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 후 처음으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갔다. 난생 처음 같은 공연을 이틀이나 봤다. 현실적으로 무리한 일정이었다. 내겐 세달 전부터 준비한 굉장히 큰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이 일의 마감이 콘서트와 같은 달인 7월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이틀이나 뺀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하루를 취소하기도 했다. 물론 취소한 직후부터 후회했다. 결국 매일 밤 티켓팅 사이트를 들락날락하며 겨우 하루치 표를 더 구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선택이었지만......
나에겐 ‘지방러’라는 한 가지의 짐이 더 있었다. 지방러에게 같은 콘서트를 두 번이나 본다는 건 무슨 뜻이냐... 공연 외에 드는 모든 비용이 두 배씩 추가된다는 것이었다.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지방러 중에서도 부산사람인 나는 편도로만 2시간 반 정도를 기차 타는 데 써야했다.
그럼에도 행복한 이틀이었다. 막콘까지 보고 싶다,라는 바람은 일요일 출근으로 무산되었고 부산에 도착한 당일 바로 회사로 출근했다.
분명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나는 콘서트장에 있었는데 그 이틀의 여파로 2주일 가량을 두 시간씩 자며 버텨야 했다. 일이 잘 되어가는지 어쨌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짬에서 나온 어떤 것으로 몇 개의 고비를 넘겼다.
일은 덕질 만큼 개운하게 풀리지 않았다. 하면 할수록 안 하고 싶고 보면 볼 수록 보기 싫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그냥 해야지 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난 성공은 글렀다. 그냥 해야지가 안 되는 사람도 있다. 그게 나다. 그렇게 매일을 극한에 몰리는 기분으로 버티고 버텼다.
내 멘탈을 잡아준 건 또다시 덕질이었다. 콘서트에서 본 멤버들은 데뷔 연차가 꽤 찼음에도 드럽게 열심히 했다. 잘하는 것이 두 번째로 보일 정도였다. 악착같이 무대를 하고 팬서비스를 했다. 그런 면이 지금까지 인기를 얻는 이유겠지만 새삼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나도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면 저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정도로는 멘탈을 완전히 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결과’가 가장 중요한데 솔직히 조금 망한 것 같다. 남들은 내가 밤을 새든, 두 시간을 자든 별 관심이 없다. 이런 경우 진짜로 망할 수도 있다. 아이돌과는 달리 현실은 쉴드쳐주는 팬들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을 기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따윈 있을 수가 없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나는 자꾸 도망갈 생각만 하게 된다.
“역시 이 일은 나랑 안 맞아” 라는 강한 목소리가 내면에서 울려 퍼진다. 10년 넘게 같은 일을 했는데 아직도 헤매는 거라면 역시 재능이 없는 게 맞겠지. (라는 말도 십 년 넘게 했는데 어째서 난..)
그런 생각을 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므로 이렇게 멘탈을 잡는다. “어차피 여기서 평생 일할 것도 아닌데”. 이건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싫은 사람이 있다 해도 “에휴, 얘랑 평생 볼 것도 아닌데.” 돈을 지나치게 쓸 때에도 “평생 쥐고 갈 돈도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사실상 이건 회피에 가깝다. 위안이라는 말을 붙이긴 했지만 치졸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저 말이 통하려면 끝을 정하는 주체가 ‘나’여야 한다. 등 떠밀려서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두는 것, 상대방이 나와의 인연은 끊기 전에 내가 먼저 안녕을 고하는 것,
모든 일의 유통기한을 정하는 주체가 계속 ‘나’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평생 할 것도, 평생 만날 것도 아닌데”라는 카드를 꺼내드는 것이다.
덕질의 지속여부를 결정하는 게 나이듯, 현생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일도, 인간관계도, 돈도, 마지막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다. 나이를 이렇게나 먹었는데 아직도 내맘대로 안 돼서 울고 싶어지다니. 삶에 대한 기대치를 최애를 향한 애정만큼이나 올려둔 내 탓이다.
탈덕 말리는 요즘, 어떤 서른의 인생. 현생도 덕질하듯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