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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ul illang Mar 26. 2024

[영화 감상 소설]왜 글쓰기 클럽에 왔냐고 물으신다면

영화 [Lost in translation] 감상 - '낯섬과 사랑'


갑자기 알았다. 나는 외계인이란 걸. 병원에서 얻은 깨달음.


- 잠이 통 안 와요.
- 약을 더 높여서 먹어 봅시다.
다음 진료 때까지 몸을 잘 살펴보고, 다다음주 중에 다시 봐요. 


깜빡 속을 뻔 했다. 나조차 나를 잊었으니까. 잃어버렸다가 찾은 과거같은 것. ‘예나, 선정이 딸이예요.’ 같은 대사. 나는, 처음부터 사람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거지. 세상 살이가.


- 마지막으로, 이번 진료 때 꼭 물어봐야 할 것 한 가지. 뭘까요?


- 선생님,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경험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답변이 어렵다고 했다. 지난 번 약이 환자분에게 잘 안 맞아 생기는 일시적인 생각일 수도, 혹은 정말 경험한 일이 트리거를 통해 기억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더라. 하지만 난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남들은 잘만, 쉽게 살아가는 시간이다. 같은 언어를 학습했다고, 비슷한 환경 속에 살고 있다고해서 뒤덮여지지 않는 타고남. 그 어느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괴팍한 생명체, 그게 나였던 거다.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상쾌하다. 처음으로 태어나 숨을 쉬고 싶어서 내쉬었다. 이 당연한 행동조차 난 저 먼 행성에서 ‘지구 여행자 필수 교육'으로 실습했을 거야. 그러니 남들이 제 것으로 살아내는 모든 삶이, 난 물음표였던 거지. 

내가 정한 여행 기간이 지나고 나면, 나를 데리러 올 내 고향 행성 티켓이 집 안에서 반짝이고 있을 거야.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골든 티켓을 죽 찢어버리면- 그걸 신호로 우주선 문이 열릴 거야. 나는 숨 쉴 필요 없는 그 곳에 자연스럽게 걸어가겠지. 친절한, 나와 비슷한 외계 생명체들은 물을거야. ‘지구에서의 기억을 가져가시겠습니까?’, 그럼 나는 답해야겠어. ‘좋은 여행이었지만, 굳이 가져갈 만큼 값어치 있는 경험은 아니에요. 7KG가 초과되는 기억은 모두 지워주세요.’, 그러면 그들은 알겠다며 내게 움직이는 해초 하나를 내미겠지. 소중한 기억들만 남기고 별똥별 찌끄러기로 날려버릴 약. 근데, 반짝이는 기억이라는 게 아직 없는데. 그럼 난 여행에 실패한 걸까, 아직까지. 빨리 날 데려가줬으면 좋겠다. 이 여행지는 참으로,

 

어색해서, 즐겁지가 않아.


고향에 가져갈 기억을 위해. 기념할 만한 일을 벌여야겠어. 안 그러면 비싼 돈과 시간 들여가며 지구까지 놀러온 게 아까우니까. 아까운가, 다시 고개를 주억거려보았지만 난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니까 그렇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색색거리며 잠만 자던 이십 구년이 좀 바보같을지도 몰라. 


그래서 신청했다. 이 클럽. 거실 한 켠에 놓인 책을 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꽤 유명한 작가던데. 그만하면 지구 유명인을 만났다고 해도 되겠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손 닿기 쉬운 사람. 그게 내 타겟이었다. 당장 가질 수 있는, 훗날 자랑할 만한 만남.


-여기 어떻게 오게 되셨어요?

글쓰기 클럽이라고 도착한 홍대 입구 어느 건물 안. 동그랗게 둘러 앉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몇 살이니, 자기는 무얼 좋아하니, 여기 왜 왔느냐 하는 통상적인 인간들의 친교 의식. 다가오는 내 차례.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외계인이라서요. 지구를 여행중인데요, 나중에 자랑할 기억을 위해 왔어요.] 라고 말하면 될까. 하지만 지구 규칙으로는 어림없지.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잠이 안 와서요. 통 잠이 안 와서 왔어요. 


잠자리가 불편하네요. 아직 지구 적응이 덜 되었나 봅니다. 하는 말은 삼켰다. 웃는다. 사람들이 어색하게 저들끼리 눈을 마주친다. 또 이래. 같은 종족끼리만 통하는 웃음 코드가 있나봐. 난 늘 소외되는, 그런 마음들. 아, 그러시구나 하는 기운 없는 반응 끝에 다음 사람으로 차례는 금방 넘어갔다. 


즐거울 줄 알았던 오늘 지구별 산책도, 실패구만.     


또 지겨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여행이란 게 늘 행복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겠거니, 마음 넓은 외계인이 이해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모임이 끝나고 사람들은 첫 모임이니 뒷풀이니 뭐니 하며 삼삼오오 한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외계인은, 이만 빠져줘야겠어. 천천히 걸었다. 몇몇 사람들은 점차 멀어지는 나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체 하는 듯 했다. 너네도 느낀 거니. 영혼의 결이 꽤나 다른 생명체라는 걸. 같은 자들끼리 붙는 끈적거림을 나는 언제 느낄런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대놓고 등을 돌려 거꾸로 걸어가면 되겠…


-저도요. 저도 그래요.



-예?


-그래서 이 모임을 만들었어요. 잠이 통 안 와서요. 나도요.

당신도 혹시 외계인인가요. 묻고 싶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진실을 그렇게 쉽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 것. 천천히 관찰하는 것. 알 수 없는 양반이다, 내 결론은 그랬다. 엉겁결에 둘이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갔다가 맥주집까지 문을 닫고 나서 집에 가자 말하는 남자 사람은, 참으로 희한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어두운 골목길 앞, 집 앞에서 물었다.


-당신도 혹시 지구에 잠시 머무는 외계인일 거라는 생각, 해본 적 있어요?


하긴, 지구를 여행하는 생명이 나 하나일 리가 없지. 요새 각광받는 여행지같은 건가. 특가로 싸게 나온 우주편을 타고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을까. 그래서 아직 동족 탐지 레이더가 남아있는 건가. 가방을 꼭 쥐고 용기 내어 물었는데, 사람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가 크게 웃는다. 뭐야, 이런 질문을 하는게 그쪽 행성에서는 웃긴 농담인가 보죠?


-네,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주파수가 워낙 달라서. 나랑 맞는 영혼의 주파수는 저 멀리 우주에나 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근데, 지구에도 있었네요. 그런 사람.


-저 아직 사람이라고는 안 했는데요.


인간 남성의 탈을 한 생명체가 꺽꺽거린다. 웃는 소리가 당신은 참 크군요. 그리고 특이해. 내 말을 듣고 활짝 이를 드러내보이는 사람은 없었는데.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이상해하며 수군거렸지.


-내일도 만날래요, 우리? 당신이 궁금해요.


신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내 말을 유쾌해하는 누군가가 생기다니. 그간 언어는 같아도 말은 하나도 안 통했는데,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가족도. 이런 나와 질문과 대답이 가능한 사람이라니. 그런 게 세상에 있다니. 사실은 의사 선생님 말처럼 나는 약에 취해 잠깐 이상한 생각을 한 평범한 인간일지도 몰라. 나는 외계인같은 헛된 게 아닐지도. 


잘 자라며 그가 손을 흔들었다. 문 앞에서 인사를 하고 번호키를 눌렀다. 집 안이 밝네, 아침에 늦지 않게 나온다고 불 끄는 걸 깜빡했나 보다. 전기세가 이번 달은 많이 나오겠어. 근데 우리 집이 이렇게까지 밝았었나. 이상하게 뜨거운 것 같기도 해. 보일러도 켜고 나갔나 봐. 어떡해. 

형용할 수 없이 번쩍거리는, 뜨겁고 투명한 양탄자가 소파 위에 둥실 떠있다. 


[예약된 지구 여행은 오늘까지입니다.] 


내일은요, 내일까지는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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