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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Oct 20. 2023

첫사랑에게 걸어갔다. Andante

스물세 걸음

 “정유성 이 새끼 이거 갈수록 열두 시 전에 들어오는 법이 없다.”


 덕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처 논다고 꼭두새벽에 들어온다아이가. 인자 한 달만 있으면 고삼인 놈이.”


 희수가 한숨을 쉬었다. 


 열 시, 문이 열리고 유성이 들어왔다. 


 “니 인간이가? 이 시간에 들어온다는게 말이 되나?”


 “엄마, 나 할 말 있어.”


 패딩을 벗어놓고 유성이 희수 앞에 앉았다.


 “엄마,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봤는데 나 공부 따라가지를 못 해. 학교 가면 잠만 자. 이제 와서 공부하기도 늦었고. 자퇴하고 나 하고싶은거 하면서 실질적인 길 찾을래.”


 희수가 반대했지만 완강했다.


 “하고싶은게 믄데?”


 “돈 벌고 싶어.”


 희수가 한숨을 쉬었다.


 “우짤라고? 중졸로 살라고?”


 “검정고시 칠 거야.”


 “검정고시는 쉽나?” 


 “할 수 있어.”


 “그럼 학교도 다닐 수 있겠네! 고등학교는 나와야 될 거 아이가, 쫌!”


 “아, 검정고시 친다고! 자기도 고등학교 안 나왔으면서.”


 희수가 유성을 향해 겨눈 뒤집개를 든 오른손을 내려놨다. 아무 말 없이 아들을 쳐다봤다. 눈시울이 빨개지고 눈이 먹먹해졌다.


“니가 그리 말하면 안 되지.”


 “아니, 엄마아빠도 자퇴했다며. 왜 자꾸 나한테만 그러냐고.”


 “말 다했나? 말 다했나!”


 희수가 왼손에 든 프라이팬으로 유성을 갈겼다. 프라이팬이 유성이 반사적으로 방어한 팔에 맞았다.


 “악! 왜 이래, 진짜!”


 “와?”


 화장실에서 나온 덕호가 수건을 목에 두른 채 다가와 씩씩대는 희수에게 물었다.


 “자퇴한단다. 내보고 고등학교도 안 나왔댄다.”


 “이 쌍노무새끼, 니 말 다했나.”


 덕호 얼굴이 새빨개졌다.


 “싸가지 없는 새끼…니가 인간이가? 세상 사람 다 우리 개무시해도 니는 그라믄 안 되지!”


 “아니, 그냥 그렇다고 하는 건데 왜 이래.”


 “뱃속에 있을 때 죽게 냅둘걸 그랬다!”


 “왜 그렇게 말해!”


 유성이 덕호와 똑같이 언성을 높였다.


 “오죽하면 그런다, 오죽하면!”


 “왜 그렇게 말하냐고!”


 고개를 처들고 소리치는 유성을 덕호가 말을 잃고 쳐다봤다.


 “나가라.”


 씩씩대는 유성에게 덕호가 힘없이 말했다.


 “나가, 이 새끼야. 니 같은 놈이랑 못살아.”


 “안 그래도 나갈 거야.”


 “나가! 이 싸갈머리 없는 새끼야.”


 덕호가 지하방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유성은 그대로 핸드폰만 든 채 현관으로 나왔다. 신발을 신다 멈추고 현관 옆 옷걸이에 걸린 덕호 외투를 쳐다봤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 한 움큼을 빼 주머니에 넣은 뒤 지갑은 넣어놓았다.           


 유성은 피시방에서 인터넷을 뒤져 검색했다. ‘청소년 가능 숙식 제공 아르바이트’     


 과일판매. 전라북도 익산.      


 전북에 도착한 유성은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 이리 앉아, 앉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사장이 껄떡대며 말했다. 사장을 따라 숙소로 갔다. 유성 또래들이 함께 쓰는 원룸이었다. 


 다음 날부터 일이 시작되었다. 사장이 사준 캔커피를 든 채 트럭을 타고 시내를 돌았다. 유성은 잘라진 파인애플을 들고 매장에 닥치는 대로 들어갔다.


 “저,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시민이 손을 내저으며 인상을 썼다. 계속 이어졌다.


 “맛있죠? 이거 얼마 안 해요.” 


 신기하게 사람들은 선선히 돈을 주고 사갔다. 유성은 눈치챘다. 그걸 동정심을 이용하고 있었다. 삭신이 쑤시고 아파왔다.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야, 새꺄. 느려.”


 차에 올라앉자 사장이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자?”


 “네.”


 밤 아홉 시, 넋 놓은 표정으로 과일을 전하는 유성을 한 남자가 유심히 쳐다보더니 물었다.


 “학교 안 다녀?”


 유성은 피곤해 보지도 않고 얼버무렸다. 다리가 욱신거리고 허리가 쑤셨다.


 “에에, 안 다녀요.”


 “부모님은?”


 캐묻는게 사줄 것 같아 공손히 대답하기 시작했다.


 “안 계세요.”


 “이 일 힘들지 않아?”


 유성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팔짱을 끼고 유성을 쳐다봤다.


 “너 돈 한번 안 벌어볼래? 사이즈 끝장나네. 너 정도면 한 달에 삼백은 그냥 벌어.”


 유성이 풀렸던 눈을 제대로 뜨며 그를 쳐다봤다. 남자는 유성에게 번호를 남겼다.


 차에 올라앉자 사장이 핸들을 꾹 붙들고 유성을 노려보며 고함을 쳤다.


 “야, 너 장난하냐? 씨발 내가 너 고객이랑 노가리 까라고 쳐보냈어?” 


 “죄송합니다.”


 “아, 새끼 일 지랄 맞게 하네. 아….”


 밤 열 시, 원룸 구석에 누웠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전부 미성년자로 보였다. 새벽 세 시, 유성은 조용히 일어나 패딩을 입고 그대로 도망쳤다.


 찜질방에서 밤을 지낸 유성은 아침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저 어제 식당에서 전화번호 받아간 앤데요.”                                   




 2017년 봄, 청년들이 강남 포차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논사말 글 다 썼어?”


 과제 끝냈냐고 영우가 묻자 지형이 고개를 저었다. 밤이 깊었다.


 “차 끊기겠다. 나 간다.”

  지형은 인사하려던 손을 멈췄다.


 “왜?”


 영우가 물었다.


 “어...어, 쟤...내 친구 같은데.”

  영우가 지형 손가락이 향한 곳을 봤다. 


 “저 사람? 저 모델 같은? 저게 니 친구라고?”


 “어, 어! 맞아. 맞아! 쟤 맞아!”

  친구들이 모두 달려가는 지형을 주목했다.


 “야, 유성아. 너 유성이 맞지.”


 유성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과잠을 입은 고등학교 때 친구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유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 너...지형아.”


 지형이 유성을 와락 끌어안았다.


 “야, 어디서 뭐 하고 살았어! 아니, 너 전북인지 전남인지 내려간 후에 전화를 했더니 웬 할아버지가 받는 거야. 번호는 왜 바꿨어?”


 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유성을 한참 말없이 보기만 하다가 지형이 말했다.


 “시계 멋있다.”


 “줄까? 가져.”


 “다 어디서 났어? 구두도.”


 “아는 형이 사준 거야.” 


 “그 사람 어떤 사람인데?”

  “그냥 아는 형...아, 몰라.”


 “미친놈아, 정신 좀 차려.”


 뭐? 하고 유성이 발끈 되물었지만 지형은 노려보기만 했다.


 유성은 깜깜한 방에 외투도 벗지 않고 앉았다. 달빛이 은은하게 들이쳤다. 오른손에 예전 핸드폰이 들려있었다. 충전기를 꽂았다. 잠시 후 전원이 켜졌다.


 삼 년 전에 왔었던 부재중 전화와 문자를 살펴봤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에게서 부재중 전화 삼십칠 통, 문자 십칠 통이 와있었다. 


 ‘유성아 너 자퇴 처리했다 어머님이 오셔서 서명하셨어’


 모두 전화번호와 핸드폰을 바꾸기 전 두 달 동안 전원을 꺼놓았을 때 온 연락들이었다. 유성은 한숨을 푹 쉬고 대 자로 누웠다. 잠시 후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 한 켠 폐기물 처리장에서 두 사람이 목장갑을 끼고 일하고 있었다. 줄줄 흐르는 땀을 장갑 낀 손등으로 닦으나 역부족이었다. 유성은 줄곧 쳐다보다가 훌쩍거렸다.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한참 울다가 중얼거렸다.


 “내가 서울대를 갔어야 했는데.”  


 새벽 두 시, 유성은 옛날 핸드폰 하나만 든 채 지하방 앞에 섰다. 이대로 밖에 아침까지 서서 기다리다가 처량하게 있으면 출근하던 엄마아빠가 긍휼한 마음이라도 들겠지. 삼십 분쯤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바깥문은 안에서 고리를 걸게 되어있었다. 생각 없이 문을 잡아당기자 열렸다.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나 쇼핑몰 하려고.”


 마트를 걸으며 유성이 한 말에 지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냐?”


 “아는 형이 도와준대.”


 지형이 잠깐 멈추고 유성을 쳐다봤다.


 “또 이상한…”


 “아, 아니야. 옛날에 중3 때 모델 잠깐 서줬던 쇼핑몰 사장님이야.”


 유성은 우뚝 멈춰 섰다. 시간이 내는 냄새가 기억을 자극했다. 주황색 헤어제품을 집어들었다. 가로수길을 걸어가던 여름 초저녁이 꿈처럼 펼쳐졌다.


 유성은 활짝 미소지었다. 그때 그 애 머리에서 나던 향기, 붉게 아른아른 빛나던 길, 줄지어 선 진초록 나무들, 노을빛에 벌겋게 물들어 살랑살랑 흔들리던 나뭇잎들. 그날이 잊히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그 애가 너무 보고 싶었다.


 ‘너무 좋아. 내 첫사랑이야.’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 애를 다시 만난 유성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은오 머리에서 내내 나던 향기가 타임머신처럼 시간을 되돌렸다. 일 초, 삼 초, 오 초, 십 초, 십오 초, 그리고 환각처럼 사라졌다.


 지형은 미쟝센 오리지널 헤어 퍼펙트 세럼을 들고 꼴값을 떠는 친구를 내버려두고 건들건들 카트를 밀며 걸어갔다. 코너를 돌다가 멈춰 섰다. 익숙한 모습이 기억을 자극했다. 굳은 지형은 어느새 옆에 와있는 친구를 쳤다.


 “야, 야. 쟤, 쟤.”


 “뭐?” 


 “저 사람.” 


 지형이 손가락으로 멀찍이서 과자를 집는 여자를 가리켰다.


 “누구? 저 흰옷? 긴 머리?”


 “어, 어.”


 “쟤가 누군데?”


 “고은새.”


 잠깐 말 없이 이해할 시간이 걸렸다가 깨달은 유성이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고딩 때 걔? 미쳤냐? 성형으로 얼굴 갈아엎었대도 저건 아니야.”


 유성은 관심 끄고 과자를 골랐다. 지형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계속 쳐다봤다.


 “걔 무슨 구로에 있는 대학 붙었다고 그때 그랬던 거 같은데.”


 유성이 떡볶이 과자를 집으며 말했다.


 “야, 있잖아. 너가 그때 얘기하니까 생각났는데,”


 유성이 말하자 지형이 돌아봤다.


 “그때 그 이상했던 문자, 걔 아니었던거 같아.”


 지형이 잠시 기억을 되짚더니 대답했다.


 “누구. 아, 걔? 그 김...뭐더라, 금순이?” 


 지형이 한숨을 쉬었다.


 “유성아, 걘 진짜 아니다. 걘 진짜 막장이었어.”


 “난 걔랑 사귀어봐서 알잖아. 그 문자도 소문도 사실 당장 서러운 마음에 이성보다 감정이 앞섰던 거 같아.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다 이상해. 그 문자도 좀 뜬금없었고, 그 소문도 걘 그런 소문을 낼 친구도 없고 친구가 있어도 말을 안 해서 사람 미치게 하는 성격이었어. 근데 걔가 그렇게 적나라하고 세세하게 내 집안 사정을 떠들었다고? 사실 좀 상상이 안 돼. 걔, 나 좋아했어. 나 정말 많이 좋아했어.”


 유성은 지형과 헤어진 후 성산대교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성공하게 해주세요. 성공하고 싶습니다, 간절히 되뇌었다. 차들이 지나갔다. 모닝, 소나타, 아반떼, 벤츠, 그리고 택시…유성은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넓게 뻗은 한강을 봤다. 걸음을 멈췄다. 그대로 잠시 정지해있다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김은오, 월드컵대교 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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