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오래 살다 보니 특별히 반찬을 만들어 먹거나 하지 않는다. 밖에서 밥 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집에서 먹을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몇 가지는 만들어 먹었던 적도 있었다. 두부와 생선을 좋아했던 터라, 두부전이나 생선구이 그리고 찌개를 자주 했었다. 하지만, 귀가가 늦어지는 일이 잦고, 주말에도 여유롭게 만들어 볼 시간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반찬은 사 먹는 것이 되었다. 크기가 작은 집에서 요리하면 냄새 밴 옷을 입고 출근을 하는 것이 곤혹스러워 무언가를 만들지 않게 된 이유도 있었다.
늦은 오후 청량리역에서 약속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생각했다. 큰길로 가는 대신, 시장을 가로지르면서 이곳저곳 둘러보며 걸었다. 특별히 필요한 것이 없는데도, 시장에 오면 늘 무언가 사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오늘따라 빨간 바구니에 담긴 노란색 참외에 유독 눈이 갔다. ‘참아야 해’를 몇 번이나 속으로 외치면서 청과물 시장을 겨우 지나쳤다. 하지만, 주로 반찬을 많이 파는 골목에 들어서면서, 지금까지 참았던 다짐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석쇠 위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는 고등어가 유혹한다. 어서 나를 집어 가라고. 흰 쌀밥에 반찬으로는 어떠냐고? 나를 안주 삼아 집에서 막걸리 한잔은 또 어떠냐고?
그 무언의 속삭임. 그리고 덤으로 명태전 몇 개를 넣어주겠다는 아주머니의 수완에 결국 고등어구이 두 개를 사서 집으로 향한다. 이번 주는 아무래도 고등어와 연관이 있는 한주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책장 정리를 했다. 불필요한 책들을 책장에서 비우는 일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더 이상 경제와 경영으로 분류되는 책은 읽을 일이 없어졌다.
이것들을 새로 산 책과 자리를 바꾸는 데도 제법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러다 책장 한 귀퉁이에서 공지영의 소설 ‘고등어’를 발견했다. 책 머리 위로 하얀 먼지가 쌓인 상태로, 비린내도 나지 않고, 그리 오래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썩은 냄새조차 풍기지 않은 채 조용히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소설은 1994년 6월 25일 초판이 발행되었다. 94년 대학을 졸업하고 D 회사에 입사했던 나는, 소설 읽기를 좋아하던 시기였다. 당시 유명한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기에, 망설임 없이 구입했거나, 회사 동료 누군가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에 조금은 놀랐다. 어떤 내용인가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생각 나지 않는다. 책 표지를 본다. 너무 깨끗하다. 그리고 책 속을 살펴보지만 읽은 흔적조차 없다. 다시 책 뒤를 살펴본다. 그때 뒷장에 있던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소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이 소설을 읽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이때는 석쇠 위 고등어처럼 생각하기 싫었다.
대학 생활 초반을 제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머리속은 마르크스 철학으로 가득했었다. 어렴풋이 가치관이 만들어질 때 도움을 주었던 철학이었고, 그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고하고 행동하며 학교에 다녔다. 철학을 실행에 옮기다 보니 졸업이 늦어졌고, 사회생활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고 싶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도 없었으면 했다. 또, 시작이 늦은 만큼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핑계로, 자칫 내가 만들었던 가치관을 잃을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던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내용이 어떻든 소설을 읽다 보면, 행여 마르크스 철학과 함께했던 나의 시간을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 두려웠을 것이다.
석쇠 위에 놓인 고등어처럼.
입사 후 25년 만에 생산 부서를 떠나 본사로 출근하게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25년 넘게 근무했던 생산 부서가 싫어서도 아니었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불편해서도 아니었다. 새롭게 업무를 시작한 곳에서 회사 생활을 마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본사에서의 생활은 생산 부서와 달랐다. 낯선 환경도 어려웠지만, 경영, 제품개발, 연구소, 광고와 마케팅, 화장품 출시 같은 신사업까지, 늘 새로운 일들을 담당해야 했다. 익숙한 일이 아니었기에 어려웠고, 생산과는 달리 치열한 상황들도 많았다. 하지만, 술기운에서라도 생산 부서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조차 갖지 않았다. 어느 날 대장으로부터 익숙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을 때도, 힘들어도 이 업무들을 마지막까지 하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2년 후 나는 회사와 결별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그때 다시 생산 부서로 가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더 잘 할 수 있는 익숙했던 곳으로. 그러면 지금도 회사에 있으셨을 텐데요’ 하는 후배의 이야기에도 미소로만 답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와 이별한 지 시간이 제법 흘렀다. 한때 생활의 전부가 회사였고, 모든 활동은 회사 일과 관련된 것뿐이어서인지, 내가 잘하는 것들이라고는 회사와 관계된 일들이었다. 회사 밖에서는 일상에서 거의 쓰임이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안타깝지만, 좋아하는 일들마저도 회사 일과 관계된 일뿐이었다.
퇴사 후 회사 일 말고 내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당분간 취업 활동은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직업과는 전혀 다른 직업을 찾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커피 내리는 것을 배웠다. 쿠키를 만드는 법도 배웠다. 코딩을 배웠다. 여행하는 법을 배웠고, 사진도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는 스케치도 해보기 시작했다. 심지어 글쓰기까지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잘하는 걸까? 얼마나 더 시간이 흐르고, 어떤 것들을 더 해봐야 할지는 알 수 없다. 몇 년 뒤에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다짐처럼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그때 나는 지금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는지…
까만 봉지에 담긴 고등어구이 냄새가 솔솔 코밑까지 올라온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집에 가는 대로 구이 하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마셔야겠다.
취한 김에 소설 ‘고등어’를 읽어 볼까?
아니야. 다시 책장 깊숙한 곳에 넣어 두어야겠어. 어쩌면 영원히 이 책을 찾을 수 없게.
(2024.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