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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업가 정담 Aug 29. 2024

홍과장의 은밀한 이중생활

Chapter 2. The Ambitious Boy #10

회사원의 신분으로 법인을 설립하게 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랐다.


낮과 밤이 다른 지킬앤하이드처럼, 일과 중에는 회사일을 했고 일이 끝나면 서둘러 내 사업에 착수했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넥타이 풀어헤치고 명함도 바꿔들고 미팅장소로 부리나케 출발하는게 일상이 되었다.


직장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시간인 점심시간도 예외는 아니다. 점심을 대충 김밥으로 때우고 은밀히 사업 자료를 만들거나 통화를 하는 일이 많아져서, 그때마다 누가 듣지는 않을까 사슴처럼 두리번 거리며 귀를 쫑긋 세워야 했다.  


업체와 미팅을 잡으면 보통 8~9시에 미팅이 끝나고 동료와 내용을 정리하는데도 시간을 쓰고 나면 밤 10시는 기본으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고3 학창시절 이후로 매일 별 보면서 퇴근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업 여러 번 해본 거 아니라서 뭐든 시행착오가 생겼고, 회사를 다니면서 익힌 지식과 경험이 전혀 적용이 되지 않았다. 법인 주소지를 정하거나 세무사를 고용하거나 브랜드 이름을 짓거나 하는 일들은 한 회사와 한 포지션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냥 우린 뭐든 다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했던 건, 하루 종일 일했고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거다!  


아니 오히려 정확히 정반대였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내 것이고 나의 미래를 만든다는 생각에 어디서부턴지 힘이 솟구쳤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배터리가 완충된 것처럼 몸이 쌩쌩해졌고 설레임에 엉덩이가 들썩이기 일쑤였다. 이 모든 게 다 신기할 뿐이었다.




우리에겐 가장 먼저 사업모델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중생활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그 동안 이야기해왔던 여러 주제들 - 거시경제, 최신 트렌드, 기업이념, 장래희망 등 - 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보통 일탈을 꿈꾸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단어는 '사업 아이템'이다. 어디 좋은 사업 아이템 없냐며 아이템만 있다면 이 억울한 직장생활을 청산할 것처럼 말이다. 맞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사실 그 좋은 사업 아이템이란게 정말 우리 곁에 존재할까? 우리가 생각한 모든 사업아이템은 찾아보면 누군가가 이미 하고 있거나, 해봤거나, 잘 되고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다.



사업 아이템을 찾기 전에 우리 사업의 원칙을 세우자고.


원칙을 세운다는 건 지향하는 바에 가까웠다. 지향하는 바에 부합한다면 그 어떤 아이템이어도 좋았다. 무엇을 생각하든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거나 해봤거나 잘 되고 있는 것 아닌가? 중요한 건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How) 실행할 것인가'이기 때문에 원칙만 있다면 방향을 잃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의 접근방식은 이러했다.


먼저 둘 다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사업은 초짜들이었고 그렇다고 실패해서 다시 본래의 트랙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 중요했다. 사업이 지속가능하려면 수익모델을 만들 때 수익률이 높은 것보다는 현금흐름이 확실한 게 더 중요했다. 그리고 또 그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했다. 즉 원타임보다는 반복적인 매출을 원했다.


두번째로는 사람에 의해 운영되지 않기를 바랬다(Automation). 지금만큼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도 AI와 로봇에 의해 많은 인력들이 대체될 것으로 보았고, 무엇보다 상승하는 인건비보다는 자동화된 시스템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어느 영역에서 독보적(No.1)이어야 했다. 반도체처럼 큰 영역이 아닐지라도 어떤 영역의 No.1은 시장의 기준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힘이 세다. 또 만약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면 게임의 룰은 우리가 만들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No.1이 될 것이었다.

 

원칙을 정하고 나니 무엇(What)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범위가 좁혀졌다. 원래 금융 일을 했다보니 경제 이슈들에 대해서는 익숙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느끼는 pain point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 현금흐름이 가장 확실하고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으며 우리의 힘으로 독보적 위치에 다다를 수 있는 것으로 좁혀 나갔다.




이 모든 것들이 퇴근 후 6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동료와 나는 이동시간도 아까워 만남을 생략한채 전화로 이야기하면서 일할 때도 많았고 당연히 이 시절에 사무실 같은 건 따로 없었다.


하루는 업체와 미팅을 해야하는데 마땅한 미팅장소는 없고 사무실도 없는 초짜처럼 보이기는 또 싫어서 저녁에 내가 일하던 회사 사무실로 부른 적도 있다(쉿, 이건 비밀이다).


이런 나의 이중생활은 약 2년 간 계속된다. 사표부터 내고 올인한게 아니라, 사업모델을 작게 만들어서 2년 동안 조금씩 테스트를 했다. 전단지를 인쇄해서 큰 건물의 우체통에 끼워넣다가 경비아저씨에게 쫒겨나기도 했고, 네이버 키워드 광고도 떠듬떠듬 직접 올려봤다.


무엇보다 우리의 시제품을 기꺼이 사용해주러 온 고객들과 1시간씩 대화를 해가면서 그들의 니즈, 생각하는 적정 가격, 보완할 점들을 열심히 메모하며 들었던 게 나중에 제품을 고도화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역시 정답은 고객에게 있나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지칠 줄 모르고 샘솟았던 에너지는 꿈에 대한 열정을 원료로 한 것이라고밖엔 생각이 되지 않는다. 곱씹어보면, 우리는 모두 슈퍼맨과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당장 쓸 이유를 찾지 못해서 속 깊은 곳에 숨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정말 미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누구나 그때부턴 슈퍼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나조차도 망토를 휘날리며 돌아다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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