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밀라노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최후의 만찬’을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미리 티켓을 사 두었다.
첫번째 여행길에서는 막연히 취소티켓이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성당으로 가서 기다려 봤지만, 단 한장도 구할 수 없었다. 나중에 만난 밀라노 한인회장님 말씀이, ‘한국사람들은 언제나 예약을 안하고 무작정 와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것이, 당시 가이드북에 “가서 기다리면” 당일 취소티켓을 구할 수 있다는 내용 따위가 팁이라고 적혀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는 여행계획을 세울 때 가이드북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는데, 예전의 여행 가이드북은 일본책을 번역한 것이 많았다. 그러니 그 정보라는 것도 오래되어 유효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최신정보가 가장 중요한 여행 안내서에 “최신”이 빠져있었다.
두번째 세번째 방문때는 온라인으로 티켓을 사 보려고 했지만, 내가 가는 시기에는 매번 ‘솔드아웃’이었다. 이 티켓을 과연 살 수는 있는 것인가?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 이탈리아 사람이 얘기를 해주었다. 성당에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오픈하면, 그 즉시 밀라노의 여행사들이 티켓을 전부 선점한다고 했다. 그러니 일반 관광객들은 전혀 살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최후의 만찬’관람 코스가 포함된 로컬 여행사의 시티투어 상품을 알아보았다. 가이드와 함께 지하철로 이동하며 ‘두오모(Duomo)’, ‘스포르체스코 성(Castello Sforzesco)’, ‘라 스칼라 극장(Teatro alla Scala)’등을 방문하고, 마지막에 ‘최후의 만찬’을 보면 끝나는 원데이 투어였다. 다른 장소들은 이미 봤던 곳이라 굳이 또 갈 필요는 없었고 투어 비용도 비쌌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쌀쌀한 아침, ‘포르타 로마나(Porta Romana)’ 지하철역에서 가이드를 만났다. ‘최후의 만찬’ 벽화를 보려면 15분마다 25명씩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투어 인원도 25명에 맞춘 듯했다. 모두들 나와 같은 목적의 관광객들이었다. 함께 두오모 광장으로 이동해 성당내부와 주변 관광지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몰(Galleria Vittorio Emmanuelle II)’ 뒤편을 지나면서는 개인적으로 ‘카페 트루사르디’를 유심히 보았다. 이 곳은 가죽제품 브랜드에서 런칭한 카페로 검정색의 팬톤 체어로 꾸며 감각적인 실내와, 초록색의 덩굴식물을 빼곡히 자라게 한 테라스의 지붕은 칙칙한 밀라노 골목에 생기발랄함을 더하고 있었다. 나중에 여기 와 봐야지 생각하며 '라 스칼라'로 이동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Santa Maria Delle Grazie)’성당으로 가기 전,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였다. 가이드가 갑자기 나를 콕 지목하더니 ‘예약한 거 맞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하지, 아침에 확인 했잖아? 하루 종일 같이 다니지 않았니?’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 여자가 안면을 싹 바꾸고 ‘못 믿겠다. 티켓을 보자’라는 식으로 나왔다. 절대로 착각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 투어 그룹에 혼자 온 사람도 나 하나, 동양인도 나 하나였다. 인원수만 파악해도 바로 확인이 될 텐데 온종일 같이 다니고 나서 이제와 처음 본다는 그 얄미운 표정이라니… 필요 없을 것 같아서 버릴까 말까 고민했던 예약 확인메일을 가방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확 낚아채듯 종이를 가져간 가이드는 한 줄 한 줄 읽어보더니 입술을 샐쭉하고서 돌려주었다. 사과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교묘하고 비열한 차별이었다. 모멸감이 들었다. 그 여자에게 욕을 한 바가지 부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최후의 만찬’ 관람이 남아있었고 예약시간이 다 되었다. 사람들은 나와 가이드의 실랑이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벽화는 오랜 세월동안 색이 바래고 안료가 떨어져 나가 너무나 희미했다. ‘템페라(Tempera)’로 그려진 그림의 단점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었다. 템페라 기법이란, 유화가 개발되기 이전의 색칠법으로 달걀 노른자에 염료를 섞어 재빠르게 칠하는 것을 말한다. 노른자의 특성상 표면이 빨리 마르기 때문에 화가의 작업속도가 매우 중요하고 색의 수정이 어렵다. 다 빈치가 그렸다는 이 벽화는 수도원의 식당으로 사용되던 공간의 한쪽 벽에 그린 벽화라 그 훼손정도가 심해 보였다. 원근법은 정말 놀랍도록 정교하고 인물들의 심볼 하나하나 흥미로웠다. 하지만, 벽화는 거대해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림보호를 위해 사진촬영도 금지되어 있고 조명마저 어두워 멀리 떨어져서는 보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성당에 오기 전 가이드 때문에 다운된 기분이 그림감상에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벼르던 15분은 그렇게 지났다.
투어는 끝났고 사람들은 각자 제 갈 길로 흩어졌다. 아쉽고 허무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성당의 내부로 통하는 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정갈하게 관리된 아담한 정원을 중심으로 사각형의 건물이 자리하고 정원과 성당사이는 회랑(portico)으로 연결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었다. 다 빈치의 벽화보다도 이 정원에 마음을 뺏긴 나는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담기 시작했다. 고요한 정원에서 카메라 셔터소리만이 나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갑자기 안쪽 출입문이 열리더니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나 볼 법한 수도복을 입은 할아버지가 한 분 바쁘게 걸어 나왔다. 이 정원에 외부인이 출입해도 되는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알 길이 없었던 나는 카메라를 얼른 내리고 최대한 공손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혹시 들어오면 안된다고 야단 맞을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도사님은
“Bene Bene Va Bene”
라고 한마디 하고 생긋 웃으며 지나가셨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괜찮아 괜찮아"정도의 늬앙스일 것이다. 성당에 오기 전 무례했던 가이드 때문에 상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치료된 기분이 들고 싫어지려고 하던 밀라노가 다시 사랑스러워졌다. 벽화는 다시 못 보더라도 이 성당에는 또 와야지 생각하며 나는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