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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Oct 17. 2023

첫사랑에게 걸어갔다. Andante

열두 걸음

   

 봄이 절정이었다. 잡고 있던 난간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옥상 바닥에 누웠다. 눈 앞에 펼쳐진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은오, 하고 불렀을 때…아니 그보다 더 전, 복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졸업식…강당에서…자전거 위에서…운동장에서…방학식 날…성산대교…시골에서…호수 위에서…축제…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꺼져, 내 인생에서…


 소리 없이 펑펑 울었다. 아이처럼 입을 벌리고 모든 스트레스를 눈물로 쏟아냈다. 


 한참 울다가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었다. 옅푸른 하늘에 분홍색 벚꽃잎이 휘날렸다.


 “은오야, 여기서 뭐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경비 아저씨 가 서있는 모습이 사십오 도 돌려진 상태에서 보였다. 놀랐다. 그 사람이었다. 경비 아저씨가 그 사람이었다.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나 이 학교 있었어. 너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모르더라.” 


 그 사람이 허허허 웃었다.


 “왜 울어?”


 누워있는 내 옆에 그 사람은 가슴 아픈 표정으로 앉았다. 


 “학교생활 힘들어?” 


 난 어물거리다가 작게 대답했다. 


 “네, 조금, 아니…많….”


 “은오야, 은오야.”


 고요했다. 낙원 같이 평화로웠다.


 “소원 하나 말해봐.”


 그 사람이 말했다.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 이 소원이 아니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난 말했다.


 “정유성이 영원히, 죽을 때까지 나만 좋아하게 해주세요.”


 양팔을 활짝 편 채 빙글빙글 돌며 말할 때 벚꽃잎이 소용돌이쳐 올라가며 그 끝 하늘 어딘가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래, 알았다.”


 눈을 번쩍 떴다. 추웠다. 텅 빈 옥상에 밤이 내리깔려 있었다. 일어나 가방을 들고 옥상을 벗어나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날 밤, 소파에 멍하니 앉아 허공을 보며 쓸데없이 너무 큰 집을 생각했다. 여자 둘만 살고 하나는 잠만 자는데. 엄마는 밤늦게 들어와 부엌에서 차를 타고 있었다. 


 “엄마.”


 효영이 아저씨가 날 돌아봤다.


 “나 전학 갈래.”


 엄마가 멈칫하더니 날 봤다.


 “학교에서 집까지 멀어서 힘들어. 너무 힘들어. 정말 너무 힘들어…….”                              


 모든 얘기를 들은 엄마는 가만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효영이 아저씨가 말했다.


 “전학 보내. 뭔 말이 필요해?”


 “가만 있어 봐. 생각 좀 하게.”


 “뭔 생각이 필요해? 야, 너 내일부터 학교 가지마. 무단결석해, 그냥.”


 “아, 좀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좀 하게.”


 엄마는 눈썹만 조금 찌푸린 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끼고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학교가 그 모양이야?”


 “아우 야! 조용히 좀 하라고!”


 난 지금도 효영이 아저씨가 엄마랑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알 도리가 없다. 씩씩대며 부엌에 가 찬물을 입에 들이붓는 아저씨를 보며 아빠가 지금 여기 있었다면 저랬으려나 생각했다. 한참 후에 엄마가 말했다.


 “너 내일부터 학교 가지마.”


 “그래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선생님한테 말 안 해도 돼?”


 “말 안 해. 그냥 가지마. 짜증나.”


 엄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얘기했나 후회가 드는데 엄마가 신음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발작이라도 일으킬 사람처럼 새빨간 얼굴로 끅끅 소리를 냈다. 


 아저씨가 부엌에서 달려왔다.


 “울지마.” 


 “다 죽여버리고 싶어. 지금 내가 칼 빼들고 찾아가서 다 죽여버리고 싶어.”


 엄마는 아빠가 죽었을 때보다 더 미칠 듯 괴로워했다. 아저씨 눈이 빨갰다. 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아 뚜껑을 열었다. 템포를 무시하고 느리게 월광소나타를 쳤다. 월광소나타 3악장이 안단테로 울려퍼졌다.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멍하니 피아노를 쳤다.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줄리에타 귀차르디가 자기를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걸 베토벤이 받아들일 때까지. 내 인생 중 한 소절을 넘어갈 때까지.     

     

 전학 후 한 달쯤 지났을 때야 생각이 났다. 난 핸드폰을 바꾸면서 갖게 된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누구냐.” 


 “장미야, 나 은오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뭐? 은오라고? 야! 너 뭐야?”


 “나 핸드폰 바꾸면서 번호도 이걸로 바꿨어.”


 “그걸 왜 이제 말해! 너 지금 어디야!”


 “나 지금 학교 앞인데.”


 “뭔 학교?”


 “봉천여고.”


 “기다려. 지금 갈테니까.”


 “여기 경기돈데…!”


 전화가 뚝 끊겼다. 장미는 진짜로 왔다. 180cm의 키를 자랑하며 성큼성큼 다가와 내 허리를 잡고 들어올려 공중에서 열 바퀴를 돌렸다.


 2013년 6월,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켰는데 메일이 와있었다. 


 “어…!”


 공전고등학교 1학년 6반 네이버 학급 카페 활동정지 메일이었다.


 활동정지 스텝: 정유성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활동정지 사유: 미안해 


 마우스를 놓았다.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이제 정유성은 내 인생에 먼 과거 속 추억으로 남았다는 사실이. 난 한 시간을 소리죽여 펑펑 울다가 잠이 들었다.     



 정유성을 잊지 못했다. 수학여행을 갈 때, 1년 전 버스 안에서 정유성이 했던 말과 모습이 환상처럼 버스 안에 감돌았다. 


 수능을 볼 때, 긴장한 와중에도 정유성이 어떻게 시험을 칠지 누구와 도시락을 먹을지 공부는 얼마나 했을지 얼핏설핏 생각이 스쳤다. 


 입시 상담 때, 결국 엄마에게 패배해 피아노 과에 원서를 넣었다. 정유성은 어떤 대학 무슨 과를 갈지 궁금했다. 


 졸업앨범이 나왔을 때, 정유성 졸업사진이 내 것보다 궁금했다. 분명 온갖 황당무계한 방법을 동원해 사진을 찍었으리라. 하지만 장미가 보여준 졸업앨범에 정유성은 없었다. 


 졸업식 때, 모두 강당으로 이동하라는 선생님 말에 코트를 빼입은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마지막으로 혼자 교실을 나갔다. 천천히 교실 앞 복도를 걸을 때 들렸다.


 ‘김은오.’


 뒤를 돌아봤다. 중학교 3학년 정유성이 서있었다. 그때 뭐라고 했더라? 떠올리려 애썼다.


 ‘애들 다 어디 갔어?’


 “강당 갔지.”


 한번 말해봤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정유성과 나란히 복도를 걸어 강당에 들어갔다.


 대학교 합격원서를 받은 날 방을 정리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먼지를 털고 책꽂이를 정리했다. 책꽂이 앞 바닥 구석에 오랫동안 박혀있던 교과서 상자를 풀었다. 


 수학 교과서를 펼쳐 필기했던 것들을 구경했다. 손가락으로 따라가며 읽어보다가 멈칫했다. 27페이지에 있는 깨알 같고 희미한 글자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어찌나 작은지 먼지만 하고 발견한 게 신기할 정도로 흐릿했다.


 사랑해


 난 생각했다, 어쩌면 정유성은 이지수가 아니라 날 좋아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정말 아주, 아주 어쩌면……처음부터 끝까지 나만 좋아했을지도 모른다고.               




 “엄마, 나 하고싶은거 하면서 살래.”


 공항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내가 말했다. 


 “나 소설 쓰고 싶어.”


 엄마가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가서 해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와.”


 난 깜짝 놀라 창문을 향하던 얼굴을 돌렸다.


 “그래도 돼? 진짜야?”


 “…진작 말하지 그랬어. 꿈도 희망도 없이 그냥 피아노가 지루하다는 줄 알았잖아.”


 “정말로 다 때려치우고 하고싶은대로 해도 돼?”


 “일단 생각해보자.”


 엄마가 잠시 후에 말했다. 


 “니 아빠가 그렇게 소설 쓰고싶어했어.”


 엄마 입에서 아빠 얘기가 나오자 난 엄마를 가만히 쳐다봤다.


 “근데 왜 안했어?”


 “할아버지가 연필 꼭다리나 쥐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을 거면 죽어도 사위 못 삼는대. 땡전 한 푼 안  줄거래. 미루고 미루다가 그렇게 간 거지, 뭐.”


 침묵이 이어지고 엄마가 뜻 모를 한숨을 조용히 뱉었다.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빠 사랑했어?”


 “사랑하니까 결혼했지.”


 조용했다. 공항이 가까워질 때쯤 내가 물었다.


 “엄마, 나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 있었던 거 생각나?”


 엄마가 잠깐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얼굴 쪼끄만 걔? 너 데리고 편의점에서 사고치고.”


 “응. 걔가 한번 그러더라. 내 목소리랑 말투랑 행동이 엄마를 복제한 거 같대.”


 난 창문에 몸을 기대고 밖을 봤다. 엄마는 픽 웃더니 뜬금없는 말을 했다.


 “사는 게 악보 같더라. 뜻대로 될 때는 신나고 안 될 땐 찢어발기고 싶고.”


 난 혼잣말을 했다.


 “근데 왜 도돌이표를 그릴 수가 없을까.”


 스물넷, 생각했다. 딱 한 번만 내 스물네 줄 악보에 도돌이표를 그릴 수 있다면 열일곱 번째 줄에 그릴 거라고. 정유성이란 스타카토가 난무하는 거기에.               


 2020년 봄, 열일곱에 경찰에게 쫓겼던 이후 처음으로 사고를 쳤다. 학교를 자퇴한 후 모든 짐을 정리하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혼자 친 사고는 아니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그간 엄마와 내 싸움을 지켜본 아빠가 합세했다.


 “서현이가 설마…”


 “설마 뭐?”


 “이혼하자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공항을 나오며 난 킥킥 웃었지만 등골이 서늘했다.


 “엄만 아빠 없이 못 살아. 지금까지 내가 봐왔다니까. 아빠 나타나고 모든 게 바뀌었어.”


 “나 이효영, 오십다섯 먹고 이렇게 무섭기도 오랜만이다.”


 우린 택시를 잡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변명과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엄마는 한 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일단 와서 얘기해.”


 엄마에게 있어서 얘기를 해보자는 말은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우린 마주 보고 숨을 놓으며 손을 부딪쳤다. 대전쟁에서 승리하고 피아노에서 손을 뗀 순간이었다. 느리게 꿈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안단테. 내 인생의 빠르기는 안단테였다.


 밤, 택시는 가로등이 별처럼 빛나는 성산대교를 달렸다. 창문에 얼굴을 기대고 밖을 봤다. 한여름에 손을 잡고 인도를 뛰던 두 고등학생이 보였다. 눈을 감았다 뜨자 없었다. 미소가 나왔다.


 인도 저편에서 키가 훤칠한 슈퍼모델같은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길고 까만 코트를 입고 오른손에 핸드폰을 든 채 앞을 보며 걷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창문 너머로 그를 주시했다. 점점 가까워지며 사방이 하얘졌다. 하얀 바탕 저편에서 오는 그만 보였다. 쿵,쿵,쿵,쿵,쿵, 거인 발소리 같은 심장소리만 들렸다. 택시가 거북이같이 느리게 느껴졌다.


 지나치는 순간 시간이 멈췄다. 세상에 버퍼링이 걸리며 심장소리가 극대화되어 모든 음량을 집어삼킬듯 쾅쾅거렸다. 스물다섯, 학생 티를 벗기까지 하니 그 앤 정말 굉장한 미남이었다.


 날 까맣게 잊은 첫사랑은 앞만 보며 유성처럼 지나갔다.


 아빠, 나 행복하게 살게. 


 그날 돌아가신 아빠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웃는데 징-하고 핸드폰이 울렸다. 번개가 내리치는 듯 놀랐다. 아빠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넌 반드시 행복할 거야. 진짜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기쁘게 살아.


 숨을 헐떡이며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했다. 한참 후에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 사람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동안 문자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 생각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지겠다고. 내가 그것을 원하고 하늘이 그것을 원한다고. 무한하고 전지전능한 모든 진실의 원동력이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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