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스톤버리 음악축제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영국에는 다양한 야외 행사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최대 규모의 행사가 바로 글라스톤버리(Glastonebury) 음악 축제(이하 글라스톤버리)다.
많은 팝스타들이 이 축제를 보면서 음악가의 꿈을 키워왔다고 말한다. 내가 처음 이 발음하기 낯선 음악축제의 이름을 접하게 된 계기도 한 팝 가수의 성장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5일간 계속되는 이 행사에는 락, 팝, 엘렉트릭, 힙합 등 다양한 음악 장르들이 소개된다. 음악뿐만 아니라 춤, 코미디 서커스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아마추어 음악가에서 부터 세계적 팝스타까지 다양한 출연진에,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이슈를 나눌 수 있는 자유로운 문화의 장이기도 하다.
행사장 주변에는 공연 관람을 위해 텐트나 캠핑카를 몰고 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런 야외 생활이 글라스톤버리 하면 떠오르는 낭만이기도 하다.
티켓 구매자를 포함해서 음악인 그리고 스텝 등 약 20만 명에 달하고, 행사 기간 동안 100여 개가 넘는 공연이 펼쳐지는데 피라미드형 주 공연장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소 공연장이 함께 운영된다.
올해는 팝스타 콜드플레이(Cold Play)가 밴드 공연을 하고, 두아 리파(Dua Lipa)가 여러 무용수들과 함께 화려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콜드 플레이 글라스톤버리 공연 중 펄럭이는 한글 깃발 @세반하별
K팝 세븐틴 공연 그리고 현장에서 나부낀 '퇴사' 라고 쓰인 깃발
행사 셋쨋날이던 지난 금요일(6월 28일) 낮 시간에는 한국 보이그룹 세븐틴(Seventeen)이 공연을 했다. K 팝그룹 최초로 참여한 것이라고 하는데, 특유의 잘 짜인 군무와 생동감 있는 퍼포먼스는 평소 악기 연주와 보컬 위주 공연과는 사뭇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보통 공연장 앞에는 각양각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지역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깃발도 있고, 정치나 사회 이슈를 상징하는 깃발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콜드플레이 공연을 시청하는데, 선명하게 '퇴사'라고 적힌 한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처음에는 어느 누군가 퇴사 후 자유를 만끽하고자 공연장을 찾았나 보다 싶어 '실껏 즐기시라' 응원하는 마음으로 웃으면서 봤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이스라엘 국기, 무지갯빛 동성애 옹호 깃발들 사이에서 '퇴사' 또한 펄럭일만한 주제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 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렇듯 글라스톤버리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다양하고 그 표현 방법에 재치가 넘친다.
실제 방문해 보니 아담한 시골 마을. 어떻게 이곳에서 세계적인 음악축제가 열리게 된 걸까?
지난해 여름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글라스톤버리 음악축제 현장인 서머싯주 필스톤(Piltron Sumerset)에 잠시 들렸다. 내 첫인상은 '에게~ 이렇게 작은 시골마을이었다고' 싶다. 자동차가 동네 진입하는 길목도 좁고 집들은 옛날 스머프 영화 나오는 집들처럼 작고 예스러웠다. 글라스톤버리 공연장의 트레이드 마크인 피라미드(Pyramid) 공연장 주변의 언덕은 구릉지와 같은 모습으로 정상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 언덕의 이름은 글래스턴버리 토르(the Thor). 종종 아서 왕 전설과 연관되는데, 일부 사람들은 이곳이 아서 왕이 카멜롯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후 회복하기 위해 이송된 아발론 섬이라고 믿는다. 아서 왕 전설과의 연관성은 이 장소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한다.
1970년 지역 한 농부가 자신의 농장에서 여름날 사람들을 모아 음악을 즐기면서부터 시작된 음악 축제는 세계적인 음악 행사로 성장했다.
평소 조용한 시골마을 서머싯주 @세반하별
90년대 청춘이 기억하는 '라테는 말이야~'
내 옆에서 공연 실황을 함께 시청하던 오십 줄의 짝꿍이 “라테는 말이지~” 하며 딸들에게 자신이 갓 스무 살 남짓하던 90년대 초반, 글라스톤버리 음악 축제에 참여했던 경험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당시에는 티켓 가격이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한 두 번 정도면 충분한 티켓 가격에 친구들과 텐트 하나 둘러메고 4박 5일, 여러 가지 음악 공연도 보고 만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공감대 얘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공용화장실이 있었지만 더러워서 아무도 그곳을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며 웃는다
이야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해방구, 히피적인 자유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올망졸망한 무대에서부터 대형 무대까지 여러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공연이 처음인 아마추어 가수부터 수준급 가수까지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한 공연이 축제기간 내내 이어져 그동안 레코드점에서 아르바이트 한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대형 팝스타들은 행사에 초대되지 않았고, 좀 더 마이너리그, 신인 아마추어 가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뽐내는 기회의 장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조금 전 티켓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올해 1인 티켓 가격이 360 파운드(한화 60여 만원)라며,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 한다.
영화 에스터데이(Yesterday)(2019)
음악을 사랑하는 청년(잭)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노래한다. 생각하는 재능만큼은 커녕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부모님 마저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관심이 없지만 딱 한 사람, 그의 여사친(엘리) 만은 그의 꿈을 응원하고 관련 서포트 일을 도맡아 돕는다.
지역 음악행사마다 뛰어다니며 애쓰지만 그 결과에 절망하던 무렵, 글로벌 정전이 일어나고 이후 주인공 잭만이 밴드 '비틀즈'의 노래를 기억하게 된다. 상황에 이끌려 비틀즈의 히트곡, '에스터데이', '헤이 주드' 등 노래가 자신의 창작곡인 것처럼 되어 잭은 무명의 청년에서 세계적인 팬덤을 가진 스타로 성장한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자신의 곡이 아닌 비틀즈 라는 밴드의 음악이라고 실토하고 여사친과 가정을 이루며 평범한 삶을 사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는 로맨틱 코메디다.
잭 바스(Jack Barth)의 에스터데이(Yesterday) 원작에 리차드 컬티스(Richard Curtis) 영국 극작가이자 감독의 공저로 탄생한 작품이다. 참고로 리차드 컬티스는 노팅힐(Notting Hill), 브리짓존스의 일기(Bridget Jones' Diary), 러브액츄얼리(Love Actually) 등 유명 작품의 극작가이자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 에스터데이(2019) 포스터 @유니버셜 픽쳐스
영국 팝이 세계적인 시장으로 성장한 비결이 뭘까? 1960년대 비틀스, 롤링스톤 등의 영국 팝 특유의 자유로움과 스타일로 세계화 시기를 거친다. 영국 음반 시장은 미국 시장과 함께 세계 음반계를 이끄는 양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글라스톤버리 뿐만 아니라, 북서쪽 레딩-리즈(Readind-Leeds) 페스티벌, 와이트 섬(Isle of Wight) 페스티벌 등 굵직한 음악 축제들도 있고, 지방 소규모 공연 행사까지 합하면 영국 내에서 일 년에 천 여개의 음악 축제가 벌어진다고 한다. 늦은 5월부터 9월 초, 날씨가 따뜻한 무렵이면 가는 지역마다 음악 공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처럼 SNS가 흥하는 시대는 개인 홍보 장벽이 많이 낮춰진 셈이지만, 아티스트와 관객이 나누는 현장의 호흡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마이너리그 음악 시장이 활성화 되어있는 것이 영국 음악 문화의 뿌리이자, 그 에너지의 원천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음악 화면에 비치는 음악팬들의 즐거운 모습이 다채롭다. 목청껏 따라 부르는 사람, 눈 감고 자신의 감정에 푹 빠져 있는 사람. 앳된 젊은이들과 흰머리 성성한 중년, 해외에서 공연을 즐기러 온 다양한 사람들. 음악은 마술과 같아서 함께 하는 이들을 그 순간, 하나로 모여 즐기게 하는 힘이 있다.
무엇이든 대형화, 자본주의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대형 스타들 마케팅으로 모객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신인이나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설 수 있는 다양한 무대를 만드는, 음악 축제의 전통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