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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Apr 09. 2024

소통은 다가가는 게 아니라
다가오게 만드는 기술

직원들과 소통하는 의외의 방법

사람들은 '소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소통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상대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노력' 쯤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회사에서도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리자들은 직원들과 매일 아침 티타임을 한다든가 점심을 같이 먹는다든가 회식을 한다든가 하면서 직원들에게 다가가려고 애쓴다. 그런데 나는 이와 같은 유형의 관리자들을 질색한다. 


팀장인 나는 팀원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점심을 같이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팀원들끼리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을 때도 끼어 앉지 않는다. 회식도 팀원들끼리 하게 하고 내가 함께 하는 경우는 송년회나 팀원이 바뀌었을 때 정도로 아주 드물다. 심지어 회식 장소로 이동할 때도 누가 내 옆으로 올 새라 혼자 휘적휘적 가곤 하다. 그러니 팀원들과 업무 이외의 대화는 할 일이 없다. 소통 강조 유형의 관리자들은 이런 나를 아주 한심해하곤 한다.


그러니까 소통 강조 유형의 관리자와 나는 서로를 질색하고 한심해하는 셈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소통 부심'이 엄청난 사람이 내 위의 국장으로 왔다. 새 국장은 나와 함께 일하는 몇 개월 간 직원들과 어울리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하고 가끔은 우리 팀원들이 간식 먹는 자리에 끼어 앉아서 이런저런 '격려'를 하며 내게 '소통의 모범'을 보이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팀이 소통이 안 되는 팀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팀원들은 수시로 내 자리로 와서 내게 업무를 의논하고 진행 상황을 보고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도 자신들이 우선 감당하고 정 안 되면 내게 도움을 요청하겠다며 맡은 업무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직원들끼리 단합도 잘 돼서 웬만한 일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서 돕는 분위기였다. 즉,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우리팀은 문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소통이 잘 되는 팀이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대체 '소통'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소통은 "상대가 다가오게 만드는 기술"이다. 무턱대고 다가가는 건 소통이 아니다.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절제함으로써 나를 비워내고 상대가 다가오게 만드는 것이 소통이다. 나 혼자 다가서고 있고 내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드물다면 그 소통은 실패한 것이다.


나 역시 팀장을 처음 맡았을 때는 '소통'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초짜 팀장이었던 나는 팀원들과 모든 사안을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에 수시로 회의를 열고, 점심은 항상 같이 먹고 회식도 자주 했다. 시끌벅적한 팀 분위기가 무조건 좋은 거라는 생각에 간식도 자주 샀고 팀원들과 시답지 않은 잡담도 많이 했다. 그런데 결과는 내가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쩐지 나만 애쓰는 것 같고 팀원들과 이토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대화를 나누는데 팀원들의 속은 갈수록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여러 시행착오와 훈련 끝에 나는 내 식의 '소통'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선, 팀원이 보고를 하면 어떤 경우에도 비난하지 않았다. '수고 많으셨다, 고맙다.'라는 말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조금만 일찍 보여주시지'라든가 '내용이 좀 부족하다' 같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도 겉으로는 웃으며 '수고 많으셨다, 고맙다.'라고 했다. 오늘까지 제출 마감인 보고서를 오늘 퇴근시간에 맞춰서 보여줘도 마찬가지로 '수고했고 고맙다'라고만 했다.


둘째, 웬만하면 보고서 수정 지시를 하지 않았다. 매년 반복하는 사업과 관련한 보고서는 예산 금액 오기나 계약법 위반만 없으면 바로 결재했고 신규 사업 보고서의 경우 수정할 게 있으면 내가 직접 수정하고 파일을 담당자에게 보내서 문서 상신을 하게 했다. 팀원에게 내가 수정한 파일을 보낼 때도 "오탈자 몇 개 수정하고 내용 배치만 일부 바꿨습니다. 작성하신 초안이 잘 돼 있어서 수월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적어 보냈다. 사실상 내가 새로 쓰다시피 했어도 팀원에게는 고맙다고만 했다. 간혹 가다가 내가 수정한 문서를 본 팀원이 "죄송해요, 팀장님이 다 고치셨네요."라고 해도 나는 "모르시나 본데, 제게 주신 초안에 다 있는 내용이었다니까요."라고 안심을 시켰다.


셋째, 일정을 재촉하지 않았다. 업무마다 일정을 챙기려 들면 나는 팀원들의 '비서'가 될 뿐이라는 생각도 있었고, 하루이틀 앞당기자고 팀원들을 재촉해서 사기를 꺾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팀원일 때를 돌아보면 팀원도 일정이 밀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 중일 테니까, 팀원의 보고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과 그 후 벌어질 일 -야근하며 보고서 수정하기 같은- 은 내가 감당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자면 팀원들과 사적인 친밀감을 쌓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됐다. 팀원들과 친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말이 편하게 나가게 되고 기분을 드러내는 것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사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업무적으로는 비난을 절대 삼가는 나의 소통 방식이 업무에 있어서 팀원들의 자발성과 책임감을 이끌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내 방식의 '소통'이다.


반대로 '소통 부심' 넘치는 국장은 어떠한가. 국장은 자꾸 다가와서 말을 걸고 다정한 격려를 건네면서도 업무적으로는 비난 일색이었다. 보고서는 7~8 차례 반려시키는 게 기본이었고 반려할 때도 눈빛과 한숨, 말투와 표정으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짜증이 나 있는지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국장은 "아니 이걸! 하..."라는 말을 반복하며 보고서를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문제점을 지적했고 수고했다는 말은 일절 없었다. 그래 놓고는 저녁이면 소통하자며 직원들을 모아 술자리를 갖곤 했다. 내 기준에 이건 소통이 아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장자의 가르침을 인용해 "소통이란 나를 비워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자는 '소통'이라는 두 글자 중에서 '비워낼 소'라는 글자를 더 중요하게 봤다고 한다. 상대와 통하려면 자신을 먼저 비워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잔을 비워야만 술을 채울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장자는 자신을 비워내고 상대를 향하는 행보를 일컬어 목숨을 걸 정도의 비상한 각오가 없으면 불가능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고 했단다. 그런 정도의 노력 없이 그저 선의에만 의존해 내 방식대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은 소통이 아닐뿐더러 상대에게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자의 강의를 듣기 전까지는 '내가 소통에 약해서 소통을 거부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는 나야말로 제대로 된 소통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건다는 각오까지는 아니었어도, 하고 싶은 말을 절제하고 혼자 압박을 감당하기로 변신을 다짐하고부터는 매 순간 몸에 사리가 쌓이는 기분이 들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초보 관리자 시절에 들였던 노력이 주는 보상에 비해서 지금의 노력이 주는 보상 -내 마음의 여유, 다수(로 짐작되는) 팀원들이 보내주는 신뢰, 원활한 업무의 진행 등- 이 내게는 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일러스트 Piyapong Saydau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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