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걸음
“병원 댕겨왔나?”
아무도 없는 학교 주차장. 덕호가 묻자 희수가 대답했다.
“아직.”
덕호는 안도하는 숨을 쉬었다.
“덕호야, 나 태몽 꿨다.”
덕호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꿈에 내한테 별이 떨어지대. 그래서 안 받았나.”
덕호 얼굴에 미소가 천천히 번져나갔다. 희수가 눈물을 보였다.
“우짜노? 아부지가 내 죽어도 병원 데꼬 갈 낀데.”
희수가 훌쩍이는 소리만 한참 흘렀다. 한참 후 덕호가 눈을 들고 말했다.
“희야, 니 내랑 서울 안 갈래?”
“미칬다. 서울이 어데라고 가는데?”
“서울 가서 돈 좀 벌어볼라고.”
“고마 여서 니는 조선소 댕기고 난 아 키우고 살림하고 그라믄 되지.”
“야, 이 섬구석에서 할 기 뭐가 있는데? 니는 평생 이래 거제도서 살고 싶나?”
“서울에 누가 있는데? 아는 사람 있나?”
“느그 친엄마 있다매.”
희수가 질색을 했다.
“낳고 버린 게 엄마는 무신 엄마고? 니가 생각하는 그런 엄마가 아니다.”
“니 여기 있으면 우리 아도 죽고 니랑 내도 같이 몬산다.”
한참 조용하다가 마침내 희수가 대답했다.
“울 아부지가 허락할까?”
“아부지, 나 서울 엄마한테 갈란다.”
식주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마침내 한숨을 푹 쉬더니 말했다.
“그래, 니 고마 느그 엄마한테 가라. 거는 집도 많고 땅도 부자고…”
희수는 눈물이 앞을 가려 뒷말을 듣지 못했다.
덕호는 작전을 짜고 속였다.
“엄마, 내 서울 갈란다.”
“뭐라노.”
티브이를 보던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덕호가 팸플릿을 내밀었다.
“뭣이고, 이기.”
“서울에 기술 갈챠주고 취직도 시키주는 학교가 있다대.”
“어데서 봤노?”
“몰라. 어서 봤다.”
“어데서 묵고 자는데?”
“기숙사 있다.”
“고마 여서 학교 나오제. 와?”
“여서 나와봤자 조선소밖에 더 댕기나?”
“조선소가 어떻노? 알았다. 니 희수 가랑은 헤어졌나?”
“헤어진 지가 언젠데 뭔 소리고. 아 지았다드라!”
덕호가 큰소리를 쳤다. 엄마가 안도와 미안함이 섞인 눈빛으로 눈길을 돌렸다.
“잘했다. 그기 맞는 기다. 동네 망신이대이. 학교는 나와야 할 거 아이가.”
덕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손으로 비비며 선포했다.
“내 이 섬구석이랑 연을 끊을 기다. 아들 죽은 줄 알아라.”
"뭐라노? 니 엄마 죽는 꼴 보고싶어서 그러나!"
"마 됐다. 내 돈 마이 벌어가 올께."
흰 트럭이 도로를 광고하듯 이상한 모양새로 달렸다. 방금 뽑은 티가 줄줄 흐르는 차에 깨끗한 영어 글자 ‘삼성 야무진’이 반짝였다. 핸들을 잡은 덕호와 조수석에 앉은 희수는 진땀을 뻘뻘 흘렸다. 덕호가 경사진 식당 골목에 트럭을 세우며 말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밥부터 먹자.”
덕호는 홀라당 차에서 내리고 문을 닫은 순간 기어를 잠그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트럭이 경사에 의해 주차된 다른 차들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조수석에 앉은 희수 얼굴이 새파래졌다.
“사이드 올려! 사이드 올려!”
덕호가 차 앞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희수는 차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무조건 잡아당겼다.
잠시 후, 식당에 앉은 덕호는 손을 들고 말했다.
“사장님, 저희 큰 종이하고 두꺼운 펜 하나 주이소.”
그렇게 ‘왕초보’라는 글씨가 적힌 달력이 대문짝만 하게 붙은 야무진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임시남바 달고 탁송료 아낄려고 애쓴다, 희수는 사람들이 말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차들은 클락션을 빵빵 울리며 먼저 가라고 손짓했다. 택시마저도 호의를 베풀었다. 덕호가 웃으며 말했다.
“희야, 내 인자 쫌 할 만하다.”
그때 억수 같은 장대비가 퍼부었다. 두꺼운 빗줄기가 사정없이 차를 두들겨 패자 백미러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서울이 가까워졌을 때 둘은 라디오를 틀어도 될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서너 시간이면 될 거리가 일곱 시간에 육박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 광야를 지납니다. 그게 일이 년으로 끝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야곱은 이십 년간 외숙 밑에서 눈 붙일 겨를 없이 고생을 했습니다. 그가 그 광야를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라디오가 말을 하다 말고 지지직 소리를 냈다. 차가 터널을 들어가고 있었다.
덕호는 종로를 향해 야무진을 몰았다. 광화문을 향하는 내리막을 갈 때였다. 평소 차가 많은 거리에 수상하리만치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뭐꼬, 민방위 터짔나.”
중얼거리며 텅 빈 길을 지나가자 갑자기 검은색 승용차 행렬이 쫙 이어져 있었다. 시커먼 현대 에쿠스가 끝없이 깔려있었다.
“장례식이네.”
덕호는 거래처 상가에 도착해 지하로 들어가 폐기물 처리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흰 종이가 잔뜩 나오는 종로 빌딩은 좋은 거래처였다.
종이에는 급이 있다. 박스는 가장 험하게 산다. 이리저리 집어던져지고 테이프로 쥐어뜯기고 발로 밟혀 쓰레기장으로 오지만 돈이 얼마 안 됐다. 그보다 대우받는 게 신문이다. 얌전히 모셔져 있다가 얌전히 쓰레기장으로 오고 박스보다 돈이 됐다. 제일 잘 나가는 게 흰 컴퓨터 용지. 폼나게 태어나 때깔 나게 모셔져 있다가 쓰레기장으로 왔고 가장 비쌌다. 빌딩이 많은 종로 번화가 상가는 흰 컴퓨터 용지와 신문이 많았다.
덕호는 파지를 일 톤 화물차에 두 차 분량으로 쌓아 올렸다. 트럭에 물건 쌓아 올리는 데에 정덕호를 따라갈 사람이 대한민국에 없었다. 원숭이처럼 뛰어오르며 넘어질 것 같은 부분엔 판을 대고 줄로 묶었다.
마침내 어마어마한 폐지가 탑처럼 실렸다. 덕호는 싱글벙글 휘파람을 불며 차를 몰아 지하를 빠져나갔다.
도로에 경찰이 깔려있었다. 모든 차와 사람들이 멈춰서 쳐다보고 있었다. 중앙선 왼쪽에 운구 행렬이 이어졌다. 덕호는 갈 길인 텅 빈 오른쪽 길을 바라봤다.
오전 내내 뛰어오르며 난리를 쳤는데 지금은 점심이었다.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방금 지하에서 나와 영문을 모르는 덕호가 차를 몰아 도로로 들어가는 동시에 길고 검은 리무진이 천천히 움직였다. 따라 에쿠스 행렬이 일렬로 리무진을 따라 내려오기 시작했다. 수백 대는 되는 것 같았다. 덕호는 그제야 아침 뉴스에서 들은 현대 회장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모든 사람과 차가 왼쪽에 언덕을 내려가는 에쿠스 행렬과 오른쪽에 어마어마한 높이의 폐지를 싣고 올라가는 화물차를 쳐다봤다. 짐을 어찌나 많이 실었는지 차가 달릴 생각을 않고 느릿느릿 굴러갔다. 장례 행렬도 피차일반이었다. 덕호는 똥줄이 탔다. 경찰이 일제히 넋을 놓고 운구 행렬과 트럭의 교차를 쳐다봤다. 이 폐지 탑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기에 덕호뿐이었다.
“당신은 내리가고 내는 올라가고.”
덕호는 중얼거렸다.
유성이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린 시절 중 하나는 텔레비전 안에 나오던 자기 모습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중학생들과 어르신들에게 라면과 국수를 공짜로 대접하는 덕호 씨와 희수 씨.
텔레비전 안에서 흘러나온 소리도 기억한다.
“가난하다고 전국에 동네방네 떠들었네.”
덕호가 작게 내뱉은 말도 기억한다.
또 다른 기억 중 하나는 텅 비어 문을 닫은 분식집 앞에 앉아있던 희수와 지성이다. 유성은 늘 그러듯 가게 옆 주차장을 굉장한 속도로 뛰어다니며 촐싹거리다가 조용한 엄마 곁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지성이 말을 걸어도 희수는 대답이 없었다. 지성이 포기했을 때쯤 희수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니들은 절대 빚지지 마라. 종이 된다.”
유성은 고개를 들어 희수를 쳐다봤다.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가난하면 죄인처럼 살아.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내가 나중에, 어, 돈 많이 벌어서 엄마 화장품도 사주고, 가방도 사주고, 엄마 이거 이거, 입술에 바라는 거. 도 사주고, 옷도 사줄게.”
지성이 몸짓과 함께 말했다. 그때 유성이 마침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희수에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 선물이야.”
네잎클로버였다.
셋 앞에 트럭이 섰다. 유성이 홀딱 일어나 문을 열었다. 덕호가 운전석에 앉아 셋을 쳐다봤다. 바닥과 화물칸에 고물이 실려있었다. 유성은 이유 없이 그날 덕호 표정이 억울하게 실컷 얻어맞은 사람 같다고 기억한다. 덕호가 눈을 내리깔고 작게 말했다.
“희야, 우린 역시 고물이 답인갑다.”
희수가 두 주먹을 쥐어 불끈 올리며 소리쳤다.
“그래! 우리 할 수 있어. 잘 될 거야. 진짜 성공할 거야.”
잠에서 깬 유성은 차창 밖에 펼쳐진 풍경에 잠긴 눈을 크게 떴다.
“우와.”
파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저거 고래 같아, 고래.”
지성이 같이 상기된 목소리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을 가리켰다.
“심삼 년 만에 나타나서 염치도 없이. 우야겄노."
희수가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덕호가 대답했다.
"지금 자존심 따질 때가? 엄마한테 손이라도 벌리야지. 다만 백만 원이라도."
"그러게 진작 좀 찾아뵙지 만다고 쫀심을 부리노?"
"누가 자존심 땜에 그랬노. 낯짝이 없어서 그랬지."
유성은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양말 바람으로 마당을 뛰어오는 걸 보며 지성과 함께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였다.
“왔나.”
할머니가 펑펑 울며 말했다.
“어데 있다 인제 왔노.”
유성은 엄마아빠가 손을 눈에 가져다 대고 우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유성은 혼자 시내를 돌아다녔다. 끈을 꼭 당겨 조인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쓰고 앞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계속 걸었다. 길 가 악기상점 문 옆에 아무렇게나 기대고 쪼그려 앉았다.
안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가사 없는 연주곡으로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향수가 있는 소리였다. 마치 어릴 때 많이 들었는데 크면서 잊힌 그리움을 착각하게 했다. 제목을 찾아서 실컷 듣기로 했다.
차가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를 달릴 때 유성이 음정을 흥얼거렸다.
“이 노래 알아?”
덕호와 희수는 둘 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명한 거 같은데.” 유성이 말했다.
“가사가 뭔데?”
“가사 없어.”
“그럼 못 찾는다.”
여름이 왔다.
“느그 반에서 키 젤 큰 아는 몇이고.”
희수가 유성에게 물었다.
“박성호가 백칠십이.”
“무슨 육 학년이 아가 아니라 어른이 따로 없네.”
키 얘기가 나오자 유성이 습관적으로 후드티 모자를 뒤집어썼다.
“밥 물 때 모자 벗으라고 했다.”
희수가 젓가락으로 가리키자 벗었다.
“재보자, 한번.”
희수가 일어나 벽으로 갔다.
“아, 싫어.”
“왜 묵다 난리고.”
덕호가 중얼거렸다.
“와봐라, 좀 컸다니까.”
유성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로 가 섰다.
“……뭣이 그대로가. 백삼십이.”
유성은 매몰차게 뿌리치고 다시 식탁에 앉았다. 엄마가 따라와 앉고 물었다.
“느그 반에서 젤 짝은 아는 누고?”
“나 그만 먹을래.”
“니 자꾸 밥 냄기고 그라니까 쪼꼬매가 빼짝 말랐다아이가.”
유성은 일어나 후드티 모자 끈을 조이고 거실에 드러누웠다. 희수가 밥을 먹으며 덕호에게 말했다.
“아까 서울 엄마랑 통화했는데, 홍주가 미쳐버맀다네.”
“맞나?”
덕호가 입에 가져가던 숟가락을 멈췄다.
“홀딱 벗고 호텔 앞 사거리에서 소리 지르면서 뛰어댕긴단다.”
덕호가 컥! 소리를 냈다.
“미친 거 아이가?”
“미칬다니까. 저번엔 엄마를 두들겨 팼단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던 유성이 뭐가 떠오른 듯 뒤돌아 덕호와 희수에게 물었다.
“이 노래 뭔지 알아?”
음정을 따라 해 보였다.
“자 저 소리 한지 한참 됐다.”
아빠가 말했다. 엄마가 일어나더니 정지성의 고장 나기 직전인 고물 전자 피아노 앞에 앉았다.
“노래 불러봐.”
엄마가 서투르게 음정을 따라 건반을 눌렀다. 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 듣고 싶은데.”
엄마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빠르게 창문을 돌아봤다.
“와?” 아빠가 물었다.
“비 온다. 지성이 우산 안 가져갔는데.”
아빠가 달려가 창문을 열어봤다.
“히이! 억수로 쏟아진다!”
“올 때 다 됐다아이가.”
“우짜는데?”
“정유성, 용돈 줄게. 우산 가가 같이 온나. 싸우지 말고.” 엄마가 말했다.
“지성이 어디 갔는데?”
“학교 갔다아이가. 방학 중 수업 들으러.”
비가 요란하게 퍼부었다. 유성은 우산을 쓰고 초등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폴더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했다. 끝나려면 아직이었다. 1층 복도에서 하릴없이 왔다 갔다 하기를 한참, 우뚝 멈춰 섰다.
그 노래였다. 유성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소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3층에 왔을 때 뚜렷하게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학교 다목적실이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안에 사람이 가득했다. 무대 위 걸린 현수막에 쓰여있었다, 전원 피아노 32회 음악회. 무대 위에서 검은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찾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들어와도 돼, 친구야.”
들어가려는 아줌마가 말했다.
“피아노에 관심이 많나 보네?”
유성은 가만있었다.
“우리 학원 좋아. 너 같은 여자애들 많이 와. 몇 살이니? 열 살?”
또 시작이다, 유성에게만 들리는 꽹과리 치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질적인 유성 표정에 아줌마가 당황했다.
“혹시 남자애니?”
유성이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였다.
“어머, 너무 예쁘게 생겨서 여자 앤 줄 알았어. 조그맣고 왜소해가지고. 모자를 써서 머리가 안 보이니까. 너 완전 인형 같다.”
유성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후드티 모자 끈을 더 조여 당겼다. 키 작고 조그맣다는 소리를 듣느니 여자애인가 보다 착각하는 게 나아 머리를 가리는 게 습관이었다. 학원 선생님으로 보이는 아줌마는 머쓱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놓여있는 악보엔 제목이 쓰여있을 텐데. 유성은 가만히 무대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그때 퍼뜩 지성이 생각났다.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찍혀있었다.
나 간다
1분 전에 온 문자였다. 유성은 황급히 뛰어가려다가 다시 돌아 무대를 바라보며 아이씨, 아쉬운 듯 갈피를 못 잡더니 곧 달려갔다. 그때부터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십삼 센티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