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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서 Oct 21. 2023

안녕, 프랑크푸르트(두 번째 이야기)

나와 아내는 십 년 전 대학 선배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그때 아내는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계좌개설 등 이런저런 도움을 주면서 우리는 단기간에 가까워졌다.  


나는 지적이면서도 명쾌한 그녀가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었고, 취향과 가치관도 비슷했다. 우리는 만난 지 3개월 만에 연애를 시작하게 됐고, 주위에서 흔히 말하는 ‘결혼할 사람은 직감으로 안다’는 걸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내는 독일에 오기 전까지 국내 증권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내부경쟁과 실적 압박감으로 인해 우울 증세까지 겪게 되었다고 언젠가 털어놓은 적 있었다. 우리는 평일에 주로 도서관에서 데이트를 했고, 주말이나 방학 때에는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한국에서 고단했던 그녀의 심신은 점차 회복되어 가는 듯했다.


우리는 만난 지 6년 만에 결혼을 했다. 아내는 평소 배려심이 깊고 책임감이 강했던 만큼, 그런 그녀와는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나름 결혼생활을 잘 해나갈 거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나의 오해와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본인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결혼 3년 차 무렵부터 섹스리스 부부로 살았다. 사실, 아내에 대한 성적 욕구가 사라진 건 훨씬 더 오래전 일이지만, 우리가 부부관계를 갖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아내의 건강 상 임신을 포기하라는 의사의 진단 때문이었다. 아내는 이미 두 번의 유산을 경험한 적이 있었고, 결국 아이를 포기하기로 힘들게 마음을 먹으면서 그 이후로 우리는 보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살게 되었다.


아내는 한국으로 떠나기 얼마 전부터 혼자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평소 그녀답지 않게 나에게 화를 내는 경우도 잦아졌다. 나는 그녀가 단지 회사에서 받는 일시적인 스트레스 때문이라 여기며, 특별히 이유를 캐묻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내와 공항에서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날, 나는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셨다. 이것은 퇴근 후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고, 그때 나는 말로만 듣던 화병이 뭔지 알게 되었다. 만약 당시에 아내가 떠난 이유를 정확히 알았더라면, 그 어둡고 힘든 터널에서 좀 더 일찍 헤어 나왔을 거라 나는 생각했다. 아무튼 그녀가 떠난 이후의 내 삶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고, 우선 당장에는 혼자 새집으로 이사 갈 준비를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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