화가 잔뜩 난 목소리를
억지로 누른 듯 말했다.
며칠 뒤,
사과의 인사는 기분 나쁜
문자 한 통으로 대신 받게 되었다.
"언니, 내가 장난친 건데 기분 나빴어?"
미안. 모르고 그런 거잖아.
잘 지내보자.
미안함이라는 건 찾아보려야 찾을 수도 없는
불쾌한 말이었다.
또 그렇게, 그 집 아이가 내 딸에게 했던 행동이
순식간에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사실, 남편 누나의 아들과 우리 아들은 또래이고 아주 친하다.
아이 넷이 놀면서도 큰 아이들은 제일 어린 그 동생을 아주 불편해했다.
그 이유는 언니 오빠들에게 거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고.
무시했고, 때렸고, 심한 욕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함께 놀 때마다
동생이란 이유로 애써 화난 감정을 누그려뜨리기 바빴다.
특히 키가 작은 우리 아들에게 '작다'며 놀림을 주었고,
공부 잘하냐고 비아냥거리며, 손가락 욕을 하는 일도 잦았다.
불리하면 울기도 했고
오빠들을 ‘가해자’처럼 만들어 혼나게 하기도 했다.
그걸 모르는 어른들은 늘 그 아이 편에 서 있었다.
우리는 늘 참아왔다. 아주 오랫동안...
그런데 이번에도 또다시 우리가 참으라고 한다.
언제나처럼
우리 아이의 상처를 가볍게 넘기려 한다.
“자기는 참았는데, 왜 너는 말하냐.”
이 말은, 겉으로는 이성적인 척하지만
결국엔 감정을 표현한 사람을 비난하는 구조다.
내 딸이 맞았다는 사실보다
그걸 말한 남편을 ‘유난’이라 여기고,
상처를 말하는 사람을 문제 삼는 분위기.
그 말은 결국,
“넌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난,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상처받은 사람은,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조차 허락되지 않는 가족이라면,
그건 더 이상 건강한 가족이라 부를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난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내 아이의 아픔을,
엄마인 내가 대신 기억하고, 말하겠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수없이 생각했다.
혹시 이 글을 나중에 가족이 본다면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지금은 멀어진 사이지만 언젠가 다시 가까워졌을 때,
그들이 이 글을 접하게 된다면 그땐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건 그들을 향한 복수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무너져 내렸던
나를 다시 세우기 위한 기록이라는 걸.
나는 그 시간 동안
말하지 않았고, 감췄고, 이해하려 했고, 도리도 지켰다.
그래서 더 깊이 무너졌는지도 모른다.
세상 밖으로 나와 소리를 내는 일이 가끔은 무섭기도 했지만,
내 아이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이제는 진짜 말해야 했다.
이건 누군가를 망신주기 위한 고발이 아니라,
잊히지 말아야 할 감정의 증언이라고.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이 글을 보고
나를 원망하지 않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날, 매운 라면을 쑤셔 넣으며 울던 내 아이다.
그 아이는 자라서
이 글을 다시 읽고 말할 것이다.
“엄마, 나를 위해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그거면 됐다.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을 씁니다.
각기 다른 시선에서, 당신의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로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