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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선 Mar 18. 2024

팜플로냐에서 철강도시 빌바오로


아파트 특유의 냄새를 빼면 모든 게 편했던 숙소를 

원래 상태로 최대한 되돌려 놓고 짐을 챙겨 나왔다. 

유럽 정원을 모티브로 한 조형물 퍼피를 만나러 빌바오로 가는 날이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자는 제안에 아침 녘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거리로 나섰다. 

배낭의 무게가 묵직하게 어깨를 압박해 온다.

이 정도의 길은 무난하겠지만 

제대로 걷기로 한 100km 전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과연 무게를 당해 낼 재간이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어디선가 행진곡 음악이 들려온다.

짧은 스페인어로 물어보니 스페인 국경일이란다.

내빈석이 만들어지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바쁘게 오간다.

행사가 진행되려면 한참 남은 듯해 팜플로냐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갔다.

버스터미널이 독특하게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빌바오 출발 시간이 남아  사물함에 짐을 보관하고 시내투어를 나섰다.

국경일이라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는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유독 사람들이 몰리는 건물 1층에서는 재활용품 판매 행사가 진행 중이다.

눈썰미가 남다른 친구들은 취향에 맞는 물건을 빠르게 손에 넣었다.

맘에 드는 물건들을 싼 가격에 쟁취한 여인들의 표정이 만족스러워 보인다.


구수한 빵 냄새에 끌려 카페에 둘러 앉았다. 

여유를 부리며 마시는 카페 꼰 레체는 맛있었다.

여행 중 뜻밖의 순간에 행복감에 압도당하는 순간이 지금이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달착지근 쌉쌀한 커피만이 내 앞에 놓여 있을 뿐인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진짜 행복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 출발하기 전 리즈 위더스푼 주연의 영화 "와일드"를 보았다. 

엄마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혼까지 한 여자, 하이킹 경험이 전혀 없지만, 

멕시코 북부에서 미국 서부 해안 인근을 따라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4,285 킬로미터를 홀로 종주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힐링과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출발 전 마음이 힘들었던 나는 이 영화로 위로를 받았다.

삶이 나태해지고 무의미하며

삶의 끝에 있다고 느껴질 때 걷기에 나서는 이유가 아닐까

여행 한 번으로 극적인 삶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도중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찾아서 떠나는 여행길에 있음이 행복하다.


철강도시 빌바오를 향해 버스가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세 시간을 달려 깨끗하고 단정한 도시가 인상적인 빌바오에 도착했다.

저녁 무렵인데 햇살이 따사롭다.

빌바오 유스호스텔 숙소까지 가는 길이 친구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고 

배낭을 짊어진  등줄기가 후끈하지만 새로운 도시를 바라보는 눈은 반짝인다.

아담한 숙소에 들어오니 넓은 창 넘어 빌바오 도시의 마을 풍경이 아름답다.

여행을 떠나와 친구들과 일상을 묵묵히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지금,

다시없을 지금을 실컷 누려보고 싶다.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줄임말이 '여행'이라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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