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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30. 2024

직장인 사주팔자 검증

Chapter 2. The Ambitious Boy #11

내 팔자에 난 편하게 살긴 틀린 것 같다.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무엇 때문인지 나를 금수저로 태어나 곱게 자란 도련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지난 에피소드에 적은 것처럼 중학교 때 온 가족이 빚쟁이들에게 쫓겨 단칸방에 모여 살았다거나, 고등학교 때부터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면 잘 믿지도 않아서 아예 그러려니 한다. 


굴곡 없는 인생은 없다지만, 내 인생에도 들춰보면 아릴 정도로 꽤나 깊은 상처들이 곳곳에 서려 있다. 


그래서 삼십 대 중반 넘어서 일이 안 풀릴 때면 진지하게 팔자 생각을 했다. 애초에 운명론자도 아니고 사주나 점을 보는 성격도 아니지만 무언가 거스를 수 없는 우주적 에너지가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아등바등 매달려도 거대한 힘에 내가 가볍게 조종당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의지의 아이콘이었다. 고3 모의고사에서 인서울 대학을 갈 실력이 못 되었는데도 8개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공부해서 내 기준에서 만족스러운 대학에 극적으로 갈 수 있었다. 


회사를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는 생각 아래 더 가능성이 보이는 곳으로 끊임없이 나를 움직였다. 누군가는 나를 못마땅해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꾸역꾸역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장애물을 헤쳐 나갔다. 


최초 직장인 IT회사에서는 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힘겹게 입사했으나(단 한 명을 뽑았다)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두 번째 직장인 증권회사에서는 2년 만에 부서이동을 시켜달라고 윗사람들을 조르다가 욕먹고 혼나기 일쑤였다. 이직을 할 때도 몇 번 시원하게 고배를 마신 후에야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글로벌 회사의 국내 지점 설립도 정말 드라마틱하게 손에 잡힐 듯 진행되었으나 마지막에 가서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내가 꿈꾸던 무언가를 실행하려고 할 때마다 쉽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누군가가 '넌 그냥 쓸데없는 노력하지 말고 그 자리에나 머물러 있어'라고 하는 것 같았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반작용으로 저항이 더 커지는 느낌. 물론 그럴 때마다 더 오기가 생기긴 했다. 




그렇게 내 운명의 개척 여정이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야장천 힘들게 노력해 왔는데 정작 생각만큼 이룬 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법인을 설립하고 회사를 만들 때 뭔가 내 삶에 더 큰 변화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예 인생의 판을 뒤집을 정도의 큰 변화. 


그렇게 판을 뒤흔들어 엎으면 이 보이지 않는 힘, 즉 내 팔자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걸어온 여정을 살펴보면 늘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신의 손 위에서 열심히 재롱을 피우는 아주 하찮은 존재처럼, 마치 우리가 속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먼지 같은 존재이듯이.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아직 이 팔자는 엎어지지 않은 것 같지만(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죽어라 일한다), 적어도 이 팔자의 정체는 명확히 알게 됐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제로 팔자는 존재했고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확히 명리학의 사주팔자가 아니라, 우리가 "아이고 내 팔자야" 할 때 그 원망 섞인 팔자. 우리가 (1)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DNA에 (2) 그간의 경험들과 (3) 거대한 세상의 흐름이 더해져, 우리 각각의 행동과 운명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한 팔자의 정체였다. 


누군가는 좋은 환경 속에서 좋은 가르침을 받아서 매 순간 성공확률이 높은 결정을 내릴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못해서 잘못된 결정을 반복할 확률이 높을 수 있다. 자기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속한 환경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리고 스스로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선택에는 이미 내 안에 내재된 DNA, 경험, 세상의 흐름 같은 것들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과물들이 모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아무리 곱게 포장해도 나의 타고난 기질과 겪어왔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중학교 때 겪었던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겪은 역경은 강인한 의지와 자기 통제력을 주었지만, 좁은 시야로 한 곳만 바라보는 옹졸함도 주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금융시장의 변화로 크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데, 만약 내가 넓은 시야로 금융시장의 흐름을 먼저 감지했더라면 회사를 운영할 때 한발 물러날 줄도 알았을 것이다. 


목표에 집요하게 집중해서 달성하려는 기질은 스스로의 모티베이션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역학관계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했다. 회사를 운영할 때 조직운영에 실패하고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했던 결과로 초래되기도 했다.  



그렇다. 결국 지금의 내 팔자는 내가 오랜 시간 만들어온 나와 내가 존재한 세상 그 자체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내가 만들어냈으니 내가 바꿀 수도 있을 터였다. 비록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노력으로 내 팔자를 바꿀 수는 있지 않을까. 


이 과정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성공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그전까지 내 삶은 계속 치열할 것이다. 내 팔자는 내 노력이 강할수록 나에게 더 강한 반작용을 주니까. 


진짜로 팔자 바꾸기에 성공한다면 기왕이면 아주 게을러져도 되는 팔자로 바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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