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걸음
“야야, 9반 앞에 싸움 났대.”
원우가 들어와 말했다. 장미는 무관심하게 엎어져 자고 있었다. 말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누구?”
“박정훈이 김은오한테 개빡쳐서 이 갈고 있대.”
장미는 벌떡 일어났다.
“이원우, 진짜야?”
굵직한 목소리가 교실 앞까지 전달되었다.
“어.”
애들이 9반 앞으로 신나게 달려갔다. 장미는 교실을 나가 애들이 우글우글 몰린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정훈이 씩씩대고 있었다. 은오는 보이지 않았다. 9반 애들이 음악책을 들고 선 걸 보니 아직 음악실인 듯했다.
음악실에서 여기에 오기까지 딱 2분. 장미는 뒤돌아 교무실을 향해 질주했다. 은오 담임은 4층 2학년부에 있었다. 장미는 그 많은 계단을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일정하고 가볍게 내달렸다. 3층 도착.
은오는 음악실을 나와 계단을 두 번 복도를 한번 남겨두고 있었다.
4층 도착. 장미는 뛰다가 멈췄다. 4층에 있는 두 교무실 중 어디가 2학년 부인지 헷갈렸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른쪽 모퉁이와 왼쪽 모퉁이 중 선택해야 했다.
“그냥 내가 가서 조져?”
박정훈 편에 선 1학년 전체를 상대할 도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장미에게 얻어터져 앙심을 품은 연놈들이 가만있지 않을 터였다.
“에이씨.”
오른쪽을 택했다. 교무실에 쳐들어갔다.
“9...9반 담임 쌤 어디 있어요?”
“영현 쌤 수업 들어갔는데.”
장미는 머리를 쥐어잡았다. 그때 바로 옆으로 9반 애가 지나갔다. 장미가 눈을 번쩍 뜨며 소희 팔을 잡아챘다.
“너네 다음 뭐냐?”
소희가 얼떨떨하게 장미를 봤다.
“우리 체육.”
“니네 체육 누구지?”
“신재혁.”
말이 끝나자마자 출발점에 선 마라톤 선수같은 자세로 교무실 밖에 튀어나왔다. 긴 복도를 달려 6층으로 갔다.
은오는 복도를 건너 정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장미는 필사적으로 뛰다가 지나가는 아무 선생님을 맞닥뜨리고 멈췄다.
“쌤, 쌤. 9반 앞에 싸, 싸움 났어요. 일방적으로 얻어터지고 있어요. 지금 빨리…!”
선생님 팔을 잡고 끌어당기며 정신 없이 말했다.
“생활지도부장 선생님한테 얘기해. 박선동 선생님. 쌤 수업 들어가야 돼.”
선생님이 지나갔고 장미는 가만히 바닥을 쳐다봤다. 곧 뒤돌아 뛰어갔다.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장미가 숨을 들이키며 들어왔다. 체육교사 신재혁이 헤드셋을 끼고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었다.
“쌤, 흐어, 헉, 쌤.”
선생님이 모니터를 보며 팔짱을 끼고 낄낄댔다.
“쌤!”
장미가 소리치자 몸을 벌떡 일으키며 눈을 크게 뜨고 헤드셋을 내렸다.
“왜?”
“헉, 쌤. 1학년 9반 가죠? 거기 애들 지금 싸움나서 다 매점 앞에 있는데 와서 빠, 헉, 빨리 말려주세요. 일방적으로 뒤지고 있어요.”
장미는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알았어.”
선생님이 벌떡 일어났다. 장미는 튀어오르듯 먼저 달려나갔다. 꽁지에 불나도록 달려 먼저 도착했다. 정훈이 은오에게 주먹을 들고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장미는 애들을 비집고 들어가 정훈에게 태권도 전국남여우수선발대회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던 발차기를 날렸다. 깜짝 놀란 정훈 코에서 코피가 흘렀다.
장미는 바닥에 널브러진 은오 음악책과 필통을 주워 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조례가 끝난 1교시 쉬는 시간,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 게임을 하는 유성과 지형에게 미나가 왔다.
“야, 어제 9반 앞에 난리난거 너 봤냐?”
“뭔 난리.”
“너 몰라? 김은오랑 박정훈이랑 싸우고 난리났었잖아.”
유성이 벌떡 일어났다.
“뭔 소리야?”
유성은 어제 일찍 조퇴한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오늘 김은오 학교 안 왔대.”
유성은 벌떡 일어나 9반으로 갔다. 눈이 마주친 친한 친구에게 물었다.
“김은오 오늘 학교 안 왔어?”
“어.”
친구가 빈 은오 자리를 가리켰다.
“왜 안 왔대?”
“정훈이 무서워서 집구석에 틀어박혔겠지.”
유성에게 다가와 진상을 얘기해주었다.
“어제 음악 시간에 김은오가 갑자기 정훈이 머리 쥐어뜯고 공격한 거야. 정훈이 빡쳐가지고 음악 끝나고 기다렸다가 싸웠는데 쌤 나타나서 판 깨졌어.”
유성은 빈 은오 자리를 쳐다봤다.
쉬는시간, 유성은 학교 뒤로 갔다. 손에 든 핸드폰을 들고 한동안 고민했다. 전화할까? 한참 후 결국 핸드폰을 든 손을 내렸다. 괜히 머리를 긁으며 눈썹을 찡그렸다. 가슴이 달그락거렸다.
다음날 유성은 1교시 십 분 전을 알리는 아침자습시간이 끝나자마자 은오 반으로 갔다. 은오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밖에서 들어온 지형이 말했다.
“야, 김은오 전학갔대.”
유성은 방금 들은 말을 의심하며 고개를 들었다.
“걔네 반 담임 개무섭잖아, 한 시간 내내 난리났었대. 정훈이하고 애들 몇 교무실 불려가고. 그 누구지? 오경아? 걔는 왜 불려간거야?”
유성은 멍하니 지형을 쳐다봤다.
유성은 은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디야?’
답이 오지 않았다.
‘전학 간 거 진짜야?’
‘너 지금 어디야?’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오지 않았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유성은 친구들을 피해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옥상 앞으로 가 앉았다.
‘미안해’
‘그때 미술실 앞에서 했던 말 진심 아니었어’
삼십 분이 지나도 여전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나른한 오후 햇살이 건물 벽에 꽉 찬 창문으로 휘영청 들이쳐와 바닥 가득 빈둥거렸다. 교정에 퍼진 하교하는 애들이 한 명도 남지 않을 때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대로 서서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내 유성은 천천히 한 마디를 써 전송했다.
‘보고싶어’
액정 위로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유성은 센트럴 프라자 건물 입구에 섰다. 은오가 학원에 가는 시각은 일곱 시였다. 지금은 여섯 시 반이었다. 노을이 져 하늘이 붉게 덮였다. 길바닥과 균일히 선 나무들에 주황빛이 번졌다. 점점 애들이 많아지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일곱 시가 가까워지자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유성은 은오를 찾으려 집중했다. 보이지 않았다.
놓친 건가? 늦게 오나?
사람이 뚝 끊기고 다시 거리가 한산해져도 계속 서서 큰길 가를 주시했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깊은 저녁이 되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일렬로 늘어선 나무의 천만 잎사귀들이 저녁 바람에 종소리처럼 흔들려 울렸다. 너무 이르게 하복을 입은 유성은 두 팔을 비볐다.
유성은 은오가 다니는 학원으로 들어갔다.
“안녕.”
데스크에 앉은 선생님에게 다가갔다.
“왜?”
“어, 저기…여기 김은오라는 애 있지 않아요?”
선새님이 눈을 두 번 깜박였다.
“은오 학원 그만뒀어.”
한참 멍하니 돌처럼 서있는 유성을 선생님이 돌아보고 물었다.
"왜 그러고 서있니? 어...야, 너 왜 그래. 왜 울어."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데...미안하다고 해야 된단 말이에요."
유성이 선생님을 노려보며 서럽게 울면서 말했다.
학원을 나와 1층으로 내려왔다. 건물 복도 벽에 기대섰다. 핸드폰을 들어 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핸드폰을 든 손을 느리게 내렸다.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아 한참을 있었다. 5월이지만 서늘한 밤공기에 한기가 들었다. 분식집에서 버스커버스커가 작년에 낸 곡 ‘첫사랑’이 흘러나왔다. 교복 입는 애들 무리 하나가 와하하 웃으며 지나가 사라졌다. 정장을 입는 여자가 전화를 받으며 바쁘게 종종걸음을 쳤다. 구름이 덥수룩한 게 봄비가 내릴 것 같았다.
카드빚이 극에 달했다.
“씨발…법대로 해? 어?! 이번까지 안 갚으면 씨발 진짜 법대로 할 거야. 못할 거 같애? 못할 거 같냐고!”
죄송합니다, 희수가 핸드폰을 붙들고 연신 반복하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덕호와 희수는 빌라 앞에 트럭을 세우고 내렸다. 입구에서부터 짐이 짬뽕이 되어 집안 전체에 꽉 차 있었다. 쥐 똥오줌 냄새가 진동했다.
“쥐옥이라더니 진짜네.”
성인 남자 팔뚝만 한 쥐 수백 마리가 드글거렸다. 천장에 살짝 닿지 않는 곳을 빼고 공간이 없었다. 둘은 쥐 수십 마리를 삽으로 때려잡으며 쓰레기를 치웠다. 트럭으로 일곱 번을 날라야 했다.
“이 할머니가 저장성 치매에요. 이 쓰레기 산 위에서 먹고 자고 했다니까. 이거 봐, 이거 봐. 돈도 옷도 쥐가 다 갉아먹어서 부슬부슬해...아악!”
주민이 다가와 말을 건네다가 쥐를 보고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저녁 여덟 시, 일을 마친 둘은 트럭에 앉아 녹초가 되어 늘어졌다. 덕호는 최근 새로 판 명함을 만지작거렸다.
장례 후 짐정리.
다음날, 둘은 명함을 들고 벽제로 갔다. 화장터에서 장례를 치르고 나오는 유족들에게 토요일 이른 오전에만 가서 명함을 뿌렸다.
“쫌 거시기하다. 초상 치른 사람한테.”
덕호가 코를 긁었다.
“먹고살고 보자. 우리가 죽게 생겼다.”
마침내 직원들에게 들켜 쫓겨난 날 저녁, 트럭은 집을 향해 한강 위를 달렸다.
“오메, 비 온다.”
빗줄기가 툭툭 차창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거세졌다.
“옛날 생각 난대이. 탁송료 아낄려고 도로연수도 안 한 초보가 고속도로에서 트럭을 끌고...으휴.”
희수가 라디오를 틀자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머리가 세고 절름발이가 된 그가 파라오 앞에 서서 말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핸들을 쥔 덕호 손에 힘이 들어갔다. 빗소리만 사방에 가득할 때 덕호가 조용히 말했다.
“미안하다.”
와? 희수가 고개를 돌렸다.
“서울 오자해서 미안하다.”
표정 없는 덕호 얼굴에 눈물 한 줄이 흘러내렸다.