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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둘셋 Jun 20. 2024

<20 vs 80의 사회> _ 리처드 리브스

리처드 리브스(이하 저자)의 저서 <20 vs 80의 사회>는 미국의 ‘상위 20%에 해당하는 중상류층(이하 중상류층)’이 향유하는 ‘능력주의로 포장된 특권’을 드러내고 그러한 구조 하에서 점차 강화하는 미국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 문제를 짚고 있다.


<20 vs 80의 사회>에 따르면, 불평등 담론은 상위 1%의 문제로 축소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중상류층이 교육․의료․고용․금융․토지 등 각종 사회제도의 직․간접적 혜택을 독식하고 있고, 그 결과 중상류층은 나머지 80%와 확연히 분리되었으며 그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고 계층간 이동도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미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의 진짜 문제라고 한다. 저자는 더구나 중상류층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이 노력을 통해 얻은 당연한 보상이라고 믿고 있다면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중심으로 일곱 가지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중상류층의 양심을 깨우고 성찰을 촉구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불평등문제를 주변에 설득시키는 일은 내게 늘 어려웠고 대개는 실패를 안겼다. 예컨대, 10년 동안 간부급 승진 심사에서 30명의 남자가 승진하는 동안 여자는 단 2명만이 승진한 사실을 놓고 성차별 문제를 제기했을 때 성별을 불문하고 주변 누구도 이를 성차별로 보지 않았고 ‘개인의 능력’ 문제로만 인식했다.


(여러 조건을 살피건대) 내가 설득에 실패한 상대는 모두 중상류층으로서 ‘특권’을 누리는 삶을 살아왔고 그로 인해 성별․학력․가족상황․혼인여부 등에 따른 구조적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차별받지 않는 이유가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비상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며 사회적 차별 문제에 매우 둔감한 태도를 보이곤 한다. 


이러한 경험을 거듭하면서 나는 차별 논의에서 계급 문제를 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왜냐하면 중상류층은 스스로의 소속을 여성 등 약자적 지위의 집단에 두지 않고 중상류층 집단에 두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고민을 해봐도 내 주변의 중상류층이 개별화 대신 사회적 연대를 택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감수성과 민감성을 갖추도록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해법을 못 찾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중상류층이 자신들의 특권과 자신들이 불평등 구조에 일조하고 있음을 인식한다면 스스로 문제 해결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이에 더하여 나는 중상류층의 ‘불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상류층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연스러운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언제든 지금 누리는 특권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도 깊다. 정치가 중상류층의 ‘불안’을 건드리는 순간 중상류층은 “가장 위험한 집단”이 되는 것을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목격했다.


중상류층의 불안은 하위 80%와의 격차가 크고 계층 이동의 경직성이 견고할수록 공포로 변하는 것 같다. 불평등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저자와 같이 중상류층의 양심에 기대는 한편,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든 쉽게 올라탈 수 있는 계층 사다리를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중상류층을 포함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유리 바닥’의 역할을 할 것임을 인식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일러스트: Clker-Free-Vecto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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