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다하고 있는 서른이들에게 고함
<애매한 최선> / w. 나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익숙하고 진부한 이 문구 앞에서 매번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떤 날은 희망을, 어떤 날은 도리어 힘이 빠지는 걸 느낀다. 성취 없는 결과 앞에 자위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서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그렇게 굴러왔다. 단 ‘애매한’ 최선으로, 최고는 욕심내지 않는 척 하면서 말이다.
깔끔하지 못한 감정이다.
늘 이래왔다. 지독한 자기혐오를 하면서도 은근히 내 인생의 결말은 좀 특별하길 바란다. 그 간극은 3자를 달고부터는 좀 줄어드는 듯 했다. 이노무 인생은 도무지 내게 스페셜 기프트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그 증상이 심해졌다. 꿈이 커진 것이 아니라 현실이 너무 끔찍해서다. 매일 누군가가 죽었으면 하는 바람, 가끔은 도로의 차들을 다 밀어버리고 싶은 폭력성, 세상 모두가 내 뒷담화를 할 거라는 생각, 그런 불안을 무시한 채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것.누구에겐 평범한 일상을 발연기하듯 해내다 보니 매일이 피곤하다.
그리하야 나는 여전히 애매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터에서도, 일상에서도.
심지어 덕질할 때에도.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덕질인데 지레 겁을 먹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좋아했는데 날 배신하면 어쩌지, 아니면 내 마음이 변하는 건 어떤가. 지금 모아둔 것들은 전생에 좋아했던 누군가의 굿즈들처럼 버리지도 못할 쓰레기가 될 텐데. 그렇게 좋아하는 일에도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며, 애매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응원한다.
그렇다 보니 나는 정말로 애매해져버렸다.
외모도 능력도 성격도 자산도 모두.
스스로가 애매하기에 자꾸만 등급을 매기고 싶어한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갈 예정인지 무엇을 할 건지, 뭘 해야 하는지. 수없이 교차하는 생각들로 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실은 좀 잘 살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좀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타인이 나를 발견해주길 바란다.
나의 최선이 아닌, 타인의 최선에 기대 등 떠밀리듯 성공하고 싶은 마음.
마지못해 그 영광을 누리고 싶은 옹졸한 나의 30대.
이런 애매한 최선으로 나는 몇 살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 글도 좀 애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