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한국으로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다. 그녀는 국내 증권회사에 취직해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바쁜 일상을 보냈고, 가끔씩 전화로 여유롭게 살던 독일이 그립다면서 한국에서의 고단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당시 양가의 반대를 무릎 쓰고 한국으로 날아간 아내의 하소연을 들어 줄만한 심적인 여유는 내겐 남아 있지 않았다.
평소 나는 아내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가정적인 남편일 거라 착각했던 것 같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 아내가 한국으로 떠난 이유를 불문하고- 그녀의 성공과 행복조차 빌어주지 못한, 소위 말해 ‘찌질’한 남편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정신적, 금전적으로 조금도 손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어쨌든 본인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늦게 번복해서라도 독일로 되돌아오기만을 바라던 것이었다.
아내가 귀국한 지 일 년이 지난 시점에도 우리 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그녀는 무슨 연유에서인지 앞으로의 우리 관계에 대한 특별한 언급 없이 독일에서 잘 지내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나 역시도 그녀와의 이별이 두려운 나머지 한국에서 건강히 잘 지내라는 안부만을 전했다.
독일에서 혼자 보낸 시간만큼 아내에 대한 원망과 불신은 점점 더 쌓여갔고, 한 발 더 나아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프랑크푸르트모터쇼 박람회장에서 우연히 재회한 대학후배였던 민경을 자주 떠올렸다. 그녀는 대학생 시절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학업에만 열중한 눈에 띄지 않던 학생이었는데, 어느샌가 자신감 넘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었다.
환경공학박사학위를 받은 이후에 민경은 독일 대표신문사인 FAZ에서 환경전문기자로 근무를 했고, 미래차와 관련한 생방송 TV토론 패널로 참석 차 모터쇼 행사에 방문했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시선과 차분한 논조로 유럽의 유수 자동차 제조사 패널들과 열띤 공방을 펼쳤는데, 그러한 그녀를 내내 지켜보면서 희열과 동시에 섹시함을 느꼈다. 우리는 토론이 끝난 뒤 카페에 앉아 잠시 얘기를 나눴고, 서로의 명함을 교환하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엊그제 회사에 사표 냈어. 다음 달 중순 지나서 독일에 들어갈게."
주말 저녁에 갑자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이미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다음 달 중순 지나서 독일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말했다. 아내의 변덕에 짜증이 났지만, 어쨌든 그녀의 번복에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찾는 듯해 보였다. 우리 관계를 초조하게 지켜보시던 양가 부모님도 그녀의 출국소식에 한숨 돌리시는 듯했다. 나는 그녀에게 출국준비를 잘하라는 말을 건넨 뒤 그녀가 변함없이 계획대로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