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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J Feb 22. 2024

덕질이 떠난 자리

를 빙자한 입덕계기 (by. 나다)

덕질이 떠난 자리               

- 나다     

 

  누군가에게 덕질은 습관 같은 것이다.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고 고치려고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습관. 그리고 그 습관을 가진 게 바로 나다.     


  일전에 쓴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한평생 가수를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돈, 청춘을 썼다. 덕질의 대상이 바뀌더라도 언제나 같은 행위를 반복해왔다. 30년이 넘는 세월에서 덕질을 하지 않았던 시간을 빼면.......... 고작 5,6년 정도가 남을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내 인생에서 숨쉬기를 제외하고 가장 꾸준히 한 행위인 ‘덕질’. 그러던 어느 날, 거짓말처럼 덕질이 재미가 없어졌다. 최애의 일상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고 잔뜩 쌓인 굿즈가 짐처럼 느껴졌다. 의무감으로 영상을 보고 새롭게 뜨는 이벤트 알람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것도 한참 뒤에 발견했다.     

 

  이렇게 탈덕이라는 걸 하게 되는 건가 싶었다. 적당히 잘생긴 연예인을 좋아하는 머글(일반인)이 되어 현실 속 남자에게 사랑을 쏟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이번엔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탈덕 예보와 함께  '내 나이'의 무게가 피부로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나니 나 자신을 설명하는 단어는 고작 ‘30대 미혼여성’ , 그게 다였다. 그것이 내가 일궈온 유일한 것처럼 느껴졌고 곧장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평가했다. 이 나이쯤이면 돈을 얼마나 모았어야 하며, 결혼을 했어야 했고 어떤 직장에 다니고 있어야 하고 사회적 지위는 이 정도, 인맥 풀은 어느 정도를 가져야 하며 ......     


  그렇게 발가벗겨진 나는 평균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 선을 넘기 위해선 드라마틱한 성공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갓생’을 흉내 냈다. 그것은 약간의 효과를 보였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행위 자체가 성장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성장 같은 것을 전시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나 일순 없었다. 비어버린 덕질의 자리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다. 조금 불행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바닥이었다. 한때 최애만큼 나를 사랑하지 못해 자책한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긴 적도 있었는데, ‘덕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전제를 깔고 최애를 탓한 적도 있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그리웠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결코 억지로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마음껏 사랑하던 과거의 순간들이 부러웠다.      


  타인에게 이해받기 어려운 마음으로 몇 달을 보냈다. 텅 비어버린 나를 깨운 건 ‘덕통사고’였다. 정말 하룻밤의 사고 같은 거였다. 겁도 났다. 그 애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애를 보느라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잠들었고 퀭한 눈으로 출근을 했다.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왜 얘를 이제야 발견했지”라는 아쉬움이 컸다. 많이 피곤했고 자주 웃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새로 발견한 최애는 그렇게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매일 아침 최애의 사진으로 잠을 깨고 노래를 찾아 듣고 매번 그를 검색하는 일, 고작 그 행위가 뭐라고..  나는 구원을 떠올렸을까.      


  수많은 팬들이 가수에게 전하는 말들 가운데  “내가 가장 힘들 때 힘이 되어줬다”라는 말이다. 덕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티스트가 팬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고 현실 속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고맙단 말인지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겪어본 사람은 안다. 나의 존재를 영영 모를 수도 있는 존재가 건네는 위로, 그 힘만큼 강한 건 없다고.      


  덕질이 떠난 자리를 채운 건, 다시 덕질이다. 이 아이를 오래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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