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트라, 검고 깊은 그리고 다시 깊은 부드러움
미드(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베드의 시즌 중 커피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느 한 장면에 서, 금단의 약품을 만들 때 쓰이는 실험용 비이커에 연결된 유리관, 그리고 좋은 커피와 물 가열에 필요한 물품들이 등장한다. 곧이어 주인공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려 주겠다며 정성껏 커피를 우려내는 인물이 나타난다. 실린더와 비이커 사이로 우러난 커피를 받아든 주인공은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잔의 커피에 탄복한다. 바로 그 커피가 ‘수마트라’ 커피이다.
극중에 나오는 커피 추출 도구들은 ‘사이폰’추출 도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긴 유리틀 사이로 가열되고 압력차에 의해 자연스레 내려지는 커피. 긴박하게 흘러가는 드라마의 전개와는 다르게 여유롭게 커피를 논하는 모습이 불협 화음 속에서 조화를 찾듯 흥미롭다.
위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커피는 좀 유별나다. 생두를 다루는 과정에서 커피 체리에서 과육을 모두 제거하는 방식인 ‘수세식(워시드)’이 아니다. 대신, 일정 부분의 과육을 남기고 건조하는 ‘웻헐(wet hull)’ 방식이다. 이 범상치 않은 커피는 수마트라 섬 화산재의 토양을 기반으로 독특한 향미을 가진다. 흙, 나무, 버섯 그리고 씁쓸함의 뉘앙스들은 앞에서 다루었던 화려한 산미와 단맛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 커피의 쓴맛은 내가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의 뉘앙스와 닮아있다. 비가 온 뒤에 대지에서 올라오는 기분 좋은 눅눅함이다. 물기가 잘 베어든 토양의 냄새, 붉은색 향신료들의 깊고 짙은 화려함, 그리고 잘 건조된 가죽과 원목 같은 냄새.
생두의 표면을 살펴보면 청록색보다 짙고, 때론 누런 주름들이 얼기설기 섞여있다. 먼 아프리카에서 유리 배양기에 담겨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툭 던져져 버린 나무들이 몇 해 지나 돌아와 보니 지천이 되어버릴 정도로 자라났다. ‘그것들은 항상 빗물로 인해 습기가 많고 통기성이 좋은 열대의 땅에 뿌리를 내렸다. 그러자 순다 제도(지금의 인도네시아 섬무리를 지칭)가 마치 커피 나무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자바에서 수십 만 배로 불어났다, 그것들은 급속도로, 말없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자라내고 또 자라났다.’ -커피의 역사 中
비단 수마트라섬 만이 아닌 자바, 셀레베스섬에도 그 고유의 떼루아를 짙게 담고 있다. 고수분율과 적당히 타협하여 열을 주면 깊고 짙은 커피의 특징을 발현하기가 어려운 녀석이다. 끊임 없이 몰아치며 자신의 깊은 향미를 열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연스레 화력을 높여주면 짙은 카카오닙스와 단향, 그리고 다양한 향신료 향들이 잘 발현된다. 이렇게 짙고 어두우며 잎 안을 가득 채우는 야생과 같은 커피는 다른 어떤 지역에도 없으리라.
브레이킹 베드의 주인공 월터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그 커피를 내려 준 작업자와 함께 즐겁게 일을 한다. 하지만 이 즐거움도 잠시, 파트너가 자신의 마약 제조법을 능가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 끝에 그를 살해하고 만다, 아무도 모르게 짙고 어둡게 세상에서 가장 맛좋은 커피는 그렇게 가장 쓰고 어둡고 짙은 커피가 된다.(스윗 커피 수마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